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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노동자 임금체계, 어떻게 막을까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 그 이후... 금속노조·민주노총의 문 두드려야

등록|2014.02.25 10:42 수정|2014.02.25 11:47
"어제 회사가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가져왔어요. 복잡하게 써놨지만, 결국 상여금이 없어지는 거더라고요. 눈뜨고 코 베이게 생겼어요."
"처음엔 현장 사람들이 열 받아서 회사 욕도 하고, 웅성거리기도 했는데, 회사가 학자금 조금 올려준다고 하니까 다들 사인했어요. 우린 노동조합도 없고, 별 수 없죠 뭐."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해서 올려준다고, 잔업도 많이 시켜준다고 하고. 절대 임금 낮아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는데 계속 사인을 안 할 수도 없고…"
"통상임금 판결 때문에 현장이 난리예요. 이거 어디다가 얘기할 데도 없고."
"노사협의회 없어요? 노사협의회 노측 위원들이라도 회사랑 얘기 해봐야하는 거 아닌가?"
"아이구~ 누군지도 몰라요. 뭐, 서류에는 올려놨겠지. 그 사람들도 자기가 위원인 거 모를걸요?"

통상임금 판결로 눈뜨고 코 베이는 노동자들

지난해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요지의 판결을 했다. 노동계는 환호했으나, 그 환호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절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판결문에는 그간 지급되지 않은 통상임금 미지급분은 '노사 신의칙(신의 성실의 원칙)에 의해 소급을 요구할 수 없다'라거나 '회사의 경영상황에 따라 판단한다"는 내용 등 사용자에게 유리한 문구를 대폭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노동부는 올해 1월 23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통해 최소한 12월 18일 판결 이후 확대되어 지급해야 할 통상임금도 2014년 새로운 단협(근로계약)이 체결된 이후 적용된다고, 전원합의체 판결보다도 훨씬 후퇴한 행정지침을 현장에 내렸다.

1월 23일 이후 사용주들은 대폭 변경된 근로계약을 현장 노동자들에게 요구했고, 대부분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상여금과 수당 삭감, 기존의 연공급제 임금체계를 성과급제로 변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상여금을 없애고 그만큼 일부 기본급에 포함시키겠다는 건데 첫 해는 그렇다치고, 다음해부턴 기약이 없는 거죠. 몇 년을 임금동결해도 최저임금에 걸리지도 않을 거고. 그나마 해마다 최저임금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인상시켜줬는데 말이죠."
"대신 잔업 특근 많이 시켜줘서 임금 보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데, 우리를 뭐 바보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하루에도 몇 건씩 통상임금 관련 상담을 받다보면 근로기준법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고소고발을 해야 할 건수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다. 물론 노동자 개인이 회사의 위법에 대해 고소할 수도 있고, 강단지게 불리한 근로계약을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그것도 개인이 회사에 맞서 싸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눈 밖에 나면 잘릴 수가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사인하셨어요?"
"네."

방금 전까지 회사에 대해 핏대 세워 성토하던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풀이 죽어 대답했다.

"그러면 근로자가 동의한 것이 되어서 딱히 대응할 것이 없겠네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개별적으로 불러다가 사인하라는데 문제라는 걸 알지만 버틸 수가 없잖아요."

이들은 이미 개악된 임금체계는 어찌할 수 없겠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 이제부터라도 회사의 일방적인 근로계약변경, 근로조건후퇴 시도에 대응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1월 24일, 금속노조에 가입한 보우테이프(경기도 화성)의 사례가 통상임금 판결 이후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집단적으로 회사에 대응하고 있는 경우이다. 

보우테이프 노동자 70여 명은 2014년 1월, 회사가 기존의 상여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하고 휴일수당 등을 저하시키려 하자 개별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금속노조에 가입해 현재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3조에는 "이 법(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기준은 최저기준이므로 이를 이유로 기존의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다"고 근로조건의 후퇴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를 일일이 고소고발로 대응하기엔 우리 노동자들이 감당해야하는 심적, 물적 부담이 크다. 그럴 때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노동조합 가입(결성)이다. 기존에 개별적 이루어지던 근로계약을 단체협약 요구를 통해 집단적으로 요구하면서 사용주의 일방적 근로조건 후퇴를 막아내는 방법을 선택하는 노동자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보우테이프 회사가 현장에 게시한 공고를 보고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조차 "심하다, 노동조합 잘 만드셨다"고 혀를 차고 돌아갔다. 2014년 한 해 동안 통상임금 문제는 대한민국 노사관계의 첨예한 쟁점이 될 것이다.

이미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내몰릴 대로 내몰린 우리 노동자들이 또다시 눈 뜨고 멀쩡한 임금을 빼앗기게 생긴 지금, 벼랑 끝에 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집단적 대응,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길 밖에 없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라는 자포자기의 심정보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금속노조,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리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금속노조에서 발행하는 공단신문 <바지락>에 중복개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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