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인천 정명 600년 '인천선언문', "도대체 무슨 소리야"?

모호한 표현·역사적 사실관계 등 논란거리 많아

등록|2014.02.21 18:41 수정|2014.02.21 21:12
인천시는 지난해 미추홀 2000년, 인천 정명 600년을 기르는 '인천선언문'을 송영길 인천시장 명의로 발표했다(아래 전문 참조).

인천시는 백제를 건국한 비류가 기원전 18년 인천의 문학산에 도읍을 정하면서 '미추홀'로 불리기 시작한 지 2000년이 됐고,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에 '인천'으로 불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언문을 채택했고, 조만간 이 선언문을 새긴 기념비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부근에 세울 계획이다. 제막식 등도 계획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에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과 공동으로 '미추홀 건국 2000년, 인천 정명 600년'을 기념하는 인천역사 퀴즈대회도 열었다. 이밖에도 영상물 제작 등 인천 정명 600년 관련사업 여섯 가지를 진행했다.

공감대 형성 안 된 '인천선언문' 채택

그런데 시가 만든 '인천선언문'이 인천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일방적으로 채택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인천시는 이 사업을 인천발전연구원에 위탁했고, 선언문 초안을 국내에서 문학평론가로 잘 알려진 인하대학교 교수가 작성했다. 몇 차례 교정을 거쳐 선언문이 탄생했다.

선언문(宣言文)은 말 그대로 선언하는 내용을 적은 글이다. 통상 국가나 단체가 자기의 방침과 주장을 외부에 정식으로 표명하기 위해 작성한 글을 뜻한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혁명선언문이나 미국독립선언문이 유명하고, 우리에겐 기미독립선언문이 친숙하다.

전문가 몇 명에게 '인천선언문'에 관한 의견을 들어봤다. 그 결과, 여러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일부 시 공무원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언문이 그대로 채택됐다"고 전했다.

먼저 '인천선언문'의 표현이 모호하고 역사적 사실관계가 맞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황해가 열리면 인천이 흥하고, 황해가 닫히면 인천이 쇠했다'는 표현은 모호하다. 한반도에 전란의 먹구름이 낄 때 인천은 어김없이 그 한가운데 있었다. 러일전쟁이 그랬고, 한국전쟁이 그랬다.

'비류백제가 바다로 걸어간 뒤'의 표현 역시 모호하다. 역사적 사실관계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원 제국의 황혼'이라는 표현도 모호하다. 황혼(黃昏)은 사람의 생애나 나라의 운명 따위가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해 종말에 이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외세 침입으로 민초들이 고통을 받은 것을 감안한다면, 긍정적 감상주의적 표현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조선이 출범할 새 부평이 그 초석이 되었거늘'이라는 표현 역시 조선의 개국과 부평의 연관성을 찾을 만한 역사적 사료가 없는 상황에서 지나친 표현이란 지적이 나왔다.

'소현왕후의 어짊 덕에 도호부로 승격했다'는 표현 역시 사실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강희맹의 '승호기'에는 인천이 부(部)에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된 해를 세조 6년(1460년)으로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소현왕후의 외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오류라는 지적이 많다. 실록에는 인천의 도호부 승격과 소현왕후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는 어떠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인천은 세조 5년(1459년)에 이르러 자성왕비의 외향임을 이유로 '군'에서 '도호부'로 승격했다. 이는 세종실록, 대동지지, 증보문헌비고 등의 기록물에서도 확인돼 인천의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수정해 통용하고 있는 사실이다.

'개항장 제물포는 식민의 거점'이란 표현도 문제가 된다. 거점(據點)은 어떤 활동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점을 뜻한다. 식민사관적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어, 차라리 '식민의 폐허(廢墟)'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해방이 분단과 손잡고'는 해방의 전제가 분단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표현이다. '가까이 통일 한반도를 몽상하며'라는 표현도 몽상(夢想)이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을 뜻해, 논란이 된다. 조국통일은 7000만 민족의 염원임에도 이를 '몽상'이라는 비현실적인 생각으로 오인할 수 있다.

'자유롭고 더 평등하고 (중략) 600년의 출범을 황금의 약속으로 다짐하노니'라는 표현도 지적된다. 이를 두고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 이사장은 "그 말의 진의를 알아들을 도시 안팎의 인사가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 어렵겠거니와 이런 선언을 하고, 하지 않고의 차이가 무엇이겠는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혹평했다.

