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곳곳에 펄럭이는 '새마을기'에 감춰진 진실

[주장] 늘어나는 새마을운동 지원에 감시가 필요한 이유

등록|2014.02.18 10:27 수정|2014.02.18 10:27

불쾌한 통지예산사정으로 조기 중단 될 수 있습니다 ⓒ 이희동

1주일 전이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아내가 올려놓았을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구청으로부터 온 문서였는데 제목에는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 보호자용 안내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서비스에다 예산사정으로 조기 중단 될 수 있다며 밑줄까지 친절하게 그어져 있는 안내서. 뭐지?

아내는 갸웃거리는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보건복지부 정책에 방문 학습지를 지원해주는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독서 바우처)가 있는데 그 서비스가 올해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아이 당 평생 10개월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이전부터 그 이용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는데 서비스 자체가 끝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신청했다고 했다.

안내서에 적혀 있는 '예산사정으로 조기 중단 될 수 있습니다'라는 애매한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중단이면 중단이지, '그럴 수 있다'라는 건 뭐지? 그냥 예산부족 타령인 건가?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내용인즉슨 다음과 같았다.

2007년부터 정부는 배움의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는 취지로 4인 가족 기준 월평균 소득 470만 원 이하 가정에 만 2~6세 아이가 있는 경우 인당 1만5000∼2만5000원을 바우처 형식으로 지원해 왔다. 이 바우처는 학습지 회사에서 제공하는 책 읽어주기, 독서 후 느낀 점 이야기 나누기, 도서 지급 및 대여, 부모 대상 독서지도, 학습지 구독 등에 사용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학습지 회사가 끼워 팔기나 추가 구매 강요 등의 폐단이 있었고 때문에 폐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가 꽤 심각한 듯했다. 당장 우리도 신청하려 하니 학습지 회사에서 어떻게든 추가 구매를 시키려 했었고, 그와 같은 맥락으로 많은 주부들이 배보다 배꼽보다 큰 경우를 당한다고 했다. 그러니 정부에서 그 폐단을 이야기하며 제도를 폐지한다고 나설 수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찝찝했다. 물론 독서 바우처에 문제가 많다는 정부의 설명은 십분 이해했지만 그러면 제도를 고치거나 보완하면 될 것이지 왜 제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일까? 물론 정부는 다른 예산으로 다른 방식의 지원을 고민하겠다고는 했지만 공염불이 될 것은 불 보듯 빤한 바, 결국 복지예산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 정부는 이것 말고도 대선 때 제시했던 복지 관련 공약을 거의 안 지키고 있지 않은가.

복지 예산은 깎더니, 새마을운동을 지원한다고?

▲ 새마을운동 지원 조례 제정 반대 기자회견 ⓒ 김준철


위와 같은 나의 불만은 우연찮게 그날 본 어느 풍경에 의해 폭발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새마을운동지원 조례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이었다. 예산이 없어서 있던 복지 정책도 없앨 수밖에 없다던 그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정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이내 확신으로 변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새마을운동의 부활에 대한 불편함은 이명박 정부 들어 유독 눈에 띄기 시작한 새마을 기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촌스런 문양이 번화한 서울 시내 곳곳에서 펄럭이는 어색한 풍경이란. 내가 낸 세금이 저렇게 허비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처구니없었다.

왜 아무도 내게 묻지 않고 새마을 기를 당연한 듯 걸고 있는 거지? 아무리 MB정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예임을 자처한다고 하지만 철지난 60~70년대 새마을 운동을 대도시 서울에서 복기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새벽종이 울린 뒤 마을 청소하는 시대도 아니건만.

그들의 새마을 기 사랑태극기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는 새마을 기 ⓒ 이희동


서울 곳곳에 걸린 새마을 기그 어색한 풍경 ⓒ 이희동


그러나 지난 대선 우리 국민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덕분에 새마을 운동은 다시금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새마을대학원이 교육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고,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소식이 심심찮게 주요 뉴스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전국 곳곳에 새마을기가 다시 펄럭이기 시작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와 같은 새마을운동의 부활이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시각적인 불편함을 넘어서 일상의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앞서 독서 바우처 중단의 예처럼 예산이 부족하다며 복지 정책은 줄이는 반면 새마을운동 지원 조례는 계속해서 통과되고 있지 않은가. 

