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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원하는 남자와 그를 사랑한 여자의 슬픈 로맨스

[서평]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2013)

등록|2014.02.04 10:48 수정|2014.02.04 10:49
모든 것을 다 잃은 남자, 죽음을 원하다

성 하나를 가질 정도의 재력가인 아버지와 치안판사인 어머니, 그리고 전도 유망한 M&A 전문 사업가였던 윌 트레이너.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며 자신의 사업 영역에서도 승승장구하며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업무관련 전화를 받으며 급히 택시를 잡으려 나가던 비가 쏟아지던 그 날 아침. 자신을 덥친 모터바이크 때문에 C5/6 사지마비 환자가 되고 맙니다. 하반신 마비보다 더욱 심각한. 움직이는 거라곤 목 위와 손가락 일부 뿐.

꿈 속에서는 예전처럼 뛰어다니고 킬리만자로도 올라가고 멋진 여인들에게 둘러쌓여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전동 휠체어 위에서 갇혀서 하루에도 수십개의 약을 투여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이미 자살시도까지 했던 그는 더 이상의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 가족의 동의 하에 6개월 후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6년째 일하던 카페가 갑자기 문을 닫아 실직상태가 된 루이자 클라크. 설상가상으로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아버지와 자신보다 훨씬 똑똑하지만 미혼모가 된 뒤로 집에 눌러앉은 동생 카트리나. 그런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게 된 그녀는 실업수당이라도 받기 위해 노동당국에서 추천해 주는 여러 일자리를 경험하지만 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맙니다. 결국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는 사지마비 환자를 6개월 간 임시로 간병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간병일 그 자체도 힘든데 까칠한 윌을 상대하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동생 카트리나가 대학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아버지의 퇴직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루이자는 꾹 참고 일을 계속해갑니다.

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루이자는 윌의 까칠한 성격에 익숙해져가고, 윌은 루이자의 엉뚱한 매력에 빠지고 맙니다. 점점 가까워져가던 중 루이자는 윌이 6개월 후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받을 예정이라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고, 자신이 사실은 그 사이에 윌이 자해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고용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큰 충격에 빠진 루이자는 일을 그만두고자 하지만 곧 남은 기간 동안 윌의 마음을 돌려 삶의 희망을 가지게 하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처음엔 가까운 경마장부터,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하기, 그리고 끝으로는 사지마비환자 들도 가능한 스카이다이빙이 포함된 여행까지! 과연 루이자의 노력은 윌에게 삶의 의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애틋한 로맨스 사이에 자리잡은 안락사에 대한 화두

▲ <미 비포 유> 표지 ⓒ 살림, 2013


500페이지를 넘는 두꺼운 단행본이지만 루이자의 유쾌 발랄한 생각과 대화들, 그리고 사지마비 환자들의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독자들을 작품에 몰입시킵니다.

작품은 챕터 마다 주된 화자의 1인칭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로 루이자의 시점에서 작품이 진행되는데 워낙 독특한 성격의 화자가 주는 엉뚱함과 직설적인 생각들이 중간 중간 큰 웃음을 주는 포인트입니다.

장애인과 간병인 간의 사이를 다룬 수많은 영화와 소설들은 서로의 긍정적 영향으로 장애인이 유쾌한 간병인으로부터 힘을 얻어 삶의 의지를 다시 찾는다거나,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삶을 허투루 보내던 간병인이 새 삶을 살게 된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이 소설은 너.무.나.도. 현실적입니다. 치밀한 취재가 필요했을 사지마비 환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의료서비스와 시간과 상황에 맞추어 투여되어야 하는 의약품들.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 자존감의 붕괴. 거기다가 주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들이 '행복을 과시하는 행위'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해결할 수 없는 오해까지.

비장애인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들이 왜 죽음을 그리도 원하는지를 알려줍니다. 환자들이 원하는 안락사는 법률적으로는 의료진이 살인행위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세계 각국에서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의료진이 행하는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디그니타스(Dignitas) 병원 등 허가받은 기관에서 환자에게 치사량의 약물을 제공받아 환자 본인이 자살을 택할 수 있는 '조력자살'은 합법입니다. 이 때에도 다른 이가 환자의 약물 복용을 돕는다거나 투약을 행하는 '적극적 조력'은 불법입니다.

우리 정부는 '안락사'와는 개념을 달리하는 '존엄사'를 정부차원에서 올 2월 중 입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약물들을 통해 생명을 끊는게 아닌 품위를 지키며 고통스럽지 않게 자신의 삶을 중단할 수 있도록 기존에 진행하던 연명치료를 멈출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죠.

막상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죽음을 원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소설 속 윌의 어머니는 자신이 아들의 죽음에 '공범'이 된다는 느낌에 고통스러워 했고, 루이자 또한 복잡한 일에 휘말리겠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지마비환자의 생활상,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 여러분들도 한 번 가져보시지 않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mimisbrunnr.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조조 모예스] 미 비포 유 / 김선형 역 / 살림 출판 / 출간일 2013-12-24 / 원제 Me Before You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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