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19회] 무공의 우열로 결말을 내는 건 강호의 이치

[무협소설 무위도(無爲刀) 19] 수배령(2)

등록|2014.02.19 10:22 수정|2014.02.19 10:22
 5장 수배령

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관조운이 부랴부랴 행장을 차리는데 밖에서 비영문 제자가 급히 문을 두드렸다.

"장문인 어른, 무림맹 사람들이 와서 대인을 급히 찾으십니다."
"잠깐, 기다리라 이르게. 내 곧 나갈 테니."

장문인 연발연은 관조운에게 눈짓을 했다. 관조운은 행장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장문인을 따라 현관문을 나섰다. 그 때 별채 대문이 벌컥 열리며 걸걸한 목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연 장문인께서 손수 나오실 것 없습니다. 저희가 장문인을 찾아뵙는 게 순서겠지요."

경장 차림의 무복을 한 세 명이 마당의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그 중 가운데 선 자는 일전에 일운상인의 임종 시에도 방문을 한 쾌자일도 온철빈이고, 왼 쪽으로 요명과 오른쪽에 있는 자는 장대한 기골을 갖춘 청년으로 낯이 설었다. 온철빈은 말로는 예법을 갖춘다고 했지만, 기별을 기다리지도 않고 별채 대문을 벌컥 연 것이며, 왠지 모르게 풍기는 위압적인 분위기가 예전과 달랐다. 

"본 맹(盟)의 명령을 받잡고자 장문인께 실례하오."

온철빈이 포권의 예를 취했다.

"무림맹에서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 식전부터 방문한단 말이오."

연발연도 포권을 하며 말을 받았다.

"다름이 아니오라, 귀 문에 머물고 있는 관 소협을 저희 무람맹에서 보호코자 하니 저희에게 인도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말이 보호지 결국 관조운을 데려가 무극진경에 관계된 비밀을 얻고자 하는 것 아닌가. 연발연은 비록 무림맹이 각 강호 문파의 상위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부당한 명령까지 들어줄  이유까진 없다고 생각했다.

"관 소협은 저희 비영문의 제자라고 할 수 있고, 어제 오늘 사이에 벌어진 관 소협과 관계되는 일은 모두 저희 비영문 내부의 일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내부적으로 조용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맹에서 물러서주셨으면 합니다."
"아니되오, 연 장문인. 관 소협을 모시는 일은 맹주를 포함한 장로 차원의 결정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비영문 내부의 일이 아니라 자칫하면 무림 전체의 일로 파급될 수 있는 만큼 저희 맹에서 꼭 처리해야만 합니다. 장문인께서도 도와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온철빈의 말투가 강경해졌다.

연발연은 잠시 뜸을 현관문에서 한 칸 내려가 댓돌 위에 머물렀다.

"관 소협은 저희 모 장문인의 임종에만 관여했지 그대들이 찾고자 하는 무극진경의 소재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소이다. 그렇게 알아주시고 돌아가서 저희 입장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연발연이 거절하자 온철빈의 표정이 굳어졌다.

"강호의 예에 따라 먼저 양해를 부탁했지만 장문인께서 저희의 듣지 않으신다면 저희로서도 강호의 도(道)에 따라 해결하는 수밖에 없소이다."

온철빈이 허리에 찬 도(刀)에 손이 가자, 옆에 있던 요명과 장대한 기골의 무사도 각자의 병장기에 손을 대었다.

"아무리 무림맹이라 한들 대체 무슨 근거로 우리 제자를 마음대로 구금할 수 있단 말이오. 굳이 강호의 이치를 따지겠다면 나도 사양하지 않겠소."

연발연도 물러서지 않았다. 별채의 순라들 돌던 비영문의 제자도 장문인의 곁으로 와 여차하면 병장기를 꺼낼 태세를 취했다.

