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 국민들이 공약 백지화에 익숙해져 있는데 정부는 뜬금없이 올 3월부터 돌봄교실을 전면 실시하겠다며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를 들쑤시고 있다. 적응은 좀 안 되지만 공약을 지키겠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다만 공약을 지키는 방식이 너무도 비정상적이라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구하는 박근혜 정부에게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초등돌봄서비스는 오후돌봄과 저녁돌봄으로 나뉜다. 오후돌봄은 오후 5시까지, 저녁돌봄은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가정 학생 중 추가 돌봄이 필요한 학생을 오후 5∼10시까지 돌봐준다. 오후·저녁돌봄 모두 무료고 간식비나 석식비(저소득층은 무료)는 따로 낸다.
정부는 올 3월부터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 돌봄교실을 확대해서 소득에 관계없이 1,2학년 학생들 중 원하는 모든 신청자들을 오후돌봄 교실에 무료로 받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에 초등학교 재학생과 올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수요 조사결과에 기초해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각 학교에 돌봄교실을 증설하라는 지침과 예산을 내려 보냈다.
더 늘어날 신청자들을 감안하지 않는다 해도 교육부 추산에 의하면 현재 전국에 3983개의 추가교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소득층과 맞벌이 가정 자녀를 우선 선발하던 것에서 전면실시로 방침이 전환됨에 따라 수요자들이 급증해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당장 교실 확보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서울지역에서 돌봄교실 이용을 신청한 1,2학년 학생은 2만5665명으로 지난해보다 63%나 늘었다. 정부는 일선 학교에 겸용 교실 마련을 위해 교실 당 15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전용 교실 1곳을 만드는데 4000만 원 가량이 필요하다는데 1500만 원으로는 제대로 된 시설을 할 수 없는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다가는 아이들이 실험도구들이 잔뜩 쌓인 실험실에서 오후 내내 지내거나, 책·걸상을 내놓았다가 들여놓았다 하면서 수업하는 교실을 돌봄교실로 쓰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게다가 겸용교실은 필요한 교육 자재들을 갖추기 어렵고 운영비도 전용교실의 1/2에 불과한 15만 원만 지원된다고 한다. 교육부 계획대로 시설이 갖춰져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아이들을 전용교실과 겸용교실에 배치할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작년까지 돌봄교실을 이용했던 3학년 이상 학생들은 1,2학년 전면실시라는 정부 방침에 밀려 올해는 들어갈 자리조차 없어 밀려날 판이다.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추진되는 돌봄교실에서 돌봄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교실이 아니라 수용소가 될 게 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의 초등학교를 수용소로 만들고, 아이들이 그저 수용되는 것을 국민행복시대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박근혜정부의 돌봄교실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다음 세대의 사회구성원이 될 아이들을 교육하고 돌보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교육이 학교라는 공교육기관에서 담당해야 할 일이라면 돌봄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수업시간 이후 부모의 퇴근시간 전까지 돌보는 오후돌봄교실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돌봄은 정부의 지원 아래 마을과 지역이 맡는 것이 올바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방과후 지역아동들의 돌봄을 위해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운영되던 지역아동센터(지역공부방)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조건에서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각 센터마다 월 평균 408만 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으나 이는 운영예산의 평균 약 60%에 불과한 액수다. 지역아동들이 단지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방과후 돌봄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정부 관리 하에 이들 지역아동센터에 실질적인 예산 지원이 이루어지고 지역아동센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1980년대의 공부방이 2004년에 아동복지시설인 지역아동센터로 법제화되었다. 2013년 6월 말 현재 전국에 4,036개소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총 109,256명의 결식아동과 빈곤아동들이 돌봄을 받고 있다. 이런 일을 통해 지역아동센터는 30년 이상의 돌봄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정부의 돌봄교실 전면확대로 이들 지역아동센터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교과부가 나서서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가 방과후 돌봄교실업무를 떠맡는 것은 교육을 망치는 일임과 동시에 지역의 아동복지 시스템을 망치는 일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인프라가 부족해 학교시설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학교의 일이 아니라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일이 되어야 한다. 