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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팝아티스트가 바라본 서울남녀

[리뷰] 익명의 현대 사회에 대한 무언의 외침

등록|2014.02.24 14:23 수정|2014.02.24 14:23

▲ 줄리안 오피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리는 국제 갤러리 입구 ⓒ 염하연


서울특별시 소격동에 위치한 국제 갤러리는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 그룹 출신의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줄리안 오피(Julian Ophie 1958~)의 개인전을 오는 3월 23일까지 개최한다.

1960년대 미국 팝 아트를 주도했던 앤디 워홀의 뒤를 이어 21세기최고의 팝 아트 작가라는 명칭을 얻은 줄리안 오피는 미니멀한 선과 팝 컬러의 조합을 통해 고도로 정제된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정제된 조형요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는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독특하게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2009년도에 이은 두 번째 국내 개인전이다.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는 우선 모델을 촬영한 후, 드로잉을 통하여 인체를 선과 면만 남기고 최소화하는 방식을사용한다. 단순화된 조형요소와 캔디 팝 컬러는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할 만큼 강렬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비닐 페인팅이나 LED 패널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과 대형 조각 2점을 선보이며, 특히 서울 사람들을 소재로 한 신작 회화 작품들이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익명의 가면을 쓴 사람들

▲ Walking in Sinsa-dong 2. 2014 Vinyl on Wooden Strecher 220X233.6cm ⓒ 국제갤러리


K2 공간에는 서울 사람들을 소재로 한 신작 회화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피는 한국에서의 전시를 위해 사진 작가에게 한국의 거리를 촬영할 것을 부탁했고, 촬영된 사진 속 군중의 모습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캔버스에 표현하였다.

인체를 선과 면으로 단순화하는 그의 독특한 조형 언어는 표면적으로는 매우 경쾌한 느낌을 주지만 표정이 사라지고 원형으로 획일화된 인간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짙은 익명성과 마주하게 된다.

신사동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몸짓과 옷차림도 사라진 얼굴 표정 만큼이나 몰개성적이다. 특히 한국의 거리를 표현한 작업들에서는 한국인들이 옷차림에 있어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획일화된 패션을 추구한다는 사실 덕분에 몰개성적 요소들이 더욱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 Install_887_Julian_Opie_w Academic 2014 ⓒ 국제갤러리


줄리안 오피는 2009년 전시에서 인체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작업을 선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걷고 있거나 혹은 서 있는 비교적 정적인 모습을 형상화했다.

익명성은 단순화된 조형요소로 걷거나 서 있는 등의 단순한 행위를 하고 있는 인체를 표현함으로써 한층 더 증폭된다. 특히 이중 LED 전광판으로 설치된 작품은 마치 회화와 조각의 중간에 있는 느낌을 주는데, 전광판 속의 인물 역시 앞으로 걸어가는 반복적 행위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 줄리안 오피는 개개인의 독특한 삶을 구상하고 표현하기보다는 현대인이라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반복적 일상에 대한 지루함, 익명의 군중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을 포착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K3 공간에서는 레진으로 제작된 두 개의 거대한 두상 조각 신작을 선보인다. 작품명은 각각 릴리(Lily) 와 핀(Finn)이다. 한국으로치면 '철수'나 '영희' 같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흔한 이름이 붙여진 이 두상 조각들 역시 영국의 가장 평범한 남녀를 대상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기존의 비닐 페인팅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생동감 있는 색채가 극렬한 명암대비를 이루고 있는 두상 조각은 매우 무표정하며 권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두상조각의 이름과 무표정한 얼굴에서 관객들은  한 인간의 고유하고 특별한 인생이 아니라 영국의 평범한 남녀 인간군상의 집합체만을 발견하게 된다.

▲ Install_192_Julian_Opie ⓒ 국제갤러리


줄리안 오피는 "우리는 이미지로써 대상을 기억한다. 무엇을 보고 어떤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느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은 미세한 디테일이 아니라 그가 걸친 모자, 안경, 유니폼 등을 상징으로 기억한다. 나의 그림은 그런 리얼리티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했다. 그의 언급을 통해 우리는 인체를 최소한의 조형언어로 표현하여 익명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리얼리티를 드러내려 한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관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팝아트의 활기찬 색채와 줄리안 오피만의 미니멀한 조형 요소의 아름다운 결합을 감상하고,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익명의 사회에 대한 작가의 무언의 외침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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