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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가족이 이래? 짜증 넘어 연민이 느껴진다

[리뷰] <리틀 미스 선샤인>

등록|2014.02.26 11:34 수정|2014.02.26 11:40

▲ 리틀 미스 선샤인의 포스터. 원제가 리틀 미스 선샤인이다. ⓒ 빅비치


원제가 리틀 미스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임에도 국내에는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개봉됐다. 굳이 어순을 바꾼 것은 큰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미스 코리아, 미스 유니버스 등의 미스 거시기라는 호칭에 익숙한 국내 관객을 위함이리라. 사실 그 차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입사의 바보 같은 제목 짓기의 한 예다.

▲ 수습불가 막장 가족.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왠지 치킨이 당기는 관객이 많을 듯. 본인도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바로 KFC로 달려갔다는. ⓒ 빅비치


영화 제목처럼 이 영화는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를 위해 온 가족이 길을 떠나는 로드 무비다. 올리브(아비게일 브레스린 분)는 온종일 텔레비전에서 미인 대회 영상만 보는 뚱뚱한 소녀다. 그녀의 꿈은 오로지 미인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이다. 이 작은 소녀에게 일생일대의 행운이 찾아온다. 한 소녀의 부정 출전으로 인해 캘리포니아 레돈도 비치에서 열리는 대회에 지역 대표로 참가할 자격을 준 것이다.

▲ 보고만 있어도 한숨이 나올 만한 막장 가족. ⓒ 빅비치


그런데 올리브뿐 아니라 이 가족은 요즘 말로 하면 완전 막장 가족이다. 그것도 보통 막장이 아니다. 총체적 난국에 수습불가다. 요양원에서 쫓겨난 마약중독 할아버지에 자살을 기도한 외삼촌(스티브 카렐 분), 묵언수행 중인 '중 2병' 오빠 드웨인(폴 다노 분). 거기에다가 아빠라는 작자는 성공에 집착하며 9단계 전략인지 뭔지를 시종일관 주창하는 무능력자다.

가만히 놔둬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을 텐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보다도 던 먼 길을 오로지 버스에 의존해서 가야 한다. 거의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임무지만, 죽어가는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고 했지 않은가? 이 막장 가족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딸의 소원인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를 위해 출발한다.

설상가상 리차드는 사업 파트너와 연락이 되지 않자 거기에만 매달리고,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가능한 한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하라'고 하지 않나! 게다가 버스가 고장이 나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 온 가족이 밀어야만 움직이는 버스는 영화에서 훌륭한 오브제로 기능한다. 버스의 색깔도 희망의 노란색 아닌가? 폭스바겐 사의 앙증맞은 저 미니버스, 왠지 탐난다. ⓒ 빅비치


여느 로드무비가 그렇듯이 이들 역시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몰랐던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상처를 보듬어준다. 온 가족이 함께 힘을 합쳐 밀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버스도 그래서 이들을 목적지까지 온전히 날라다 줄 수 있다.

사실 애초에 이 가족들은 이루지 못할 꿈을 꿨다. 올리브와 그 가족들이 대회장에 도착해 어리고 섹시한(!) 꼬맹이들을 보며 기죽은 것처럼 애당초 미인과는 거리가 먼 이 뚱뚱한 아이는 어불성설 당치도 않은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게다가 9단계 성공전략을 주장하면서도 자신은 가난에 허덕이고 가족들로부터는 신뢰도 받지 못하는 가장에, 요양원에서 할렘을 꿈꾸는 오늘 내일하는 골골대는 할아버지에, 색맹 때문에 결코 되지 못할 파일럿을 꿈꾸는 드웨인, 그리고 자칭 프로스트 연구의 일인자라고 자위하지만, 이루지 못할 사랑(동성애)에 가슴 아파하는 프랭크 등 이 가족은 어찌 보면 모두 허황한 꿈만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본인이 그것을 인식하면서도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애써 부정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발버둥 치는 이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짜증을 넘어 연민이 절로 생긴다. 유일하게 현실적인 캐릭터는 올리브의 엄마인 쉐릴(토니 콜렛 분) 이다. 하긴 가족 중 하나라도 중심을 잡는 인물은 있어야지.

