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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미사 방해집회, 거짓말들의 향연

등록|2014.02.19 15:16 수정|2014.02.19 15:16
지난 17일 난생 처음 원주를 다녀왔다. 우산동성당에서 봉헌된 원주교구 시국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는 충남 태안은 물론이고 바로 이웃 큰 동네인 서산에도 원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도리 없이 서울로 올라가서 강남터미널에서 원주행 버스를 타야 했다.

지난 1월 6일의 수원교구 시국미사(기산성당), 2월 3일 수도회연합회 시국미사(서강대 예수회센터), 10일 광주대교구 시국미사(남동 5.18기념성당)와는 달리 원주교구 시국미사는 저녁 7시에 거행된다고 했다.
 
원주는 초행인 데다가 혼자 움직이는 밤길 운전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택시도 타야하고, 시간 손실도 크고, 운전 수고 이상의 고생이 따르지만, 내 나이와 건강문제를 생각하면 그게 조금은 나을 터였다.

천주교 원주교구 시국미사천주교 원주교구 시국미사가 17일 저녁 7시 원주시 우산동성당에서 봉헌됐다. 42명의 사제와 400여 명의 수도자,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원주교구 원로사제 박무학 신부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 전재우


미사 후 서울에서 온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동료들의 승용차에 동승하여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신림동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대학생 아들 녀석의 방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오전 아산시 신창면에 있는 순천향대학교로 갔다. 오후 2시부터 4시간가량 진행된 '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 시행하는 '마을기업' 설립에 관한 교육에 참여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

그런 연유로 엊그제 원주교구 시국미사 관련 글을 또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쓴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취재 목적으로 시국미사에 참례하는 게 아니다. '행동하는 양심'을 생각하면서 가톨릭교회의 가장 거룩한 핵심예절인 미사를 봉헌하는 가운데 더욱 뜨겁게 기도하기 위해서 고생스럽게 먼 길을 가곤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글을 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글쟁이이므로 작게나마 기록은 남기고 싶다.

보수단체 방해집회, 거짓말 남발

이번에는 미사 내용보다도 미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에 관해 한마디 하고 싶다. 6시쯤 택시를 타고 우산동성당에 도착하니 성당 옆 골목길에 고엽제전우회 차량들이 여러 대 진을 치고 있고, 정문 앞 길 건너편에 100여 명의 군복들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다. 군복들 사이에는 사복을 한 이들도 있었는데 '대수천(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회원들과 '대한민국경우회' 회원들이라고 했다.   

고엽제전우회 회원이기도 한 나는 우선 군복차림을 한 고엽제회원들을 연민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각 지역별로 인원 점검을 하고 있었다. '영동지회 회원들 손들어 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충북 영동에서도 고엽제 군복들이 출동을 한 모양이었다.

시국미사 방해집회17일 저녁 원주시 우산동성당에서 거행된 원주교구 시국미사를 방해하는 고엽제전우회를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미사 시작 1시간 전부터 성당 정문 앞 길 건너편에서 집회를 열었다. ⓒ 한수진


저런 일에 활용하라고 고엽제전우회 각 지부와 지회에 지자체들에서 차량 제공을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런 일에도 고엽제 차량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위법이 아닐까? 천지 분간을 모른 채 무시로 동원되는 저 사람들보다도, 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발광을 하게 만드는 윗선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온갖 험악한 소리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저주하고 특정 사제들의 이름도 입에 담으며 갖가지 구호들을 유도, 남발하고 있었다. 빨갱이 처단, 종북세력 추방, 위장사제 색출 등의 용어들이 난무하고, 자폭하라느니, 사죄하라느니, 북한 김정은의 품으로 가라느니 따위 온갖 상투적인 구호들이 마구잡이로 동원되고 있었다.

성당 정문 쪽의 신자들 중에는 노인들도 여러 명이었다. 고엽제 군복들과 같은 또래인 신자 노인들 일부가 고엽제 군복들을 향해 "너희가 빨갱이고 종북이다!", "북한을 닮고 싶은 너희들이나 북으로 가라!"는 소리로 응수를 했다. 그때마다 군복들 쪽에서는 더욱 큰 욕설과 고함이 빗발쳤다.        

젊은 신자들 일부가 고엽제 군복들을 향해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다. 현수막에는 "평화롭게 미사를 봉헌하게 해주세요!"라는 간절한 말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자 고엽제 군복들은 더욱 큰 소리로 기세를 올렸다.

나는 잠시 정문 가까이 서서 고엽제 군복들을 주시하며 마이크를 입은 민간복장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고함에 가까운 소리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거짓말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음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는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추기경 서임과 관련하여 청원운동을 벌인 사실도 입에 올렸다. 그 청원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단호히 거부하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고 했다. '가톨릭행동'이 서명 작업을 마치고 청원문을 영어와 이태리어로 번역하여 교황청으로 보내려는 찰나에 예상보다 이르게 교황청의 추기경 서임 발표가 나온 사실을 그는 모르는 걸까? 훤히 알면서도 태연히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걸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단호히 거부를 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었다.

