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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통기타로 배우며

나는 이제야 정신적인 서른의 나이다

등록|2014.02.16 16:52 수정|2014.02.16 16:52
몇 해 전 배우기 시작한 통기타와 함께한 지가 그럭저럭 4년이 되어간다. 아직도 초보 수준이나 그냥 스트록을 치며 노래 부르기를 즐길만 하다. 통기타를 배우고 나서 우연하게 악기 연주 모임, 토마토 음악회라는 동호회에 가입을 해서 활동하고 있다.

토마토 음악동아리는 악기 연주 모임이다. 구성원들은 나이가 지긋한 50대, 60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광주 문흥동에 있는 사회교육원이라는 데서 모여 연주회를 갖는데, 모임에서 연주하는 악기는 다양하다. 주로 색소폰이고 트럼펫, 클라리넷 등. 통기타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실수를 해도 잘 한다고 박수를 쳐주고 집안 식구처럼 편안해서 나는 이 모임에 늦게 가입을 했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나가고 있다.

그런대 평소에는 잘 되다가도 무대에만 서면 몸이 영하 20도의 날씨처럼 꽁꽁 얼어 붙어 망쳐 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끈기 하나만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그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곡 하나를 정하여 한 달간 연습도 하게 되고 실수를 연발하더라도 무대에 서다보니 이제는 무대공포증도 많이 사라졌다.

내가 다음 달 연주회 때 연주하려고 선택한 곡명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이다. 이 노래를 배워보니 노래의 곡조와 노랫말이 조용하고 시적이기 때문에 스트록보다는 아르페지오로 박자를 넣으려고 한다. 그런대 화음을 분산시켜 손가락으로 퉁겨야 한는 아르페지오가 스트록보다는 훨씬 어렵다. 그 중에서도 <서른 즈음에>의 아르페지오는 4분의 4박자 기본형이 아니고 그 노래만의 아프페지오가 있어서 배우기가 어렵다.

요즈음 김광석의 노래들이 다시 불려지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들이 자신들이 잘 나갈 때는 별 느낌을 주지 않으나 삶이 고단하고 안 풀리고 주위에 사람들이 다 떠나고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 부르면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마치 자신의 애기를 노래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노래의 가사는 내면을 파고들며 상처를 어루만져준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옛 조상들이 서럽고 억울하고 한맺인 일이 생기면 자신의 슬픈 감정을 달래기 위해 읊조렸던 신세타령 같은 노래가 김광석의 노래들이다.

이제 내 나이가 서른을 두 번 산 나이다.이 나이에 들어서서 지난 나의 서른을 생각해보니 까마득한 옛 시절이다. 사람은 상대방의 나이를 항상 자신의 나이에 비교해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서른 때는 제법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서른의 젊은이들을 보면 젊다기보다는 애들 같다. 탱탱한 피부, 윤기 흐르는 머리칼, 탱글탱글 옥구슬 같은 목소리. 정말 아름다운 나이가 서른이 아닌가 싶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가 싶다.

나는 서른 즈음에 목포에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광주에 올라오고는 했는데 그날도 목포역에서 기차를 탔었다. 내 맞은편에는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는 분이 앉아 있었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그분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내 나이를 물었다.

내가 서른이라고 하자 "그분은 참 좋은 나이다"라고 하면서 내 손등의 살을 자신의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잡아 올렸다. 그리고는 손을 놓자 내 손등의 피부는 바로 원위치를 찾아갔다. 그러더니 자신의 손등을 보라 하면서 자신의 손등의 살을 손가락으로 잡아 올렸다. 그리고는 손을 놓자 손등의 살은 천천히 느리게 제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분은 이 것이 젊음과 늙음의 차이라고 하며 참 젊음이 부럽다고 했다. 그분이 나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이제 내 나이가 그때 만난 그분의 나이만큼 되었다. 이제야 그분이 나의 젊음을 부러워했던 것처럼 나도 서른 즈음의 탱탱한 아름다움과 넘치는 힘이 부럽다. 이제야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지난 나의 젊음의 시기, 서른 즈음은 어쨌던가. 정말 다시는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악몽과 같은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너무 시끄러웠다. 시내에는 민주화를 외치는 데모대의 구호와 경찰들이 쏘는 최루탄 냄새, 광주의 5·18도 나의 서른 즈음이었다. 나의 서른 즈음은 이렇게 정치 사회적으로 갈등의 시기였다.

나의 서른 즈음의 사진을 보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자의 억눌린 표정이다. 젊고 발랄한 생기 있는 요즈음 서른의 젊은이의 얼굴이 아니다. 아직 못다 한 공부에 대한 열망,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에 대한 숙제, 직장에서는 승진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난제를 양 어깨 위에 지고 젊음이 좋은 것인지, 곧 가는 것인지도 모르고 지나쳐버렸다.

이제 서른을 두 번 산 나이다. 지금은 백발 성성하고 눈도 잘 보이지를 않고 피부는 칙칙하고 주름졌지만, 나는 지금의 나이가 마치 이제야 서른 살이 된 듯 낭만을 즐기고 여유를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서른 즈음에 그토록 짊어지고 무거워했던 짐들을 이제는 다 놓아버리고 홀가분한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문학을 마음껏 해도 방해받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이제야 정신적인 서른이다. 김광석은 노래에서 "점점 더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이라고 노래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서른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음이 아쉽다. 죽는 날까지 꿈과 젊음을 잃지 않고 마치 서른처럼 살다가 갈란다. 삶의 뒤안길인 이제야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어느 낙옆지는 가을 날 대구에 있는 김광석거리를 찾아 가고 싶다. 조용한 카페에셔 막걸리에 대포 한잔을 나누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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