대저 강호의 도란 겉으로는 예를 취하는 듯하나, 결국 무력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 따라서 무공의 우열로 그 결말을 내는 것이 강호의 이치다. 상대가 강호의 이치 운운하면서 무력을 내비치자 연 장문인도 이제는 물러설 수가 없게 되었다. 천하제일 비천문에 뿌리를 둔 비영문 아니던가. 비영문의 마당에서 제자가 무력으로 외부인에게 연행되었다면 이는 비영문의 체면을 떠나 향후 입지에 문제가 되고 만다.

하지만 상대인 쾌자일도 온철빈도 무시할 순 없는 상대다. 무림맹 금릉지부를 책임지고 있다면 그의 실력이 구대문파의 장로급은 된다. 거기다 요명이란 자와 장대한 자의 눈빛에서도 결코 두려워하는 눈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젊은이의 용기가 아니라 많은 실전을 통해 단련된 예리함이라고 연발연은 파악했다.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비영문의 제자는 수련에 임한지 얼마 되지 않는 햇병아리들이다.

그리고 이곳 별채는 본채와 연무장과 한 마장이나 떨어져 있다. 다른 제자들이나 사부들이 이곳에서 드잡이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 것이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자신이 온철빈과 요명을 한꺼번에 상대한다고 해도 장대한 청년과 제자 둘을 대결시키기에는 왠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손에 검을 쥔 것도 아니다. 뒤에는 한시가 급하게 길을 떠나야 하는 관조운이 있다. 연발연인은 갑자기 생각이 복잡해졌다.

"장문인께서 빈 손으로 저를 맞이하게 하는 건 나 쾌자일도 온철빈을 천하에 웃음거리를 만드는 일이 아니겠소. 검을 가져 오시오."

온철빈 도를 거꾸로 쥐며 말했다.

"무인은 무기를 탓하지 않는 법. 우리 비영문이 검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권이나 장 역시 그 못지않소. 그러니 사양치 말고 대결에 임해주기 바라오."

연발연은 은근히 상대를 도발하였다. 말인즉은 검이 없으면 없는 대로 상대하겠다지만, 이는 뒤집어보면 너 따위는 굳이 검이 없더라도 상대할 수 있다는 조롱 아닌가. 무인은 이런 식의 심리전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온철빈은 무림맹의 고위급답게 연발연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럼, 하면서 도를 곧추세워 중단 자세를 취했다. 상대의 베풀어주는 호의를 굳이 마다하지 않겠다기보다는 상대의 심리전에 말리지 않겠다는 표명이다. 

빈 손인 상대에게 먼저 선수를 쓰기 미안했던지 온철빈 마당 한 가운데서 자세를 취하며 기다리고 있다. 연발연은 기고세(旗鼓勢)를 취하며 왼손을 눈높이에 두고 오른 팔꿈치를 명치 앞에 두고 손을 앞으로 향했다. 좌우로 누르며 나가다가 상대의 공격이 있으면 횡(橫)과 벽(劈)으로 되치기 하는 자세다.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이윽고 호포두권(虎抱頭拳)으로 온철빈의 허리를 내지르는 척하다가 그 옆의 요명에게로 선풍각(旋風脚)으로 돌려차며 공격을 했다. 수비세에서 갑자기 공격으로 나오자 온철빈이 뒤로 물러서자마자 요명은 자신에게로 느닷없이 들어온 각술에 슬개골을 차이고 말았다.

이어 연발연이 "관 소협!"하고 짧게 소리쳤다.

관조운은 자신의 이름만 짧게 부른 연 장문인의 뜻을 알아챘다. 이렇게 드잡이질이 벌어질 때를 틈타 도망을 치란 의미였다. 관조운은 앞뒤 볼 것 없이 별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관조운이 돌아서는 걸 보고 무림맹의 장대한 무사가 검을 뽑고 한 길 높이로 뛰어들며 별채로 돌진했으나 비영문의 제자 둘이 그 앞을 막아섰다. 별채 마당은 연발연을 상대로 온철빈, 요명이 결투를 벌이고, 다른 쪽에선 장대한 무사와 비영문의 제자 둘이 한데 엉켜서 초식을 주고받았다.
덧붙이는 글 월, 수, 금, 주3회 연재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