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을 푸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나만의 특종 ⑬] 전해산 의병장 후손 이야기
▲ 전해산 의병장 ⓒ 전영복
일본 경찰의 전투일지 <전남폭도사>에서 전해산 의병장은 구한말 호남의병장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의 수괴 중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전해산(全海山) 의병장은 1878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기홍(基泓), 자는 수용(垂鏞), 호는 해산(海山)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 후 의병운동이 일어나게 되자 전해산은 그해 겨울 이석용(李錫庸)과 같이 전북 남원에서 거의(擧義)하여 호남의 산하를 종횡으로 누비며 일제 군경과 70여 차례 교전하며 창의의 깃발을 휘날렸다.
일제는 전해산 의병장의 행방을 몰라 백방으로 수탐하는 한편 현상금을 걸기도 하였다. 이때 전해산 의진에 출입하던 조 아무개란 자가 영산포 알본헌병대 통역 김 아무개에게 밀고하여 남원 깊은 산촌에서 서당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은거한 지 수개월 만에 일병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된 후 일인들은 갖가지 감언이설로 전해산 의병장에게 전향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고 다음과 같은 우국시를 남겼다.
서생이 무슨 일로 갑옷을 입었나?
본래 세운 뜻이 이처럼 틀려지니 한숨만 나오고
조정에서 날뛰는 꼴 통곡하겠네.
바다 건너 들어온 적 차마 말도 못하겠소.
대낮에 소리 삼키고 강물이 멀어지고
푸른 하늘도 오열하며 실버들에 비 뿌리고.
이제 다시 영산강으로 못 가리니
두견새 되어 피눈물 흘리며 돌아갈거나.
(書生何事着戎衣 太息如今素志違
痛哭朝廷臣作蘗 忍論海外賊侵圍
白日呑聲江水逝 靑天咽泣雨絲飛
從今別却榮山路 化作啼鵑帶血歸)
▲ 전해산 의병장 아들 전진규 씨와 며느리 양복례 씨 ⓒ 박도
일자무식꾼 머슴으로 살다
1910년 1월 전해산 의병장은 전남 광주에서 대구감옥소에 이감되어 박영근· 심남일· 오성술· 강무경과 함께 7월 18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이 순국하자 부인도 따라 극약을 마시고 자결하여, 쌍 상여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전해산 의병장 슬하에 후손이 없자 아우 기영의 둘째 아들 진규로 양자를 삼아 대를 이었다.
2007년 4월 4일, 나는 전해산 의병장 후손 전진규(89)를 서울 방화동 그분의 아들 아파트에서 만났다. 전진규씨는 노환으로 누워 있다가 마나님 부축을 받아 일어나 굳이 거실로 나와 쇼파에 앉았다. 고령으로 수전증이 있는데다가 언어장애까지 겹쳐 곁에서 손자며느님 도움으로 몇 마디 대담을 나눌 수 있었다.
"목숨 하나 이어온 것만도 다행이었어요."
그리고 전전규 씨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배운 게 없어요. 국문(한글)도 못 깨친 무식꾼인데다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큰아버지(전해산 의병장)는 돌아가셨고, 부모조차 모두 일찍 여의어 거지나 다름없이 살았어요."
당신은 평생을 머슴으로 소작인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장가도 서른이 되도록 못 가 하는 수 없이 나이를 두 살 속여서 띠 동갑인 18세 처녀에게 갔다는 얘기에, 곁에 앉은 마나님은 "내가 속아서 시집갔다"고, 그때 신랑이 서른 된 총각인 줄 알았다면 가지 않았을 거라고, 60년 전 일을 회상하며 억울해 했다. (관련기사: 생전의 약속을 지킨 아름다운 사람, 전 광주 MBC 최승효 사장)
▲ 전해산 의병장 진중일기 ⓒ 박도
호남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전해산 의병장이 폭도 수괴로 순국하다보니 일제강점기에 남은 가족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목숨을 부지하는 걸 감지덕지하며 살았다.
전진규씨는 글이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 일자무식꾼 머슴으로, 소작으로 목숨을 이어왔다.
다행히 전진규씨는 늘그막에는 자식을 잘 둔 덕분으로 요즘 세상에 드문 며느리의 봉양을 받는 모습을 보니까 매우 흐뭇하고 감동스럽게 보였다.
그날 대담을 마친 뒤 한 달 후 전해산 의병장 손자 전영복씨로부터 당신 아버지(전진규씨)와 어머니(양복례씨)가 열흘 사이로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나는 그 비보를 듣고 곧장 빈소로 찾아갔다. 상주 전영복 씨가 내 손을 잡은 채 울먹였다.
"선생님 덕분에 부모님께서 평생 한을 푸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가슴에 담아 둔 한스러운 얘기를 선생님에게 모두 쏟으시고 아주 후련하셨을 겁니다."
▲ 전해산 의병장 전적지인 전남 함평 고막리 일대를 순국선열회 고 오용진 부회장이 가리키고 있다. ⓒ 박도
덧붙이는 글
박도 지음 / 호남벌에 휘날리는 창의의 깃발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 눈빛출판사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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