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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힌 홍어보다 열배는 지독... 덕분에 먹고 삽니다"

평화로운 섬, 충남 대천 호도... 초등학교도 있고 식수도 풍부한 그곳

등록|2014.02.19 16:19 수정|2014.02.19 16:19

호도(여우섬) 일출섬사람들의 아침은 물때에 맞춰 달라진다. 지난 14일, 일출을 보면서 바다로 향했다. 아낙네들은 조개를 잡으러, 남편들은 낙지를 잡으러... 고되고 힘들지만 이것이 사는 맛이란다. ⓒ 이철재


2014년 정월 대보름이었던 지난 14일, 부럼을 깨무는 대신 SBS <물은 생명이다> 팀과 함께 충남 보령시 오천면 '호도'(狐島)를 찾았습니다. 대천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은 멀리서 보면 여우를 닮았다고 해서 '호도'라 불리고 있습니다. 면적은 1.3㎢로 서울 여의도의 1/4크기에 불과하지만, 해산물이 좋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호도의 해산물이 풍성한 이유는 이 섬이 외해와 내해의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이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이 섬의 첫 느낌은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고 할까요. 겨울이지만 햇볕이 따스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아담한 포구, 전체적으로 낮게 형성된 섬 풍경 그리고 이곳 주민들의 밝은 표정에서 낯선 이는 평온함을 느낍니다.

이 섬에는 승용차가 없습니다. 마을이 호도 선착장과 바로 붙어 있는 데다가 섬 전체가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만큼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착장에 트럭 몇 대가 있을 뿐인데, 섬사람들은 리어카로 선착장까지 짐을 실어나릅니다. 짐을 나르면서 방귀를 뀌는 것을 제외한다면, 불필요한 매연과 소음이 없는 게 이 섬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래가 움직이는 섬

호도(여우섬) 해변가늘고 고운 모래가 가득한 해변뿐만 아니라, 몽돌·자갈 등 섬 크기는 작지만 상대적으로 다양한 재질의 해변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이철재


선착장에서 남쪽으로 걸어서 약 5분, 여우섬의 자랑거리인 드넓은 해변이 나타납니다. 길이 약 1km의 해변에는 규사가 90% 들어있는 가늘고 고운 모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이곳에 모래가 더 쌓인다고 합니다. 호도 이장 강광식(65)씨는 "수온이 높아지는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모래가 와서 쌓이고, 반대로 겨울이 되면 모래가 빠져나간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모래가 움직이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령시에서는 관광객이 쉴 수 있도록 해안가에 길이 1m 안팎의 검은색 돌 30여 개를 설치했는데, 웬일인지 돌들이 제각각 기울어 있거나, 모래에 파묻혀 있습니다. 이는 모래가 움직이면서 만들어낸 현상들입니다. '사상누각' 아니 '사상누석'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파묻힌 돌해변에 설치된 쉼터용 돌들. 기울어졌거나 모래에 파묻혀 있다. 호도의 모래가 계절별로 움직인다는 증거다. ⓒ 이철재


강 이장은 "인근 지역에서 해사를 채취해 예전보다 모래량이 많이 줄었다"며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모래를 퍼간 만큼 그쪽으로 모래가 밀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나 강에서나 평형을 이루려는 모래의 현상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래도 여름 관광철에 모래를 사서 해변에 뿌리는 다른 해변에 비한다면, 이 섬은 자연의 혜택을 받은 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해변 구성이 다양하다는 점도 호도의 특징입니다. 모래 해변 남쪽에는 펄과 모래가 섞여 있고, 바로 옆에는 둥글둥글한 몽돌이 이어집니다. 섬 남쪽 부근에는 바위들이 격하게 부서지면서 형성된 해변도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 해변은 그 특징에 따라 쓰임새가 다릅니다.

