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던 아들, 충격이었다
[찜! e시민기자] 여행, 과학 등 전방위적 글쓰기하는 김창엽 시민기자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던 기사 '귀지가 축축하세요? 조심하셔야겠네요'의 기자 이름을 보고 동료 기자에게 물었다. 아이디를 확인해 보니 미국 여행기 '뒷길에서 본 아메리카(오 마이 더스트, 먼지처럼 떠도는 여행)'를 연재하는 바로 그 김창엽 시민기자가 맞았다. 그는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도 함께 연재 중이다.
여행, 사는 이야기, 교육, 스포츠, 문화 등 김창엽 기자는 '전방위적 글쓰기'를 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직업 기자로 일하던 그는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현재는 '잠은 세종에서 자고, 낮에는 주로 충남 공주에서 땅을 파먹으며 살고 있'단다. 프로필에 '오십을 넘은 나이, 그러나 정신 연령은 딱 열 살 수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창엽 기자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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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주체 못해... 내 눈에는 신기한 것들 천지"
▲ 북극해 유전(2007년). 뒤편 개펄 밑으로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고 한다. ⓒ 김창엽
-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09년 충남 공주에 땅을 조금 산 뒤 직접 집을 지었습니다. 농사가 본업인데, 아내가 대전에서 일을 하는 까닭에 대전과 공주의 딱 중간인 세종에 2012년 말 전세 집을 마련했습니다. 27년간의 결혼 생활 중 절반 넘게 떨어져 지냈으니, 둘이 좀 붙어 지내고 싶어서요. 시골에 삶터를 정한 건 30대 초반에 꿈꿨던 자급자족을 실천하기 위한 것인데,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시골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서울과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신문기자로 일했습니다."
- 2007년 '아메리칸 홈리스의 현지보고(접촉사고? '키스 주차'랍니다)', 2011년 '아들 셋과 초저가 북미대륙 횡단여행(10년 된 에코 자동차, 무사 완주할 수 있을까)' 연재 후 2년여 만에 2013년 '뒷길에서 본 아메리카'로 컴백했습니다.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을 안 썼던 이유, 그리고 다시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좀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쓰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오마이뉴스>에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10년 남짓한 미국체류 경험을 한번 정리하자는 의도, 그리고 얼마 전 얼떨결에 만들게 된 비영리 커뮤니티 포털(세종시 닷넷)때문입니다. 포털이랍시고 갑작스럽게 만들었는데, 채울 콘텐츠가 필요했습니다."
- '세 아들'(아들, 아들 친구 2명)과 함께 했던 여행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사에 아들의 실명과 사진도 나오고 내밀한 이야기도 많이 쓰셨는데요(부자 간 불협화음의 꼭지를 따준 달포의 여행도 끝나). 아들이 혹시 싫어하지는 않았는지…. 현재 아들과의 관계는 어떠신가요?
"제가 사람이 그렇게 저질은 아닌데, 도통 남의 마음을 읽을 줄 모릅니다. 게다가 성질은 까칠하고 급한 것으로 과거 직장동료나 친인척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어요. 이러니 사춘기 때 아들이 어떻겠어요? 어느 날 아들이 술기운을 빌려, 저에게 울먹이면서 "아버지가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들과 저의 관계는 지난 2~3년 사이 180도 달라졌어요. 아들이 커서 저를 전적으로 이해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제가 뭘 하든 아들은 그저 '넵넵' 그럽니다. 현재 아주 센세이셔널한 아들 인터뷰를 계획하고 있는데, 식구들 전부가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작 아들은 본인에게 엄청난 욕이 쏟아질 수도 있는데도 제가 인터뷰를 한다면 응하겠다는 입장입니다."
- 미국 두 달간 여행하려면 경비가 어느 정도 드나요?
"여행 방식에 따라 다르겠는데요. 저는 하루에 햄버거 2개 값 안팎의 식비(15달러)를 지출했습니다. 하룻밤 평균 15달러(2월 6일 환율기준 약 1만6000원)쯤 하는 야영장 사용 비용도 아까워 길이나 숲속, 공사장 같은 데서 차를 세우고 잤습니다.
교통비는 그래서 기름 값이 전부였는데 하루 평균 20달러(약 2만 원)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과 미국 왕복 항공료 제외하고, 한 달 1000달러(약 107만 원) 남짓 들었던 거죠(헌데 저처럼 길에서 자는 건 위험하다고 하더라고요). 조그만 차를 빌려서 4명 정도가 같이 여행하면, 국제선 항공요금 제외하고 1인당 두 달에 2000달러(약 215만 원) 안쪽에서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서 한 달 생활비와 북미대륙 한 달 여행비가 엇비슷할 수 있어요."
- 최근 쓴 '귀지가 축축하세요? 조심하셔야겠네요'가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과학이야기'를 연재 중이신데,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글감은 어떻게 찾으시나요?
"학교 다닐 때 전공인 신문방송학 과목보다 부전공인 유전공학 과목을 더 많이 수강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잠깐이었지만 분자생물학을, 미국 가서는 기후변화를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평생 철이 들지 않으려는 것인지, 지금도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과학 이야기 소재는 생활 주변에서 찾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그렇지, 제 눈에는 세상이 신기한 것들 천지입니다."
"평등한 풀뿌리 인터넷 포털 연대 만들어졌으면"
▲ 2011년 8월 사우스 다코타 주의 배드랜즈 국립공원에서. ⓒ 김창엽
- 전직 기자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직업 기자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울컥 치솟을 때는 없으신지?
"전혀 없습니다. 저와 같이 기자 생활을 했던 분들이 지금 주요 신문사나 방송국의 요직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 보면 참 피곤할 것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저를 격려하기 위해 한 말이겠지만, 유명신문사에서 논설위원 하는 한 친구는 "너는 쓰고 싶은 글 써서 참 좋겠다"며 부러워하더라고요. 직장에 있을 때에 비해 벌이가 형편없이 줄어든 지금, 생계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습니다만 사람이 고루 다 복을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역마살'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향후 계획하고 있는 여행지는 어디인지, 가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 알려 주세요.
"101세인 할머니, 80세 언저리인 어머니와 아버지 곁을 제가 한동안 떠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정이 허락하면 알래스카나 캐나다 북부지방 같은 데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천성이 야생을, 또 짐승처럼 살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유형입니다."
- 여행, 사는 이야기, 교육, 스포츠, 문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기사를 쓰고 계십니다. 또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평등한 풀뿌리 인터넷 포털 연대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 그 작은 실천을 기사로 다루고 싶어요. <오마이뉴스>나 다음, 네이버 같은 곳들은 뭐랄까, 중앙 개념으로 조직돼 있잖아요. 전국에 독립적인 수백 개의 작은 커뮤니티 포털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연대해서 중앙 개념의 포털들을 건전하게 견제하는 거죠. 견제와 균형이 민주사회의 핵심가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향력이 커진 인터넷 분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하고 싶으신 말씀은?
"아부로 들리려나요. 편집부를 포함해 <오마이뉴스>에서 일하는 분들이 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합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미국은 천민적 성격이 강한 자본주의 국가지만, 사회적 공기들에 대해 적정 수준의 존중 같은 게 있습니다.
헌데 우리사회를 보면 99개를 가진 사람들이 100개를 채우려는 사욕이, 자기 것 하나도 못 가진 사람이 하나를 확보하려는 마음보다 더 지배적인 거 같아요. 저는 못나고 물러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주문을 외웁니다.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고요. 주제 넘는 얘긴데요, 혹시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힘드신 편집부원이 있다면 힘이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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