하 이사장은 인천선언문에 대해 '또 하나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평가절하 했다.그는 "이런 글이 이렇게 공식적인 문건으로 탄생하게 되는 인천의 오늘 문화적 환경과 그 권력의 토양을 우려하는 것이다. 어떤 안하무인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고서야 이와 같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이토록 끝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예산 편성해놓고 제막식 일정도 못 잡아

현직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정아무개씨는 "억지로 미사어구를 많이 가져다 붙인 느낌이 강하다. 선언문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학생과 인천시민들은 좀처럼 알 수 없다"고 한 뒤 "'세계를 개조하는 작업'이라는 표현은 '고쳐 만든다'는 제국주의적 관점을 그대로 나타낸다. 요즘 키워드는 문화의 다양성인데, 시대정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구아무개 초등학교 교사는 "현재 4학년 때 인천 향토사를 가르치는데, 아이들과 함께 인천선언문을 읽어보는 상상을 해봤다. 교사인 나도 이해를 못하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다"며 "과연 이 선언문을 누구에게 읽히고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선언문 마지막엔 '송영길 인천시장'으로 기재되어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송 시장이 작성한 것처럼 선언문에 이름을 명기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역사적 기록물인 만큼 '인천시민'이나 이름을 뺀 '인천시장'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문제의식과 논란으로 시는 인천선언문을 발표하고도 관련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예산 수억원이 편성됐지만, 시는 선언문 기념비 제막식을 언제 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역사의 기록물로 남을 선언문이 몇몇 인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돼 뒷말이 나오자,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시 관계자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시사인천>과 한 전화통화에서 시 관계자는 "공감(표현상 문제)이 되는 부분도 있다. 마지막에 '송영길'을 넣을지 말지 고민이 있다. 아직도 검토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시 관계자는 "제 판단에도 역사를 나열해 서술했다. 발표는 했지만,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막식 등에 대해서는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맞다. 연표도 넣어야한다. 회계과에 입찰 의뢰를 해놓은 상태다.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선언문

비류沸流 왕자께서 남행南行하여 이곳 미추홀彌鄒忽에 나라를 세운 이래,
황해黃海가 열리면 인천仁川이 흥하고
황해가 닫히면 인천이 쇠衰했다.
비류백제百濟가 바다로 걸어간 뒤
해양 고려高麗의 융성 속에 소성邵城이 인주仁州로 부활했다.
일곱 분의 임금님을 낳은 인주는 나라 경사의 원천인저!
몽골이 개경開京을 유린하자
전시 수도 강화江華는
신불神佛이 보우하사 항몽 전쟁을 지휘했다.
원元 제국의 황혼에 선비의 나라 조선朝鮮이 출범할 새
부평富平이 그 초석이 되었거늘
태종太宗 13년 인천仁川이 그 이름을 얻고
소현왕후昭憲王后의 어짊 덕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했다.
왜란과 호란의 병화兵禍를 겹으로 겪었더니
태평의 꿈 속에 서풍西風의 기세가 맹렬하고
양요洋擾를 이겨낸 자부심 뒤로 서양의 주구走狗 일제가 닥쳤다.
개항장 제물포濟物浦는 식민의 거점,
역사의 운동은 신비롭다.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협동 속에 새 인천은 근대도시의 위대한 실험실인 것을,
해방이 분단과 손잡고 찾아온 8월 15일,
대한민국大韓民國 인천은 최전선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민주주의를 수호했고 산업
화를 선도한 기관차였다.
마침내 탈냉전의 물결이 한반도에 도착하자
몽골, 러시아, 중국, 베트남 그리고 남북 사이에도
통로가 열렸다.
다시금 황해의 배꼽으로 회향回向한 인천,
멀리 대동세상을 내다보며 동아시아를 묵상하고
가까이 통일한반도를 몽상하며 한국사회를 구상할
시민의 다짐이 새롭다.
올해는 마침 미추홀 2000여년, 정명 600년, 그리고
개항 130년이 모인 기억의 해,
더 자유롭고 더 평등하고 더 우애로운 인천을 건설하는 과정이
마침내 세계를 개조하는 작업에까지 이르름을 엄숙히 새기며
이에 온 시민과 더불어 새 600년의 출범을 황금의 약속으로 다짐하노니,
님하, 살피소서!
2013년 10월 15일
인천광역시장 송영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