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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 쫓기는 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무협소설 무위도(無爲刀) 20] 은혜(1)

등록|2014.02.21 10:00 수정|2014.02.21 10:00
 6장 은혜

무위도無爲刀 ⓒ 황인규


관조운은 별채의 뒷문을 통해 후원의 담을 넘었다. 비영문을 우회한 다음 멀리서 비영문을 바라보니 소매 없는 회색 겉옷에 '맹(盟)'자를 새긴 무림맹 복장을 한 자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다. 조운은 장원의 숲길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대로 쪽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그가 대로 쪽으로 뛰어가는 게 목격되었는지 갑자기 고함치는 듯한 큰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무림맹 대원들이 탄 세 필의 말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 다행히 인가에 다다랐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수백호가 이어져 있는 동네다. 조운은 골목을 이리 꺾고 저리 꺾고 하며 뛰다가 어느 인가의 뒷담을 무작정 넘었다. 골목골목이 굽이쳐 있는 인가를 그들이 다 수색할 순 없을 것이라는 속셈에서였다.

어느 집 뒤울안에 엎드려 있으니 무림맹 대원들의 말이 지나갔다 다시 오고 이번에는 각각 세 방향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운은 그들의 말발굽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작아지고 난 뒤에도 차 한 잔 먹을 시간을 보낸 후에야 나왔다. 그는 골목을 거닐며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금릉을 빠져나가야 한다. 방이 붙었다면 분명 성문은 관졸들이 지키고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검색할 것이 틀림없다. 은화사, 금의위에다가 이제는 무림맹에 의해서까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뭐가 뭔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불과 하루 사이에 자신이 무슨 대역 죄인이 된 것처럼 세상이 자신을 쫓고 있지 않은가.

그는 인가 사이를 빠져나와 금릉부성의 가장 큰 성문인 취보문(聚寶門)으로 갔다. 처음에는 자금산과 이어진 동쪽 태평문으로 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 취보문(聚寶門) 앞은 성시(城市)가 있고 난장이 벌어져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네 개의 다중 옹성인 취보문을 관졸들이 창을 세우고 오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문하며 짐까지 검사하고 있다. 아직은 용모를 그린 방까지 전달이 안 됐는지 그림을 가지고 대조하진 않았다.

관조운은 자신의 복장을 보았다. 어제 비영문에서 은화사로 연행 될 때의 그 차림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비영문에서 복장이라도 갈아입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들 틈에서 성문을 살피고 있는데 다섯 마장 앞에서 배자의 등에 노란 금실로 '금(金)'가 새겨진 비단 옷을 입은 금의위 무사 둘이 말을 타고 사람들 사이를 살펴보며 오고 있다. 그들은 관조운 또래의 사내가 있으면 어김없이 세워서 용무를 물어보았다. 관조운은 급히 방향을 틀어 반대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맞은편에서 무림맹 대원들이 말 위에서 사람들을 살피고 있다. 관조운이 아까 자기를 쫓아왔던 무림맹 대원들이라면 자신이 쓰던 유건(儒巾)은 벗는다 하더라도, 입고 있는 옥색 창의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또 몸을 숨겨야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진 만두집이라도 들어가 일단 시선을 피하려는 데 말 위에 있던 무림맹 대원들이 관조운 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조운 급히 만두집으로 뛰어들어 갔다. "어서옵쇼" 반갑게 맞이하는 점소이의 인사도 관조운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관조운은 실내로 황급히 들어갔다.

"손님, 안에는 좌석이 없습죠. 이곳 탁자에서 드시는 게 바깥 구경도 하고 가장 좋습죠, 헤헤."

점소이가 굽신거리며 그를 향해 말했다.

"여보게, 내가 뒤가 급해서 그러니 일단 볼일 좀 해결하고 난 뒤에 앉겠네. 그나저나 뒷간이 어딘가?"

관조운이 점소이를 향해 애원조로 물었다.

"아, 뒷간이라면 당연히 뒤에 있습죠."

점소이가 별 걸 다 물어본다는 투로 쳐다본다. 틈만 나면 공자왈, 맹자왈 따위를 읊어대며 뒷간이라고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지 않을 것 같이 고상 떨고 사는 서생 놈도 벨 수 없구먼. 점소이가 아무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관조운 뒷간으로 가는 척하다가 뒷담을 넘은 다음 뛰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성문 쪽으로 갔다. 성문 앞에는 우마차며 짐꾼이며 보부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또 뭣 때문에 성문을 막고 갈 길이 먼 아랫사람들의 발목을 잡는지, 하는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관조운은 어디론가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았다. 앞쪽에서 금의위 무사들이 탄 말이 관조운 쪽을 향해 오고 있다. 아까처럼 객잔이라도 들어갈까 했는데 포목점과 도자기전만 늘어서 있을 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가 두리번거리다가 금의위 무사와 눈이 마주쳤다. 금의위 무사는 관조운을 보더니 옆에 있는 무사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며 그를 향해 오고 있다. 관조운은 다급했다.

그때 크고 화려한 마차가 달려오더니 관조운이 있는 곳에서 한 장 정도 앞에 급히 섰다. 마부가 어자석(御子席 : 마부석)에서 급하게 내리더니 도기전으로 들어간다. 관조운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마차의 문을 열고 안으로 쑥 들어갔다. 어쩌면 비어 있을지도 모를 행운을 기대하고.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네."

휘장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렸다. 여인은 비단을 펼쳐놓고 수를 요모조모 살펴보며 말을 하고 있다. 여인은 마차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마부로 착각하고 말을 건넨 것 같았다. 마차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아무 말이 없자, 여인은 한 손으로 휘장을 약간 걷어내며 쳐다보더니 헉, 하고 말문이 막혔다.

"누, 누구 시죠?"
"쉬잇!"

관조운은 검지를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해달라는 시늉을 했다.
여인은 말문이 트이지 않았는지 놀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

관조운은 눈앞의 여인을 빨리 안정시키는 것만이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쫓기는 몸입니다. 부인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여인은 뜻밖의 침입자가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제서야 놀란 표정에서 벗어났다. 그러더니 관조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덧붙이는 글 월, 수, 금 주3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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