출발부터 잘못 방향이 설정된 정책은 정책 자체의 목적 달성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업무조차 왜곡시키고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2003년에 시작한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 사업인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총 2,000여 개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애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도 못한 채 현재는 예산의 낭비와 교사들의 업무를 가중시켜 교육에 집중해야 할 학교기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무리한 돌봄교실 전면확대 정책 역시 이와 유사한 길을 걷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제는 또 있다. 단 한 달 만에 돌봄교실 전면확대를 위한 실무 준비를 해야 하는 초등학교들은 새 학년 준비에 바쁜 2월에 교육이 아닌 보육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가 교육의 관점에서 학교를 운영하지 않았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 학년도 교육계획이 다 짜여진 2월에 학교폭력 대책으로 체육시수를 한 시간씩 무조건 늘려 시간표를 다시 짜라, 복수담임제를 실시하라는 식의 일이 다반사였다. 학교는 새 학년 시작 며칠 전에 부랴부랴 다 짜놓은 교육계획을 다시 손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올해는 교육부와 상의도 없이 관광주간을 하겠다는 문광부의 방침으로 조만간 계절방학을 넣어 교육계획을 다시 짜라는 공문이 내려올지도 모른다. 학교 현장의 이런 고통은 아랑곳없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일 돌봄교실 확대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정부 시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자랑이라도 하듯 서둘러 발표했다. 교육청이 학교현장은 보지 않고 중앙정부만 올려다보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저녁돌봄은 또 어떤가?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행복하게 하는 제대로 된 길은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그 시간까지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있지 않도록 하는 보다 근본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적어도 돌봄이 필요한 자녀를 둔 부모는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아이들과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퇴근 시간을 보장해주는 정책을 국가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10시까지 아이들이 매일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이다. 정부는 이 폭력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강구할 게 아니라 이 폭력을 근절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도대체 박근혜 정부는 무엇 때문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무리하게 돌봄교실 전면 확대를 추진하는 것일까? 그동안 온갖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려왔던 박근혜 정부다. 네 달 뒤로 다가온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신청만 하시라. 공짜로 해 준다'며 돌봄교실 전면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교육과 돌봄이 아니라,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행복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인 것처럼 보이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리라. 아이들의 밥그릇을 걸고 정치적 도박을 했던 오세훈 전 시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오버랩되는 건 너무 우울한 일이다. 제발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는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초등돌봄서비스는 오후돌봄과 저녁돌봄으로 나뉜다. 오후돌봄은 오후 5시까지, 저녁돌봄은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가정 학생 중 추가 돌봄이 필요한 학생을 오후 5∼10시까지 돌봐준다. 오후·저녁돌봄 모두 무료고 간식비나 석식비(저소득층은 무료)는 따로 낸다.
정부는 올 3월부터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 돌봄교실을 확대해서 소득에 관계없이 1,2학년 학생들 중 원하는 모든 신청자들을 오후돌봄 교실에 무료로 받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에 초등학교 재학생과 올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수요 조사결과에 기초해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각 학교에 돌봄교실을 증설하라는 지침과 예산을 내려 보냈다.
