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클럽 사장 향응 받은 검사 출신 인권위원이라니...
유영하 새누리당 당협위원장, 국가인권위원 선출 논란... 민주당, 자진사퇴 촉구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관련한 뇌물죄 등의 의혹에 대해 자신을 변호할 사람으로 유영하(54)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청와대가 15일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유 변호사에 관한 2014년 <오마이뉴스> 기사를 다시 싣습니다(2016.11.15) [편집자말]
하지만 유영하 인권위원이 새누리당 군포시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던 '현역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인권위원 선출은 상당히 정치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그의 선출안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민주당이 지명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으로 있던 사람을 인권위원에 추천한 것은 인권의 가치를 뒤흔드는 인사 폭거이자 국가인권위를 모독하는 것"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정 수석부대표는 "국가인권위는 독립적 국가인권기구이기 때문에 정권의 전리품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며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측근을 위원장에 앉히더니 현역 정치인을 인권위원에 앉히는 것은 국가인권위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보고 정당의 시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정애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유영하 인권위원이 ▲ 검사 시절 나이트클럽 사장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고 ▲ 토마토 저축은행 부행장으로 근무하다 영업정지 전에 퇴사했고 ▲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범인을 변호하며 무죄를 주장한 점 등을 인권위원 지명 철회 사유로 제시했다.
한 대변인은 "새누리당은 부패, 비리, 부도덕, 반인권 의혹을 받고 있는 친박인사 유영하 후보가 과연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나?"라며 "국회 일원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인사로 이런 인사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것조차 부끄럽다"라고 꼬집었다.
대학시절 '노동야학'을 했던 그였지만...
▲ 새누리당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이 2012년 4월 4일 오후 군포시 산본중심상가 원형광장을 방문해 이 지역에 출마한 유영하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최윤석
1962년생인 유영하 인권위원의 고향은 부산 서면이다. 하지만 부친이 사기를 당해 직장을 군포로 옮기는 바람에 초등학교 마지막 학기를 군포에서 마쳤다. 그가 이후 군포를 정치적 근거지로 삼은 이유다. 그는 안양중학교와 수원 수성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면, 흥미로운 그의 대학생활이 나온다.
"학교방송국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기 시작하던 중에 당시 군부 정권을 비판했던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방송국에서 제명을 당하였고, 아웃사이더가 된 나는 가정교사로서 충실히 내 역할을 하는 것에 나을 묶어 버렸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난 가정교사를 그만 두었고,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했던 노동야학을 하면서 대학시절을 보냈다."
유 인권위원이 군부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노동야학을 한 것을 보면 그도 한때 '운동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신군부 쿠데타와 19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시작한 '80년대'의 시대적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 '새누리당 종북몰이 전문꾼'으로 활약하는 김진태 의원이 1980년대에 <해방전후사의 인식>, <민중과 지식인>, <민족경제론> 등을 읽고 '잠시' 의식화되었던 것과 비슷한 경로다.
하지만 김진태 의원이 그랬듯이 유 인권위원도 '현실적인 길'을 선택했다. 제대한 뒤 잠시 방황하던 그는 "세상에 빚을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자" 고시공부에 뛰어들었고, 지난 1995년 창원지검에 발령받아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순천지청과 청주지검, 인천지검, 서울북부지검 등을 거쳤다. 주로 강력부와 특수부 검사로 활약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검사생활을 이렇게 회고했다.
"검사시절 나는 융통성이 없었고 윗분들의 걱정도 꽤나 받았었다. 난 원칙을 절대 훼손하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자부했었고, 특수부 검사의 생활은 내게 벅찬 보람과 감동도 주었지만 포기하고 싶은 좌절감도 동시에 주었다. 검사시절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지역으로 발령을 받지 못했었다. 1998년 나는 모범검사 표창을 받았다. 그때 나는 '다음 번 인사는 내가 지원하는 1, 2, 3지망 중에서 한 곳으로는 보내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 후 수뇌부와는 내가 맡은 사건으로 연이어 부딪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는 시쳇말로 '간이 배 밖에 나온 검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모범검사로 선정된 다음 인사에서도 물(?)을 먹었다. 허탈을 넘어 분노마저 치밀었고,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은 조직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참으면 언젠가는 널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다'라고 간곡하게 말리시던 검사장님이 제출했던 사표를 찢어버렸지만 그때 받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계속된 특수부 검사의 생활은 대출금만 늘게 하였고, 잠시 외도를 했던 강력부 검사생활은 나로 하여금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하였지만 나는 지쳐 있었다."
