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년간 정신병을 앓는 외 아들이제 50살인 정신병을 앓고 있는 외 아들 머리가 백발이고, 얼굴은 주름져 78세인 나보다도 더 늙어 보인다. 안타깝다. ⓒ 이월성
올해 50살 된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정신 질환이 발병하여 경상도 김제에 있는 나운몽 기도원에서부터 청량리 국립 정신병원을 거쳐, 지금 장기 요양 중인 오산 승우정신요양원에 이르기까지 32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다른 병은 병상에서 치료하면 되지만 정신 질환은 발작증상이 나타나면 집안에서 불도 지르고 길에 나가서는 말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별안간 달려들어 때리기도 한다. 아들은 어디로 뛸지 모르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난폭 성향의 질환을 앓고 있다.
30년 전 아들이 인천 은혜병원에 입원 치료 중일 때 병세가 호전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 퇴원시켜주세요"라고 아들이 간절히 말해서 퇴원수속을 밟고 퇴원을 시켰다.
퇴원한 지 3일이 되는 날, 아침에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정신 분열이 일어나요 빨리 오세요" 거친 숨소리기 들리고 다급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택시를 타고 급히 집으로 돌아 왔다. "세용아! 아버지가 왔다." 말하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야 이 자식 봐라, 내가 아버지를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고 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는구나, 너 죽어 봐라"하며 아들의 주먹이 내 얼굴에 날아 왔다.
내가 가만히 서서 맞고만 있으면 아들에게 매 맞아 죽을 판 이여서 나도 별 수 없이 주먹을 쥐고 아들과 격투를 겸한 권투 시합을 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집 사람이 안절부절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112에 신고해서 경찰 4명이 와서 아들을 제압했는데 정신 분열을 일으킨 아들이 어찌나 힘이 센지, 팔을 휘두르면 경찰 두 명을 휘저었다.
경찰들이 아들을 간신히 붙잡아 묶고 아들을 112차에 싣고 은혜병원에 데리고 가서 다시 입원시켰다. 이렇게 아들의 정신분열로 생기는 폭력 사건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다. 병원에 입원 중에도 종종 우리 아들이 주먹을 휘둘러 날벼락으로 우리아들에게 맞고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 치료비 변상액도 무시할 수 없이 많이 들어갔다. 돈도 돈이려니와 우리 아들에게 맞은 피해자의 얼굴을 내가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우리아들이 17살 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배치고사를 보았다. 시험 성적이 전교 2등을 해서 서울대학에 갈 수 있는 인재가 나왔다고 나를 비롯해서 선생들도 모두들 기뻐했었다. 우리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이 집으로 찾아왔다. "고등학교 탁구대표들을 데리고 미국에 가서 시합을 하려는데 미국에 갔다 올 여비를 내 놓으라" 고 했다. 당시 나는 실직을 하고 집에서 놀고 있었던 터라, 어려운 처지였는데 돈 5만원을 봉투에 넣어 우리아들 담임선생에게 주었더니, 우리아들 담임선생이 봉투에 들어 있는 돈을 꺼내 보더니 돈이 적다고 돈을 뿌리치고 갔다. 32년 전에 5만원은 지금물가로 환산하면 100만원 가치가 넘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우리아들 담임선생님에게 너무 소홀하게 대접을 했었나? 생각하고 얼굴이 붉어진 나는 다음날 아침 우리 집사람에게 급하게 만든 돈 50만원을 보증 수표로 만들어 봉투에 담아서 학교로 찾아가서 담임선생에게 전하도록 했다.
담임선생은 마침 우리아들 반에서 수업 중이었는데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중에 집사람이 담임선생에게 내민 돈 봉투를 담임선생이 받지 않고 집사람에게 내 던지면서.
"세용이 엄마가 내게 와서 돈 봉투를 내 밀었다."라고 담임선생이 큰소리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전날 탁구부 선수들을 데리고 미국을 갔다 올 여비를 내 놓으라던 선생이 아니었다. 담임선생이 돌변했다. 교실 안은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비웃음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야 너희 엄마 와이로 가져 왔냐? 하하하"
"세용, 너희 엄마 립스틱 빨갛게 바르고 와서 담임선생님을 꼬셨다! 웃하하하... " 하고 교실은 온갖 조롱이 우리아들 반 학생으로부터 우리아들에게 쏟아졌다. 이 일이 벌어진 후로 학생들이 세용이를 왕따 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하여 우리아들은 충격을 받고 정신이 돌아 버렸다.
이런 일이 벌어진 후 우리 아들은 "학교는 죽어도 가기 싫다." 라고 말하고 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내 뱉곤 했다. 뿐만 아니라 온순하고 공부만 할 줄 알던 아이가 난폭해져서 아무에게나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 했다.
우리아들 병세를 전해들은 박성우 우리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 미술 선생이 우리아들과 같은 반 학생 5명을 데리고 찾아와 세용이를 위로하고 학교로 나오라고 해도 "우리아들은 꺼져!" 라고 외치고 집 밖으로 달아나가곤 했다.
나는 우리아들을 인천 기독병원에 입원시켜 정신 질환 치료를 받게 했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기 32년, 지금도 정신 질환은 나아지지 않았고 얼굴 모습은 50살 얼굴이 78세인 내 얼굴보다도 더 늙어 보인다.
나는 우리아들이 입원하고 있던 경상도 김제 나운몽 기도원까지 인천에서 2달에 한 번씩 꼭 면회를 갔었다. 지금도 오산에 있는 승우 정신 요양원에 면회를 주기적으로 가는데, 우리아들은 내가 우리아들과 면회를 하고 있는 중에도 "아버지 언제 면회 오세요?"하고 묻고 "내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죠?"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여 되묻고 한다.
나는 우리아들이 '내가 공부를 잘했죠?'라고 말할 때 마다 업장이 무너졌다. 우리 집 사람은 "여보 아들한테 면회를 같이 가자"고 내가 말하면 손 사례를 치며 고개까지 흔든다. 나와 아들이 집에서 벌린 격투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에 아들에 대한 정이 떨어졌고, 때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아들에게 매 맞을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여보 우리에게는 정신 질환자라도 둘도 없는 꿈나무 아들이지 않소?"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아들이 언젠가는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리라고 믿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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