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귀여운 개의 이중생활? 알지도 못하면서

EBS 다큐 <하나뿐인 지구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를 보고

등록|2014.02.18 17:28 수정|2014.02.18 17:28
"너무 외로워서 강아지를 한 마리 기르려고 하는데, 털이 많이 안 빠지는 종이 뭐죠?"
"아이가 강아지를 기르자고 너무 조르네요. 강아지 한 마리 기르는 데 비용이 한 달에 대략 얼마나 들죠?" 
"너무 쉽게 결정한다고요? 기르다 못 기르면 시골에 보내면 되잖아요."
"어쩜 저리 인형같이 귀엽지? 나도 강아지 기르고 싶다." 

상품으로 전시된 생명들아무런 준비 없이도 오로지 '돈만 있으면' 입양할 수 있는 문화.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조세형


개를 왜 키우려고 하는가?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외롭다는 이유로, 귀엽다는 이유로 개를 입양한다. 그리고 쉽게 "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개는 여섯 가구 중 한 가구가 기를 정도로 친숙한 동물이 되었다. 지난 14일 방송된 EBS 다큐 <하나뿐인 지구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는 개를 키우기 전 알아야 할 비밀과 개를 키워서는 안 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만 없으면 사고치는 개... 개의 이중생활이라고?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귀여운 강아지. 그러나 강아지와의 동거는 평화만이 전부가 아니다. 평소에는 온순하지만 주인이 집을 비우면 180도 돌변하여 사고를 치는 강아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외출하고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너머에는 아무데나 싸놓은 대소변, 파손된 물건 등 사고의 흔적이 가득하다. 이것을 단순히 '강아지의 이중생활'이라고 불러야 할까?

제작진은 주인이 외출한 후 홀로 남겨진 강아지의 사생활을 촬영해보았다. 주인이 외출하자마자 강아지는 집안 곳곳에 대소변을 싸놓는다. 집안을 어지르고 장판이나 벽지를 뜯는다. 늑대와 같은 울음소리도 낸다. 물론 주인은 이런 울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이 외출한 사이 개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이웃에게서 전해들었을 뿐이다.

집안을 어지럽히기에도 지쳐버린 걸까? 현관에서 꼼짝도 않고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는 인기척이 나자마자 흥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르는 강아지에게 돌아오는 것은 주인의 호된 질책.

전문가들은 영상에 담긴 강아지의 행동이 전형적인 '분리불안증' 증세라고 말한다. 분리불안증의 증세로는 집안을 어지르는 것 말고도 신체 특정 부위를 털이 빠질 정도로 심하게 핥는 행동도 있다. 주인과 분리된 불안감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제작진은 개의 심박수로 분리불안의 정도를 측정해보았다. 주인 곁에 있을 때 개의 심박수는 대략 분당 120회. 그러나 주인이 외출한 직후부터 급격히 상승하고 불규칙해진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흥분하면서 최고치에 이른다. 최고치에 이른 심박수는 평소보다 2배 가량 높은 수치인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서울대 수의학과는 주인과 분리된 개가 느끼는 스트레스를 연구하고 있다. 개의 불안 정도를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로 측정한 결과, 행동문제를 전혀 보이지 않는 개들에게서도 스트레스 호르몬 상승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문제가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해도 개는 여전히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분리불안의 원인은 단순하다. 그것은 개가 날마다 장시간 동안 혼자 지내기 때문이다. 개는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인의 체취를 풍기는 물건을 물어뜯어 대리만족이라도 얻는 것이다.

주인에게는 언제나 할 일이 있다. 직장에서 일도 해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한다. 그러나 개에게는 주인뿐이다. 하루 24시간 중 절반을 주인을 기다리며 보내는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를 8시간 기다려본 적 있나요? 매일같이 그리고 한결같이…"

이 물음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날마다 주인을 기다리는 개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잘못된 반려동물 입양문화

그렇다면 혼자 남겨진 개들만 분리불안증을 보이는 걸까? 그렇지 않다. 여러 마리를 기르는 가정에서도 분리불안증은 나타난다. 이러한 개들은 외출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집에 낯선 사람이 오면 무조건 공격한다. 그리고 함께 사는 개와 전혀 소통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원인으로 너무 이른 입양을 지목한다. 너무 어려서 어미와 헤어진 것이 분리불안증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강아지는 기본적으로 생후 8주에서 10주까지는 형제, 부모와 함께 지내야 한다. 그래야만 강아지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신호를 배울 수 있고, 커서 다른 개나 사람을 만났을 때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애견 문화는 어떤가? 가장 귀여울 때 가장 잘 팔리기 때문에 아주 작고 어린 강아지들이 상품으로 거래된다. 이들은 개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 결과 주인을 제외한 낯선 존재와 세상을 공포로 받아들인다. 

개는 인간과 다른 사회구조를 가진 존재이다. 개를 기르려면 그들의 생물학적 본성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개에게 필요한 사회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중요한 시기를 지나친다. 그냥 키우면 알아서 클 거라고 생각한다. 

도시화와 함께 개들이 집안에서 살게 되면서 개의 사회화는 오로지 주인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사회화를 거쳐야 할 시기의 어린 강아지를 상품으로 팔아댄다. 외국에는 강아지 입양에 필요한 교육이 마련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교육이 전무하다. 문제가 생긴 후에야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문제의 근본원인은 개라는 동물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다. 사람은 "못 키우겠다"고 버리면 그만이지만, 개가 당하는 고통은 너무나 크다. 개는 주인에게 삶의 일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개는 주인이 삶의 전부이다.

국내에서 개가 죽을 때까지 키우는 사람은 12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69퍼센트가 기르던 개를 1년에서 5년 안에 포기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배변, 짖음 등의 행동문제이다. 강아지는 자신의 의사를 몸짓으로 표현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문제'라고 부른다. 개는 봉제인형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당연히 주인이 싫어하는 행동도 할 수밖에 없다.

▲ EBS 다큐 <하나뿐인 지구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 화면 캡처 ⓒ EBS


▲ EBS 다큐 <하나뿐인 지구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 화면 캡처 ⓒ EBS


'우리나라에 있는 강아지들은 잠재적인 유기견'이라는 전문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기르는 문화에서 주인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사랑하니까,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는 핑계로 개를 버린다. 그러나 버림받은 개에겐 더 좋은 곳이란 없다. 우리나라의 유기견은 매년 10만 마리에 이르고 있다.

이 방송을 보고 개를 입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다. 나는 반려동물을 입양하기 전에 장점은 보지 말고 단점만 보라고 말하고 싶다. 장점은 어차피 얻게 될 혜택인데 굳이 고려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동물과 함께 살면서 감수해야 할 단점들과 포기해야 할 권리들이다.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그저 내가 누릴 것만 누리겠다는 생각은 이기심이다. 평균 15년의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감수해야 할 불편마저도 '굳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확신이 들 때 결정해도 늦지 않다.
덧붙이는 글 이 방송은 E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439&lectId=10193418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