검사생활 10년 못 채운 '진짜 이유'
유 인권위원은 검사생활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검찰을 나왔다. 그는 그 이유로 인사문제, 수뇌부와 갈등해온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검찰을 나올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 인권위원은 청주지검에서 근무하던 지난 2003년 1월 5월 두 차례 이원호 K나이트클럽(청주시 소재) 사장으로부터 180만 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사장은 비슷한 시기 양길승 당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접대(일명 '양길승 파문')했던 인물이다. 그의 향응 수수 사실이 드러나자 법무부는 같은 해 11월 '감봉 3개월'이라는 징계처분을 내렸다.
이후 검사를 사직한 유 인권위원은 지난 2004년 2월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이씨가 검찰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 참석해 20만 원 상당의 식대를 임의로 계산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원고패소 판결했다.
"2003년 5월 검찰 직원 식대를 이씨가 대신 내고 K나이트클럽에서 이씨와 술을 마신 뒤 술값을 내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 자신이 이전에 구속, 기소한 바 있는 이씨에게서 향응을 제공받은 것은 본인과 검찰조직 전체의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나이트클럽 사장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아 징계받은 전력이 유 인권위원의 정치행보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다. 그는 검찰에서 나온 직후인 지난 2004년 정치권에 들어가 17대(2004년)·18대(2008년)·19대 총선(2012년)에서 잇달아 새누리당(한나라당) 후보로 공천받는 데 성공했다. 공천심사위에서조차 '나이트클럽 사장 향응 수수' 전력시비가 일었지만 공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유 인권위원은 17대 총선에서는 총선시민연대에 의해 '낙선대상자'로 선정됐고, 18대 총선에서는 '부패·비리 혐의로 논란이 된 총선후보 18명'(참여연대 자료)에 포함됐다. 특히 19대 총선에서는 그가 지난 2011년 9월 토마토저축은행(약 1만5000명에 1855억 원 피해)이 영업정지되기 직전에 퇴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뒷말'을 낳았다.
유 인권위원은 세 차례 총선에서 모두 공천받는 데는 성공한 반면, 국회에 입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19대 총선 출마를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 총선 때마다 각별하게 챙겨
▲ 새누리당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이 2012년 4월 4일 오후 군포시 산본중심상가 원형광장을 방문해 군포시에 출마한 유영하 후보의 손을 맞으며 격려하고 있다. ⓒ 최윤석
한정애 민주당 대변인은 유 인권위원을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측근 인사"로 규정했다. 특히 그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법률지원단장을 맡으면서 '친박인사'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김경준씨 등을 만나는 등 이명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BBK사건'을 맡았다. 김경준씨에 의해 '기획입국'을 사주한 박 후보쪽 인사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당시 그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법무부장관에 발탁될 것이다'라고 주변에 얘기하고 다녔다"라고 전했다.
유 인권위원을 향한 박 대통령의 관심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8대 총선 때 박 대통령은 그의 선대본부 개소식에 참석해 그를 이렇게 추켜세웠다.
"지난 17대 총선 당시 탄핵 역풍으로 능력있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낙선해 가슴이 많이 아팠는데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유영하 후보다. 유 후보가 4년 동안 열심히 준비해 개소식을 열게 되니 섭섭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 유 후보는 무슨 일이든지 맡기는 일은 다 해내는 분이다. 이런 분과 함께 일하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박 대통령은 '친박 학살 공천'에 항의하는 표시로 전국 지원유세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열흘 간의 칩거를 깨고 유 인권위원의 개소식에 참여한 것이다. 게다가 19대 총선에서도 수차례의 지원유세에 나섰을 정도로 그를 각별하게 챙겼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성폭력범 변론' 전력에 시달렸다. 상대후보였던 이학영 민주당 후보쪽에서 "2009년 한나라당 군포시 당협위원장이던 유 후보는 당시 여중생 집단 성폭행범을 변호하며 무죄임을 강력히 주장해 피해자에게 정신적 사형 선고를 내렸다"라며 "사회적 약자 보호와 공공의 이익 추구를 위해 노력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성을 망각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유 인권위원은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국가인권위법 제1조)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에 선출됐다. '새누리당 추천-강창희 국회의장 지명'이라는 형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각별하게 챙겨온 '박심'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유 인권위원은 예금보험공사와 한국마사회, 한국석유공사, 대우해양조선 등의 고문변호사를 거쳐 현재 법무법인 '새빛' 변호사를 맡고 있다. 그가 인권위원에 지명되면서 신고한 재산은 11억700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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