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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만든 인포그래픽, 실망입니다

형식보다 내용을 더 많이 고민했어야

등록|2014.02.27 11:40 수정|2014.04.22 13:57
우선 오해 없었으면 한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지금 쓰는 기사는 인포그래픽에 관한 내용이지, 현 정부에 대한 지지나 반대 여부와는 관계 없는 기사입니다. 

2월 25일 자로 청와대 이름의 인포그래픽 한 장이 포털을 비롯한 각 언론사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에 게재 되었습니다. 인포그래픽 제목은 '숫자로 보는 박근혜 정부 1년'. 취임 1년을 경과한 시점에서 으레 홍보하는 아이템의 하나려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사 속 인포그래픽을 보는 순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포그래픽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 이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이미지가 바로 그 인포그래픽입니다.

숫자로 보는 박근혜 정부 1년 인포그래픽청와대가 제작해 배포한 박근혜 정부 1년 성과를 정리한 인포그래픽 ⓒ 청와대


'복잡한 정보와 데이터를 간략한 이미지로 형상화해 한 장으로 표현한다'는 인포그래픽의 취지나 개념과는 딱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인포그래픽이라는 형식이 주는 미덕을 벗어나면, 대체 무슨 의도로 이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배포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자료입니다. 새로운 소통과 전달의 도구로 인포그래픽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고 해도, 내용이 받춰주지 못하면 형식은 의미가 없는 법입니다.

윗 부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 궁금증을 유발하는 차원에서 과감한 배열을 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보는 순간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저 또한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입장에서 단 몇 픽셀, 몇 cm의 공간이 얼마나 숨막히는 고민을 안겨주는 공간인지를 절실히 느낍니다.

하지만 아래 절반 부분이 이 과감한 배치에 의해 유발된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다면 이 또한 참신한 시도로 인정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래의 본문격인 페이지 내용을 보고는 곧, 왜 그 많은 공간을 그렇게 낭비했는지 바로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페이지를 채울 만한 내용이 딱히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포그래픽 하단 본문 페이지는 총 6개 섹션 12개 항목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혹시 이미지 텍스트가 작아 안보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타이틀만 정리해보자면,

1 : 대한민국 1호 여성 대통령
3 :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3대 추진전략 발표
12 : 2014년부터 만 12세 어린이의 12종 예장접종 무료
20.4 : 가정폭력 재범률 20.4% 감소
15 : 지난 1년간 행사에서 대통령이 빨간 옷을 입은 횟수!!!
29 : 29개국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70여 건의 MOU 체결
89 : 취임 후 대통령 주재 회의 횟수
101 : 외국어에 능통한 경찰관과 의경 101명으로 관광경찰 구성 출범
4,000 : 지난해 직거래장터에서 대통령이 사용한 국산 지갑의 가격!!!
5,747 : 창조경제타운 아이디어 제안 5,747건
111,209 : 지난 1년간 해외순방 비행 거리(km)
2013. 06. 19 : 아동 및 청소년,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시행일.

많지 않으니까 하나씩 꼭 읽어봐주십시오. 12개의 항목 중 과연 '박근혜 정부의 1년' 성과를 대표할 만한 항목을 몇 개나 고를 수 있을까요? 몇몇 항목은 실없는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현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얼마나 큰 성과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판단할 부분도 아니고, 여기서 논의할 주제도 아닙니다.

하지만 보여주고 전달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 치밀한 고민을 거쳐 최대한 축약해 보여줘야 하는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내기에는 콘텐츠가 너무 부족해보입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집약해 보여줄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할 디자이너가, 오히려 뭘로 공간을 메워야 할지 고민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형식을 고민하는 것, 좋은 홍보의 필수 조건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고민해야 할 핵심은 제대로 된 콘텐츠 확보입니다.

다음에는 좀 더 꽉찬 내용의 훌륭한 인포그래픽을 기대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f1nger.com에도 함께 게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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