예컨대 강동구의회가 추진 중에 있는 조례의 주요 내용을 보자. ▲새마을운동의 계승, 발전을 위한 새마을 사업경비(안 제3조제1항) ▲새마을지도자의 교육, 훈련을 위한 경비(안 제3조제3항) ▲새마을운동조직의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한 사무국운영비(안 제3조제4항) ▲새마을 기 게양(안 제4조) ▲새마을운동조직의 행사 시 국공유재산의 무상임대(안 제5조)

▲ . ⓒ 미디어오늘 조현호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에 따르면, 현재 227개 시군구 중 155개 시군구가 채택하고 있는 새마을운동조직 육성 조례의 내용들이 위와 대동소이함을 감안할 때 이는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듯 그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며(이미 많은 새마을운동 단체들이 1980년도 제정된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에 의해 지원을 받고 있는데도 새로운 조례를 통해 사업 경비나 운영비를 지원받는다면 그것은 중복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 관련 예산도 깎아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 정부는 그 모든 것들이 지자체 수준의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자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2013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함으로써 새마을운동의 부활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시, 구가 나누어 복지예산을 조달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새마을운동 챙기기에 나섰으니, 어느 지자체가 복지 정책 대신 새마을운동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눈치를 보겠는가. 실제로 지난 대선 이후 관련 조례를 제정한 곳이 41곳이며, 지난해 10월 이후부터 2월 현재까지 14개 시군구가 앞 다퉈 조례를 제정했다.  

따라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새마을운동조직 육성 조례들은 청와대 및 정부의 미필적 고의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새마을운동을 다시 활성화시켜 당신의 아버지에 대한 신화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자신의 지지를 굳건하게 만들려는 것이며, 정부는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책에 우호적인 관변단체를 기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복지예산을 삭감하면서까지.

6·4 지방선거와 새마을운동 단체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0일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 전국에서 모인 새마을지도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청와대


그렇다면 새마을운동지원 조례와 관련하여 그 모든 것들이 정부여당만의 탓 일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광주광역시와 호남지역들의 새마을운동조직 육성 조례 안이다. 현재 정부여당과 정치적으로 거의 관련이 없는 그곳. 그런데 그곳에서조차 왜 새마을운동지원 조례는 통과됐을까?

이는 결국 현재의 새마을운동조직이 언제나 쉽게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관변단체일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물론 적지 않은 시민들이 기존 새마을운동 단체 안에서 공공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는 단편의 모습일 뿐이다. 당을 떠나 모든 정치인들에게 새마을운동조직이란 정권이나 지도자에 따라 성격이 쉽게 변하는, 그래서 항상 동원할 수 있는 단체에 불과하다.

새마을운동지원 조례와 관련하여 지역 내 민주당 의원들이 거리낌 없이 찬성하고,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때도 새마을운동조직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전국과 비교하여 수도권에서 그 조례 안이 적게 발효된 것은 그곳에 그만큼 비교적 다양한 시민사회가 존재하며, 그들이 정치인과 새마을운동조직들을 견제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동원의 문화가 아직 우리의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에 새마을운동지원 조례들이 통과되고 있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말로는 시민들의 복지를 외치지만, 자신들의 당선을 위해서는 기꺼이 복지예산을 들어 새마을운동 조직들에게 가져다 받칠 수 있는 정치인들.

따라서 유권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누가 우리의 복지비를 삭감하여 새마을운동조직에 퍼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경기가 어려워 복지예산 증액이 어렵다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다. 아직도 이렇게 허비할 돈이 남아 있지 않은가. 시민 없는 시민사회, 깨어있는 시민이 부족한 사회에서 새마을운동조직은 수많은 지역 토호 세력들의 홍위병일 뿐이다.

P.S : 다행히 서울시 강동구의 새마을운동지원 관련 조례는 그 절차적 결함으로 인해 2월 임시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추후 누가 무슨 의도로 조례를 통과시키려 하는지 시민들의 날 선 감시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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