서울지역에서 돌봄교실 이용을 신청한 1,2학년 학생은 2만5665명으로 지난해보다 63%나 늘었다. 정부는 일선 학교에 겸용 교실 마련을 위해 교실 당 15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전용 교실 1곳을 만드는데 4000만 원 가량이 필요하다는데 1500만 원으로는 제대로 된 시설을 할 수 없는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다가는 아이들이 실험도구들이 잔뜩 쌓인 실험실에서 오후 내내 지내거나, 책·걸상을 내놓았다가 들여놓았다 하면서 수업하는 교실을 돌봄교실로 쓰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게다가 겸용교실은 필요한 교육 자재들을 갖추기 어렵고 운영비도 전용교실의 1/2에 불과한 15만 원만 지원된다고 한다. 교육부 계획대로 시설이 갖춰져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아이들을 전용교실과 겸용교실에 배치할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작년까지 돌봄교실을 이용했던 3학년 이상 학생들은 1,2학년 전면실시라는 정부 방침에 밀려 올해는 들어갈 자리조차 없어 밀려날 판이다.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추진되는 돌봄교실에서 돌봄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교실이 아니라 수용소가 될 게 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의 초등학교를 수용소로 만들고, 아이들이 그저 수용되는 것을 국민행복시대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박근혜정부의 돌봄교실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다음 세대의 사회구성원이 될 아이들을 교육하고 돌보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교육이 학교라는 공교육기관에서 담당해야 할 일이라면 돌봄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수업시간 이후 부모의 퇴근시간 전까지 돌보는 오후돌봄교실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돌봄은 정부의 지원 아래 마을과 지역이 맡는 것이 올바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방과후 지역아동들의 돌봄을 위해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운영되던 지역아동센터(지역공부방)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조건에서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각 센터마다 월 평균 408만 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으나 이는 운영예산의 평균 약 60%에 불과한 액수다. 지역아동들이 단지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방과후 돌봄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정부 관리 하에 이들 지역아동센터에 실질적인 예산 지원이 이루어지고 지역아동센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1980년대의 공부방이 2004년에 아동복지시설인 지역아동센터로 법제화되었다. 2013년 6월 말 현재 전국에 4,036개소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총 109,256명의 결식아동과 빈곤아동들이 돌봄을 받고 있다. 이런 일을 통해 지역아동센터는 30년 이상의 돌봄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정부의 돌봄교실 전면확대로 이들 지역아동센터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교과부가 나서서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가 방과후 돌봄교실업무를 떠맡는 것은 교육을 망치는 일임과 동시에 지역의 아동복지 시스템을 망치는 일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인프라가 부족해 학교시설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학교의 일이 아니라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일이 되어야 한다. 출발부터 잘못 방향이 설정된 정책은 정책 자체의 목적 달성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업무조차 왜곡시키고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2003년에 시작한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 사업인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총 2,000여 개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애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도 못한 채 현재는 예산의 낭비와 교사들의 업무를 가중시켜 교육에 집중해야 할 학교기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무리한 돌봄교실 전면확대 정책 역시 이와 유사한 길을 걷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제는 또 있다. 단 한 달 만에 돌봄교실 전면확대를 위한 실무 준비를 해야 하는 초등학교들은 새 학년 준비에 바쁜 2월에 교육이 아닌 보육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가 교육의 관점에서 학교를 운영하지 않았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 학년도 교육계획이 다 짜여진 2월에 학교폭력 대책으로 체육시수를 한 시간씩 무조건 늘려 시간표를 다시 짜라, 복수담임제를 실시하라는 식의 일이 다반사였다. 학교는 새 학년 시작 며칠 전에 부랴부랴 다 짜놓은 교육계획을 다시 손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올해는 교육부와 상의도 없이 관광주간을 하겠다는 문광부의 방침으로 조만간 계절방학을 넣어 교육계획을 다시 짜라는 공문이 내려올지도 모른다. 학교 현장의 이런 고통은 아랑곳없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일 돌봄교실 확대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정부 시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자랑이라도 하듯 서둘러 발표했다. 교육청이 학교현장은 보지 않고 중앙정부만 올려다보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저녁돌봄은 또 어떤가?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행복하게 하는 제대로 된 길은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그 시간까지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있지 않도록 하는 보다 근본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적어도 돌봄이 필요한 자녀를 둔 부모는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아이들과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퇴근 시간을 보장해주는 정책을 국가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10시까지 아이들이 매일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이다. 정부는 이 폭력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강구할 게 아니라 이 폭력을 근절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도대체 박근혜 정부는 무엇 때문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무리하게 돌봄교실 전면 확대를 추진하는 것일까? 그동안 온갖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려왔던 박근혜 정부다. 네 달 뒤로 다가온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신청만 하시라. 공짜로 해 준다'며 돌봄교실 전면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교육과 돌봄이 아니라,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행복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인 것처럼 보이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리라. 아이들의 밥그릇을 걸고 정치적 도박을 했던 오세훈 전 시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오버랩되는 건 너무 우울한 일이다. 제발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는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