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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는 엑소의 '으르렁' 부르면 안 되나요?

[공모-내 나이가 어때서] 걸그룹 좋아하는데... 나잇값 못한대요

등록|2014.02.13 11:25 수정|2014.02.13 11:25
"그 나이엔 뉴스를 봐야지, 아침부터 걸그룹이 뭐냐?"

평일 아침엔 습관처럼 "이번 주말엔 늘어지게 늦잠이나 자야겠다"라고 중얼거리곤 하는데, 막상 토요일만 되면 새벽에 눈이 떠진다. 불행하게 내 몸은 평일을 기억하나보다. 식구들 모두 늦잠을 즐기는데, 나만 새벽같이 일어난다.

내 나이 이제 54살.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53살이다, 라고 박박 우겨도 늙은 건 늙은 거다. TV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리모콘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꼭두새벽부터 불평을 해봐야 집안 분위기만 망친다고 생각한 집사람은 베개와 이불을 챙겨들고 건넌방으로 간다.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봐야 그게 그거다. 집사람도 옆에 없으니 음량을 작게 할 이유도 없다. 체널에 표시된 프로그램 버튼을 이것저것 누르다 걸그룹 F(x)의 영상을 선택했다. 소녀시대도 좋아하지만, '라차타' 이후 에프엑스의 안무나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아내의 말은 내 나이 정도라면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이나 봐야 어울린다는 의미인 것 같다.

아이들과 TV채널 가지고 싸우는 아빠

"어! 에프엑스네, 얘들이 나올 때 이렇게 누워서 보면 예의가 아니지..."
"야~ 우리 아빠 드디어 미치셨다."

어느 휴일, 거실에서 낮잠을 자는데 TV에서 F(x)의 음악이 나오기에 중얼거리면서 벌떡 일어나는 내게 대학 다니는 딸아이가 한 마디 했다. 녀석의 생각도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 나이에 F(x)가 도대체 어울리기나 하느냐는 눈치다.

처음에 집사람은 "아빠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애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기 때문"으로 내 행동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딸아이와 서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리모콘 쟁탈전을 벌이는 내 모습을 본 이후론 '나잇값도 못 하는 인간'으로 낙인을 찍어 버린 듯하다.

"혹시 어머님이 당신 태어나기 몇 년 전에 출생신고를 해 두었던 것이 아닐까?"

가끔 아이들과 수준 낮은 싸움을 하면, 이를 보다 못한 아내는 내 과거를 의심했다. 어머님 제삿날 정중히 여쭈어 보시겠단다.

▲ 페이스북에 올린글처럼 이렇게 살고 싶다. ⓒ 페이스북 갈무리


"신 계장님, 노래 한 번 들어봅시다."

직장회식 등 사무실 손님을 접대할 땐 상황에 따라 소주와 함께 저녁을 먹고, 2차로는 맥주로 입가심, 3차는 예외 없이 노래방엘 간다. '울고 넘는 박달재', '굳세어라 금순아', '목포의 눈물' 등 제목만 들었지 노래 가사는 잘 모르는 곡들이다. 분위기를 맞추려면 흥겨운 척해야 한다.

내 차례가 돌아오면 "감기에 걸려서", "목이 좀 아파서" 등의 핑계를 대면서 노래를 잘 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 상황에 맞는 노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 박강성의 '내일을 기다려'라는 노래를 부르고 난 후 싸해졌던 노래방 분위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젊은 직원들과 함께 소녀시대의 '지지지'나 엑소의 '으르렁'을 부르는 게 더 편하다.

하마터면 식당주인에게 맞을 뻔 했다

"젊은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못 쓰겠구먼~"

식당주인 할아버지는 몹시 화가 나신 표정이었다. 아니 내 뺨이라도 때리실 기세였다. 후배 녀석 때문이다. 나를 만날 때마다 "형~ 술 한 잔 사준다더니 언제 사줄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자꾸 그런 말을 반복해 듣다보니 내 스스로 이 녀석에게 '큰 외상이라도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사 주마" 하고 데리고 간 식당.

삼겹살에 소주를 거나하게 마셨었나보다. 가끔 술에 취하면 불만이 튀어 나온다. "내가 너한테 빚진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있으나 없으나 가리지 않고 상황 파악도 못하고 술 사 달래냐?"라는 말에 그 녀석도 발끈했다.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왔었나보다. 상황을 보다 못한 식당 주인은 나한테 화를 몹시 냈다. 왜일까?

내가 나이보다 좀 젊어 보인다는 이유도 있지만, 나보다 세살이나 어린 후배 녀석이 10년 정도 늙어 보이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 식당 주인이 봤을 때, '젊은 놈이 노인네한테 막말도 서슴지 않는 후레자식' 정도로 생각했을 것 같다. "이 녀석이 나이에 비해 좀 심하게 망가져서 그렇습니다"는 말로 양해를 구했지만, 주인의 오해는 오래갔다.

때론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이보다 상당히 젊게 보여요"라는 말과 "말씀을 들어보면 생각이 참 젊으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을 땐 이유 없이 좋다가도 급 정신이 번쩍 든다. 이유는 그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이놈 이거 나이 값도 못하는 푼수 아냐"라는 뜻인 것 같기 때문이다.

54살이면 청춘 아닌가요?

▲ 내 페이스북은 푼수같은 글이 많다.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페이스북 갈무리


"인마, 친한 친구들 만났으면 거하게 한 잔 하고 와야지 별로 안 마신 거 같은데?"

친구를 만나러 나간 딸아이가 자정이 가까워졌는데 귀가를 하지 않았다. 걱정스런 마음에 밖으로 나갔다가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친 딸아이.

"아빠~ 나한테 야단 안 쳐? 솔직히 난 우리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고리타분 하지 않아서 참 좋아~"

딸아이 말처럼 남들이 내게 '나잇값 좀 해라' 어쩌구... 하더라도 그냥 젊게 살고 싶다. 이 나이에 에프엑스나 엑소같은 젊은 가수 노래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54살이면 청춘 아닌가? 내 나이가 어때서!
덧붙이는 글 내 나이가 어때서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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