모래 해변은 관광객의 놀이터가 되고, 펄이 섞인 해변은 주민들의 삶의 공간이 됩니다. 이른 새벽, 이곳 주민들과 함께 일을 나섰습니다. 섬사람들의 아침은 물때에 맞춰 바뀌는데, 이날은 일출을 보면서 바다로 향합니다. 아낙네들은 조개를 잡으러, 남편들은 낙지를 잡으러 나섭니다. 주민들은 고되고 힘들지만 이것이 사는 맛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는 섬

해식 동굴예전에 도둑놈이 숨어 있었다고 해서 '도둑놈형동굴'이라 불렸다. 한국전쟁 때는 주민들의 피난처로 사용됐고, 이후에는 초등학생들의 소풍터로 사용되기도 했단다. ⓒ 이철재


호도에서는 제주도 출신 해녀 20여 명이 4월부터 11월까지 물질을 해 해삼·전복 등을 채취합니다. 그 양이 한 해 70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예전 해녀들이 많을 때는 100여 명이 있기도 했었는데, 이 중 마을 청년들과 혼인한 해녀들이 이 섬에 정착하게 됐다고 합니다.

섬의 남쪽 끝에는 두세 개의 침식형 동굴이 있습니다. 동굴 이름이 '도둑놈형 동굴'이라 하는데, 옛날 도둑이 이 동굴에 숨었던 게 계기가 돼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 이곳은 마을 사람들의 피난처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굴 안쪽에는 폭 7~8미터 가량 되는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이 섬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의 예전 소풍터였다고도 합니다.

현재 호도에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원래 이웃의 녹도에 본교가 있고 호도에 분교가 있었는데, 녹도의 초등학교는 학생이 없어 폐교됐습니다. 강 이장은 "우리 섬의 초등학교는 보물"이라며 "같은 섬이라도 초등학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섬의 자존심이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엣 샘물터에서 자라는 갈대호도 곳곳에는 갈대밭이 형성돼 있는 곳이 있는데, 예전에 샘물과 논이 있던 곳이란다. 호도는 모래로 이뤄진 섬이다. 모래는 물을 걸러주고 담아두는 역할을 한다. ⓒ 이철재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이곳이 젊은 사람과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구에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손녀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서울에 살다가 이곳에 정착했다는 이 할아버지는 "이곳은 공기부터 너무 좋다"고 말합니다.

물론 멀리 보면 걱정도 없지는 않습니다. 현재 호도에는 초등학생이 아홉 명 있는데, 이들이 모두 졸업하는 5~6년 뒤면 이곳의 초등학교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강 이장은 젊은 사람들이 더 들어와 살아주길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이곳 어민들은 철 따라 물고기를 잡습니다. 광어·농어·도미·꽃게·놀래기·바닷장어(아나고) 등이 대표적인데, 강 이장은 "이곳 호도는 활어가 좋기로 소문났다"고 말합니다. 호도에서는 밭농사도 제법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논농사도 했다고 합니다. 섬 곳곳에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란 갈대밭이 있는데, 이곳이 예전에 논이 있었던 곳입니다.

