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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이적요 서재 부럽지 않네

[디카詩로 여는 세상 23] <은교>

등록|2014.02.27 20:04 수정|2014.02.27 20:04

▲ 필자의 연구실 ⓒ 이상옥


꽃 피듯이
달이 이지러지듯이
-이상옥의 디카시 <은교>

내가 재직하고 있는 창신대학교가 지난해 4년제로 승격하고 올해 2년차로 접어들며 전문대학 과정은 대부분 졸업을 시키고 4년제 1학년과 2학년 체제로 되면서 대학의 구조조정이 대폭 이루어졌다. 1999년 창신대학에 문예창작과가 신설되면서 부임하여 이제까지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해왔으나 문예창작과는 폐과되어 나의 소속은 교양학부로 바뀌게 되었다.

전에는 문예창작과 교수로서 학보사 주간 보직을 맡이 바쁜 나날을 보냈으나 교양학부로 소속을 옮기고, 여전히 학보사 주간 일은 맡고 있으나 한결 어깨가 가벼워진 셈이다

연구실 책을 고성 집으로 옮기다

나의 연구실도 5호관 5층에서 본관 7층으로 옮기고, 학보사 사무실도 연구실 바로 옆으로 같이 옮겼다. 15년간 근무하며 연구실에 쌓인 책이 빽빽하였다. 연구실을 옮기는 차에 책들을 고성 집으로 거의 다 옮기기로 했다. 늘 부엉이집 같은 연구실을 이번 기회에 대폭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 창신대학교 필자의 연구실 책을 시골집으로 옮기는데, 책이 한 트럭이다. ⓒ 이상옥


영화 <은교>를 보면서 주인공 이적요 시인의 서재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나도 이적요의 서재 같은 것을 소유하고 그곳에서 글을 쓰는 낭만에 젖어보고 싶었던 게다.

고성 시골집을 리모델링하면서 나는 창고를 허름하게 하나 지었다. 잡다한 것들을 보관해 두기 위해서다. 그런데 막상 책을 옮기려고 하다 보니 둘 장소가 마땅찮았다. 잡지 등을 다 버려도 전공서적, 시집, 소설집, 기타 교양서적들이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창고를 서고로 활용하기로 했다.

대학의 연구실보다 조금 작을 것 같은 창고에 내 책을 다 옮겼다. 그러고 보니, 제법 서재 같다. 내가 꿈꾸던 이적요 서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대 만족이다.

시골집 창고를 서고로 활용하다

그동안 방치해두다시피 했던 나무난로를 서고 안에 설치하고 보니,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창고 용도로 만든 서고이다 보니, 작은 공기창 하나만 있고 나머지는 사면이 시멘트벽이다. 밤에 불을 켜고 그곳에서 책을 읽으면 금상첨화다. 바깥에 불빛도 새어나가지 않는다.

▲ 고성 집 창고를 서고로 활용하다. 녹이 핀 나무난로가 정겹다. ⓒ 이상옥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서고에서 독서하는 재미는 아마,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짐작이 안 갈 터이다. 나는 이 새로운 서재에서 생의 의미를 읽고 쓰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아래와 같은 생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것이다.

책을 옮기면서 왜 나는 꽃이 피고 달이 이지러지는 걸 떠올렸을까, 생은 꽃 피듯 하다가 달 이지러지듯 또 사라지는 것이어서 그랬을까.

영화 <은교> 중 이적요의 명대사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이 떠올라서 그랬을까.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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