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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의 데모는 혼자서 조용히?

[분석- 비정상의 정상화 ②] 집회·시위 제한 강화

등록|2014.02.25 12:06 수정|2014.02.25 12:06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벌써 1년 입니다. 올해 초엔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만큼 이 과제는 박 대통령 임기 내내 최우선 과제가 될 듯합니다. 대표적인 정상화 과제가 공공기관의 과도한 복지혜택을 줄이고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아 공공부문 채무를 줄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동시에 공공기관에는 정치권에서 '낙하산 인사'가 줄줄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이렇듯 비판을 자초하게 되면 국정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비정상의 정상화'는 정상적인지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청계광장 원천봉쇄지난해 6월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촛불문화제'가 열린 서울 청계광장에 경찰이 대거 배치돼 있다. ⓒ 권우성


박근혜 대통령이 "진돗개 정신으로 추진하라"고 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중엔 집회 및 시위의 제한을 강화하는 과제가 2개나 포함돼 있다. 마치 '데모는 혼자서 조용히 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비정상의 정상화 단기 개선과제에 포함된 '집회현장의 소음으로 인한 생활불편 개선', '영유아시설 주변지역 집회시위 제한'은 '시민 불편'을 이유로 소음 기준을 강화하고 '영유아 학습권 보호'를 이유로 어린이집 인근에서는 집회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상화 조치가 오히려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옥죄는 '헌법 위의 정상화'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확성기 없이 외치란 건가?"

경찰청은 지난해 11월 집회 현장의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개정은 주거지역·학교가 아닌 기타지역의 소음 상한선을 현행 주간 80데시벨에서 75데시벨로, 야간 70데시벨에서 65데시벨로 5데시벨씩 낮추는 내용을 담았다. 서울 대한문 앞, 서울광장, 청계광장 등 집회가 자주 열리는 장소에서 소음 규제가 강화되는 것이다. 시행령은 정부 입법을 통해 국무회의를 거치면 통과된다.

경찰은 시민 불편으로 국민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경찰청은 소음 민원이 제기된 집회 건수가 지난 2009년 327건, 2010년 373건에 이어 2012년 523건으로 급증했고 지난 10월까지만 633건이라는 통계를 내놨다. 또 여론 조사 결과 집회 소음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69.3%, 소음 규제 강화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1.5%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소음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 시내 촛불집회를 주관하는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소속 최현 한국진보연대 문화예술국장은 "음향기기를 신경 써서 조절하고 있지만 매주 집회가 끝난 뒤 경찰이 5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며 "5데시벨을 낮춘다는 것은 마이크, 확성기를 쓰지 말고 생목으로 외치라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 국장은 "경찰은 보수 단체의 맞불 집회에는 소음 규제를 안 하면서 진보 단체의 집회만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며 "소음 기준을 낮추면 이런 불공정 법 집행도 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노동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현재까지 사법부의 판단은 집회는 소란스러워야 하는 것으로 도저히 참기 어려울 때에만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그런데도 소음 규제를 시도하는 것은 모여는 있되 아무도 듣지 못하게, 입은 있되 입모양만 '뻥끗' 하라는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시장통에 가면 시끄러운 게 자연스러운데, 바로 시장통에서 경찰이 소음을 측정하는 것과 같다"며 "박 대통령이 정상적인 것을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전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경찰청은 "소음 기준을 넘으면 바로 사법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기준 이하로 소음을 유지하라는 명령에 불응했을 때 조치가 가능하다"며 "도심 지역 소음을 미리 측정해 측정값을 보정하므로 집회를 특별히 제한하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대기업·관공서 어린이집으로 집회 제한 꼼수?

현행 집시법 제8조 '주거지역 등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의 제한, 금지 요청' 조항에 따라 학교와 군사시설 등 시설장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집회가 제한된다.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에 따르면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주변 집회를 제한할 수 있도록 추가하자는 것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 출범 전인 지난해 1월,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집시법 개정안을 제출, 현재 국회 안정행정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민병주 의원실 관계자는 "아무리 집회가 정당한 권리라 하더라도 아이들의 학습권까지 방해할 권리는 없다"며 "집회에서 규정 이상의 소음이 발생했다면 제한 받아야 하는 게 맞다"고 개정안 취지를 설명했다.

지금도 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초·중·고교 등 학교는 전국 1만1300여 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4만8000여 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있는 곳이 크게 늘어난다. 경찰청은 대부분 유치원·어린이집이 주거지역에 위치해 있으므로 집회·시위가 크게 위축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기업과 관공서에 어린이집 개설이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하면 달라진다. 대기업, 관공서 앞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할 경우 어린이 집이 있다는 이유로 집회를 제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박주민 민변 사무처장은 대기업 보호 장치가 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그는 "대부분 대기업이 건물 내부에 어린이 집을 두고 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현대·LG 등 대기업 앞 집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의 집회장소 선점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니까 이제는 새로운 꼼수를 쓰는 것 아닌가 한다"고 비판했다.

'희망버스'도 정상화?...박근혜 시대의 데모는 '혼자서 조용히'?

한편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지난해 밀양 송전탑 희망버스 등 논쟁거리가 된 사안에 대한 연대 집회를 비정상으로 규정한 주장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12월 법무부 산하 법무연수원이 연 세미나에서 민영선 연구위원은 희망버스를 원정 시위대로 규정하며 '제3자 개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 내용과 관련해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외부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 위원은 희망버스에 대해 "자발적인 시민의 집회가 아니라 전문적인 시위 주도 세력이 계획적으로 만들어낸 기획 시위"라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과격 돌출 행위로 집회가 폭력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민 위원은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 방안으로 ▲제3자 개입금지 ▲ 시위 도구 규제 등 집시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14일 법무부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도 드러났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상습 시위꾼과 외부 조종세력을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해 불법 집단행동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연대집회를 불법화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정권이 희망버스와 같은 연대집회를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게 확인된 셈이다.

지난 2009년 헌법재판소는 야간 옥외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집회과정에서 공공질서나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형법 기타의 법률에 의하여 처벌대상이 된다"며 "때문에 공공질서나 타인의 법익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는 예상만으로 집회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타인의 불편 발생은 형법 등 다른 법의 판단을 받으면 되지,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집시법으로 미리 제한할 수 없다는 게 요지다.

이렇게 볼 때 박근혜 정부는 헌법 가치를 존중하기는커녕 '비정상'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내세워 집회·시위에 제한을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시위는 조용히 혼자서 하는 게 정상'이라고 표현하는 게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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