물이 많아 촉촉한 섬

논이 있다는 것은 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 이 섬은 땅을 조금만 파도 물기가 배어 나옵니다. 지금은 지하수를 파서 식수로 사용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마을 내 샘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고 합니다. 강 이장은 "새벽이면 양동이를 들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샘물을 받아 갔다"며 "물 순번을 잘 지켰다"고 설명합니다. '물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고나 할까요. 마을 아래쪽에도 샘물이 있었는데, 그곳은 빨래터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갯일을 하다가 목이 마를 때는 섬 남쪽 바위틈에서 나오는 샘물로 목을 축입니다. 이곳 샘물은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도 언제나 일정량만 흐른다는 게 특징입니다. 인접한 녹도가 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반면, 이 섬은 물이 풍부합니다. 강 이장은 "섬 대부분이 모래로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래가 거대한 필터 역할을 하면서 물을 걸러주고 담아두기 때문에, 여름철 하루 2000명의 관광객이 와도 끄떡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섬 곳곳에 물이 고였던 곳은 현재 습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 이장에 따르면 이런 습지에 가끔 수달도 올라와 쉬어간다고 합니다. 강 이장은 "전기는 없어도 살지만, 물은 없으면 못 산다"며 물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이 섬의 또 다른 특징은 불가사리를 밭농사 퇴비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불가사리는 전복·조개 등을 먹어치우지만 별다른 천적이 없어 어민들에게는 골칫거리입니다. 이런 불가사리를 해녀들이나 어부들이 수거해오면 주민들은 불가사리를 비를 맞지 않는 곳에 덮어두고 6개월 정도를 둡니다. 그러면 불가사리 살들이 부서져 마치 톱밥을 섞어놓은 것 같은 퇴비가 된다고 합니다.

불가사리, 바다에서는 골칫거리, 육지에서는 효자

불가사리 퇴비바다에서는 골칫거리인 불가사리가 밭에서는 좋은 퇴비가 된다. 호도는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순환시켜 사용한다. ⓒ 이철재


불가사리 퇴비는 잘 삭힌 홍어보다 10배쯤 강한 향을 내뿜습니다. 불가사리 퇴비를 밭에 뿌리고 있는 이들을 만나 그 효과에 대한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IMF 때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와 15년째 민박을 운영한다는 한 주민은 "불가사리 퇴비를 사용하고부터 마늘 및 양파의 씨알이 굵어졌다"며 "바다에서는 골칫거리지만, 육지에서는 효자인 게 바로 불가사리"라고 말합니다. 불가사리를 폐기하는 것도 큰일인데, 이곳에서는 이마저도 농사에 활용합니다.

호도는 섬 전체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방풍림으로 식재됐다는 소나무는 1960년대 일부 굵은 소나무가 벌목된 이후 그대로 있는 상태입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길지 않은 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이 섬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호도에 1박 2일 머무는 동안 네 끼를 먹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묵은 민박집은 전국에 단골이 많은 민박집이었습니다(물론, 이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지만). 사실 첫 번째 밥상을 받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상 위에 올라온 반찬이 모두 이 섬에서 나온 것으로만 꾸려졌는데, 그야말로 완전 자연식입니다.

도톰하게 살이 붙은 우럭구이, 톳무침, 게로 육수를 내만든 시금칫국, 삶은 고동을 초고추장에 버무린 반찬, 해수로 담근 김치까지…. 무엇 하나 손이 안 가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거기에 이곳에서 캐낸 자연산 더덕을 갈아 소주 한잔과 함께 먹는다면! 환상적입니다. 또 갓 잡아 삶은 고동을 바늘로 뽑아내 먹는 맛은 일품입니다.

낙지 잡이겨우내 갯뻘 깊숙히 숨어 있던 낙지는 봄이 되면 표층으로 올라온다. ⓒ 이철재


그중 압권은 육지로 나오기 전 먹은 점심입니다. 오전 내내 민박 주인 내외가 잡은 낙지와 해삼이 상에 올랐는데, 오도독 씹히면서 혀끝으로 느껴지는 짭짤한 맛과 향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서울에서 이 정도로 먹으려면 한 사람당 몇만 원씩은 부담해야 할 텐데, 이곳에서는 한 끼에 7000원 내외니 횡재한 느낌입니다.

자연이 주는 혜택이 가득한 호도.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온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호도에 풍성함과 평화로움이 깃들어져 있습니다. 여객선 창밖으로 멀어져가는 호도의 모습을 봅니다. 이 섬의 자연과 평화가 언제까지나 지켜질 수 있길 기원해봅니다.

호도에 얽힌 이야기는 오는 21일 오후 4시 30분 SBS <물은 생명이다>를 통해 방영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blog.naver.com/ecocinema)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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