원주교구 시국미사17일 저녁 원주시 우산동성당에서 거행된 원주교구 시국미사를 방해하는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성당 정문 앞 길 건너편에서 열리고 있을 때 우산동신자들이 “평화롭게 미사를 봉헌하게 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보이기도 했다. ⓒ 한수진


그는 또 염수정 추기경을 한국천주교의 수호자라고 추켜세웠다. 한국교회 보수 세력의 대부라는 말도 했다. 지난해 11월 22일 군산 수송동성당에서 봉헌된 전주교구 시국미사 이후에 나온 염수정 추기경의 발언들을 열렬히 입에 담으면서도, 11월 29일 명동성당에서 있은 안드레아 영명축일 축하미사 강론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 내용을 소개하면서 행한 발언들은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을 그가 전혀 모르는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의 말에 의하면 염수정 추기경은 물론이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들 편이었다. 염수정 추기경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들의 배후자이고 지원세력인 셈이었다. 그는 그것을 열렬히 강조했다. 정확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천주교 시국미사를 방해하는 일에 염수정 추기경은 물론이고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끌어들이는 판국이었다.

염수정 추기경이 저 사람의 저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끌어들여 거짓말에 활용하는 저 사람들의 행동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면(전해 듣기라도 한다면) 어떤 마음일까? 나는 돌연히 그런 의문 때문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거리낌 없이 공중 앞에서 거짓말을 해대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민간복장으로 보아 '대수천' 관계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까?

우산동성당은 보수단체들의 미사방해집회를 예상하고 미리 경찰서에 성당 앞 길 건너편까지 집회허가를 요구했는데, 경찰 상부의 어떤 작용이 있었는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원주교구 시국미사17일 저녁 원주시 우산동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원주교구 시국미사에서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이동훈 신부의 강론을 귀담아 듣고 있다. ⓒ 전재우


나는 무겁고도 참담한 마음을 안고 성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기도에 열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엽제 군복들의 살벌한 구호들과 마이크를 잡은 민간복장 노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거짓말의 향연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분심이 커지는 것만 같았다.

미사는 원주교구 원로사제이며 정의구현 원주교구사제단 대표인 박무학 신부의 주례로 진행되었다.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동훈 신부가 강론을 했다. 그런데 강론 중간에, 또 강론이 끝났을 때 한 노인이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모든 신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는 스스로 일어나 성당 밖으로 나갔다. 그 외로는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영성체 후 기도' 다음에는 제대 옆에 설치된 스크린에 동영상 두 편이 소개되었다.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내용들을 소개하는 영상이었고, 또 하나는 40년 전 정의구현사제단의 창립을 촉발시켰던 초대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의 유신 비판과 투옥, 인권활동 모습들을 담은 영상이었다.                         

동영상 소개 후에는 원주교구 원로사제 최기식 신부의 인사에 이어 이한기 신부가 원주교구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선언문 말미에서는 이한기 신부의 선창으로 42명의 사제들과 400여 명 신자들 모두 함께 '부정선거 규탄! 민주주의 회복!'과 '권력의 시종 언론은 회개하라!'는 구호가 적힌 작은 피켓들을 들고, 그 외 네 가지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원주교구 시국선언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원주교구 시국미사17일 저녁 7시 원주시 우산동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원주교구 시국미사에서 이한기 신부가 시국선언문을 낭독할 때 신자들이 뜨겁게 호응하고 있다. ⓒ 전재우


                                   
원주교구 시국 성명서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 정의의 성과는 영원히 평온과 신뢰가 되리라" (이사 32,17)

지난해 8월 15일 원주교구 사제들은 국정원의 불법 정치개입 사건과 이에 관한 경찰청의 허위 발표, 국가 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으로 공개하고 이를 선거에 악용한 사실을 규탄하였다. 진실과 정의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현 정치상황에 대하여 사제로서 침묵하고 외면할 수 없기에 시국선언이란 형식으로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국정원 개혁안을 제시하라고 요청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군 사이버사령부, 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 개입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기대하며 깊은 인내로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사제들뿐만 아니라 국민 다수의 요구를 끝까지 외면한 채 우리 모두를 참담하게 만들고 있다.

국정원 수사를 진행하는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캐는 방식으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며 국정조사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최근에는 국정원 수사 외압으로 의혹을 받았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특별검사제 도입'은 정치인들의 싸움으로 요원해지고, 그동안 피땀으로 일구어온 민주주의가 무너져 과거 독재정권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거짓 언론은 진실의 여부를 판별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함에도, 진실을 바라는 이들을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며 국가 공동체를 분열로 몰고 가는 주범이 되고 있다.

성경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 정의의 성과는 영원히 평온과 신뢰가 되리라"(이사 32,17)고 선포한 것처럼, 국가의 참된 평화는 정의를 바로 알리고 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전 방위로 개입한 관건 부정선거인 지난 18대 대통령선거 과정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 이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대통령의 책임 있는 사과와 후속조치를 촉구하는 바이다.

△ 국가기관의 총체적 불법부정 대선개입 행위의 총 지휘부였던 국정원을 해체하라.
△ 전 방위적 관권 부정선거의 총책임자 이명박을 처벌하라.
△ 총체적 불법부정으로 당선된 박근혜 정부는 회개하고 책임지라.
△ 권력의 시종 언론은 회개하고 언론의 본분에 충실하라.

2014년 2월 17일
천주교 정의구현 원주교구 사제단, 천주교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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