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삼성 눈치 보는 거 아닌가... 영화 많이 봤으면"
[현장] <또 하나의 약속> 주인공 황상기씨, 딸 유품 가져온 이유
▲ <또 하나의 약속>감동의 박수 물결삼성 직원의 백혈병 문제 다른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영화를 관람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다가 부당함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 씨의 부인 이미희 씨와,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 등 삼성 관련 피해자 가족과 삼성 반도체 재해 문제를 고발해 왔던 이종란 노무사도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 유성호
그는 A4 용지만한 쇼핑백에서 공책 두 권을 꺼내 보였다. 캐릭터가 그려진 공책 안에는 그룹 '신화'의 초창기 활동 시절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강원도 사투리로 말했다.
"우리 유미 유품이에요. 유미도 오늘 나랑 같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 가져왔어요. 유미가 '신화'를 엄청 좋아했는데요, 신화 팬들도 이 영화를 많이 봐줬으면 해서 이걸로 가져왔어요.(웃음)"
6일 오전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하기 위해 서울 구로 CGV를 찾았다. 부녀는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다.
이날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스물세 살의 나이로 사망한 딸 유미씨의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아버지 황씨가 대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 딸과 함께 영화 보고 싶은 마음으로 유품 챙겨온 황상기 씨상영관 축소 논란을 빚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딸의 유품을 취재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날 황상기 씨는 "딸이 살아 있을때 그룹 신화의 팬이었다"며 "이 자리에 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유품을 가져왔다"고 그리움을 달랬다. ⓒ 유성호
"친척도 영화 봐야 하는데"... 속초에 하나뿐인 영화관마저 개봉 안해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보기 위해 속초에서 오전 6시에 서울행 버스를 타고 온 황씨는 "이렇게 영화가 무사히 개봉돼서 다행이다, 유미도 좋아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근 불거진 상영관 축소 논란과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실화를 다룬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문화일 뿐"이라며 "국민들에게 영화 볼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극장들이 상영관을 안 열어줘서 안타깝다, 다들 삼성 눈치를 보는 건 아닌가 싶다"고 아쉬워했다.
"친척들도 영화를 봐야 하는데…. 속초에 영화관이 하나 있어요. 메가박스요. 그런데 거기서도 개봉관을 안 열어줘요. 억울해요. 너무 억울해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다가 부당함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씨의 부인 이미희씨,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 등도 황씨와 함께 영화를 보러 왔다. 이들 모두 삼성을 싸우는 당사자들이다. 황씨와 함께 재판에 참여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도 함께 했다.
영화 상영 시간이 가까워지자, 이들 모두 상영관인 5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층마다 대형 홍보물을 마련한 여느 영화들과 달리 <또 하나의 약속>은 포스터 하나 붙어있지 않았다. "보통 배급사 쪽에서 홍보물을 주면 영화관에 배치하는데, <또 하나의 약속> 쪽으로부터는 받은 게 없다"고 구로 CGV 관계자는 설명했다.
오전 9시 50분, 영화가 시작됐다. 황씨는 가운데 좌석에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간혹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몇 차례 영화를 봐온 그였다. 황씨는 "영화를 볼 때마다 보기 힘든 장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윤미(실제 주인공은 황유미씨)가 백혈병에 걸려 골수를 빼는 장면이 가장 보기 힘들어요. 꼬리뼈에서 골수를 뺄 때마다 (유미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몰라요."
그는 유미씨가 자신의 택시 안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도 언급하며 "음악까지 곁들어져서 그런지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덧붙였다.
CGV, 황씨 인터뷰 가로 막아... "사전에 허가 받아야"
▲ 반도체 노동자의 문제 관심 당부하는 황상기 씨 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 시민들이 영화를 관람한 뒤 영화 포스터를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황상기 씨는 "고 황유미 씨의 산재인정 판결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 유성호
▲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인사 나누는 이인영 의원 상영관 축소 논란을 빚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이인영 민주당 의원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116분간의 러닝타임이 끝나자, 황씨와 함께 영화를 보러온 사람 모두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러온 일반 관람객들도 일제히 손뼉을 쳤다. 고 최종범씨의 부인 이씨는 "영화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아버님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당사자인 이종란 노무사는 "1심에서 승소하고 나서 아버님이 '이제부터 시작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항소심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2011년 법원으로부터 1심 승소 판결을 받아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항소심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기자들이 최씨의 관람 소감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황씨의 답을 듣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구로 CGV 매니저들은 취재기자들을 향해 "사전에 허가된 게 아니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그만 나가달라"고 몇 차례 요청했다. 한 매니저는 언성을 높였다. 사진기자들에게는 "CGV 로고가 안 보이게 찍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어렵게 입을 연 최씨는 "영화가 힘을 발휘해 다시는 유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됐으면 한다"면서 "만약 삼성 직원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더 이상 노동자들을 '한 번 써먹고 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자'라고 느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많은 국민이 힘을 발휘해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늘려라" |
▲ <또 하나의 약속> 관람하는 삼성 관련 피해자 가족상영관 축소 논란을 빚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다가 부당함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 씨의 부인 이미희 씨가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삼성노동인권지킴이·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아래 반올림) 등의 시민사회단체는 6일 오후 서울 영등포 롯데시네마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확대를 촉구했다. 이들은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전부터 기대되는 영화 1위에 오르고 지난 5일에는 예매율 1위를 기록했는데도 이 영화의 상영관이 턱없이 적게 잡히거나 단체관람이 돌연 취소되고 있다"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다는 것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는 예매율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약속>에 7개의 상영관을 배정해 논란에 휩싸였다. 메가박스 역시 개봉을 이틀 앞두고 상영관을 대폭 축소해 비난을 받았다. 이들 단체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자신들의 횡포가 많은 시민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더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사회적 문제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상영관을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반올림·참여연대·최종범열사대책위 등은 '삼성바로세우기회의(가칭)' 준비모임을 결성하고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확보 문제에 대응하기로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상영관 축소 논란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자 공정거래위원회에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제소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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