▲ 그들은 그렇게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 빅비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이병헌 분)는 꿈을 꾼다. 절대 이루지 못할 '달콤한 꿈'을. 그리고 그것은 누아르 영화의 공식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이들 가족은 그 이루지 못한 꿈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행의 끝자락에서 깨닫는다. 자신들이 꾸는 꿈이 무엇이든지 간에 도전하며 결과에 만족하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임을. 그것이 할아버지가 올리브에 가르쳐준 교훈이자 끝까지 기죽지 않고 대회를 마무리하는 올리브를 보고 가족들이 깨닫는 진실이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 오랜 묵언 수행을 깨고 절규하는 드웨인. 그런 오빠를 말없이 안아주는 올리브. 감동적이다. 심도 깊은 화면으로 온 가족을 한 화면에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밝은 느낌을 준다. ⓒ 빅비치


드웨인이 자신이 색맹이라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는 그 순간 올리브는 말없이 자신의 오빠를 안아준다. 언제나 냉철했던 엄마는 시아버지의 죽음 후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가족은 서로 위로한다. 절대 가까워질 것 같지 않던 외삼촌(프랭크)과 조카(드웨인) 역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 이 요염한 포즈의 어린 소녀와 가족의 막장 댄스를 보라. 요즘말로 하면 노답이다. ⓒ 빅비치


영화의 백미는 대회장에서 올리브의 댄스 장면이다. 관객은 초반에 할아버지와 올리브가 연습한 그 동작의 의미를 여기서 알게 된다. 정말 기절초풍할 그 동작에 모두 경악하고 이들 가족을 매도하지만, 이때서야 비로소 이들 가족은 하나가 된다. 온 가족이 무대 위에 올라가 올리브를 위해 막장 댄스를 추는 그 장면은 우습기도 하지만 왠지 가슴 한편이 찡해지는 그런 감동을 준다.

▲ 해맑게 웃는 외삼촌(프랭크)과 드웨인. 아픈 그들이지만 이제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했다. ⓒ 빅비치


<40살까지 못 해 본 남자>, <겟 스마트>, <호프 스프링즈> 등의 영화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코미디 배우 스티브 카렐은 절제된 연기와 특유의 감성으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으며, 그렉 키니어와 앨런 아킨은 부자지간을 맡아 노련한 호흡을 보여준다.

최근 <노예 12년>, <프리즈너스> 등의 영화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폴 다노는 이 영화에서 지금의 멋진 청년이 될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이너프 세드>, <히치콕>, <어바웃 어 보이> 등의 영화에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 쉐릴 역의 토니 콜렛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이 영화 이후에도 <마이 시스터즈 키퍼>, <님스 아일랜드>, <더 콜> 등의 영화에서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비게일 브레스린은 지금이야 매력적인 아가씨로 성장했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 모습은 그 자체가 바로 올리브라 할 정도의 영약하고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 다른 참가자와는 다른 매력을 뽐내는 올리브. 모두가 그녀를 비웃어도 그녀는 스스로 당당하다. 그런 그녀가 진정한 미스 선샤인이 아닐까? ⓒ 빅비치


조나단 데이턴과 발레리 페리스 감독의 이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은 2006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의 판매가를 올리며 인디영화의 부흥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그해 LA비평가 협회와 아카데미(각본, 남우조연상)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받은 이 부부 감독은 이후 스티브 카렐, 폴 다노 등 전작으로 인연을 맺은 배우들과 <앱스터넌스 티쳐(The Abstinence Teacher)>, <루비 스팍스> 등의 영화를 연출하였다. 이 영화에서 심도 깊은 화면과 시종일관 밝고 명암차가 거의 없는 부드러운 화면은 영화 속 가족들의 감정묘사와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능했다.

이 사회는 승자와 패자를 나눠 경쟁시키는 데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성공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는 수준미달의 자기계발서가 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들었다. 온 사회가 '성공'만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사그라질 쯤에는 '힐링'이라는 명목으로 겉만 번드르르한 치유서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 영화에서 올리브 할아버지는 올리브에 말한다.

▲ 갑자기 자신이 못생긴 것을 깨닫고 우는 올리브를 위로하는 할아버지. 올리브에게 할아버지는 친구이자 멘토다. ⓒ 빅비치


"패자란 지는 게 두려워 도전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넌 지금 도전 중이지 않니?"

그렇다. 바로 적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애써 남과 경쟁하며 달성 불가능한 목표치를 설정해두고 괴로워하지 말자. 이들 가족을 보라. 얼마나 행복한가?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진다면 독자들을 현혹하는 자기계발서나 힐링 서적 등에 휘둘리지 말고 이 영화를 한 번 보는 게 어떨지?
덧붙이는 글 기자 본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blog.naver.com/mmpictures. 블로그 주소도 명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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