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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잘 된다

경남 진주시 소모임 <암탉>, 여성주의로 일상을 이야기하다

등록|2014.02.28 11:31 수정|2014.02.28 11:31

▲ 여성주의 <암탉>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2010년 12월 11일 경남 진주시 평거동 진주노동자문화센터 새노리에서 열린 <그 여자들의 수다파티> 기념단체사진. ⓒ 진주같이


'모임을 10년 가까이나 이어 오다니... 독한 여자들만 모여 있나보다. 이름도 암탉이 뭐야?'

몇 년 전 처음 '암탉'이란 모임의 이름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 밥 먹이고 집안 청소하고 내일 또 출근하려면 더 없이 바쁠 저녁 7시, 저녁밥이라고 알뜰하게 김밥까지 준비해서 인터뷰에 응해 주시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죄스러웠다.

지기를 맡고 있는 변은경씨는 그동안의 '암탉'의 행적들을 A4 용지에 가지런히 정리해서 건네 주기까지 하였으니 그 황송함이란... 인터뷰하러 오는 사람이 남자였으면 했다, 온몸으로 인터뷰 당하기를(?) 원했다는 등의 우스갯소리를 하며 회원으로 있는 차명지, 김은주씨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암탉'이 처음 결성된 때는 2000년 5월로, 원래 민주노동당 내의 여성위원회 산하 주부모임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민주노동당이 막 시작을 알리던 때였고, 주부당원들이 모임을 통해 여성들도 정치력을 지니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을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8명이 모여 모임을 시작한 것이 올해로 벌써 14년에 이르렀다고 한다.

첫 모임은 '내가 사는 지역인 진주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정치를 하겠느냐'라는 생각에서 커다란 진주지도를 펴 놓고 진주에 있는 '면(面)'들을 찾아 그곳을 속속들이 탐색해 보는 시간들로 시작했다고 한다.

▲ 여성주의<암탉>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2010년 12월 11일 경남 진주시 평거동 진주노동자문화센터 새노리에서 열린 <그 여자들의 수다파티> 공연 모습. ⓒ 진주같이


왜 하필 이름이 '암탉'인가?

그렇다. 지금 당신의 입술 끝에서 맴도는 그 속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에서 온 것이 바로 이 모임의 이름이다. 처음엔 이름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들이 많았다고 한다. 별 의미도 없고 어감도 너무 세고, 어디 가서 '암탉'이라고 소개하기도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고정화되어 있는 의식을 바꿔보자는 의미에서 이 이름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지 않는가?

암탉, 둥지를 나오다

바로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이 그것이었다. 2000년 창당으로 진보의 실현에 대한 부푼 꿈을 꾸게 했던 민주노동당이 비록 가치는 진보적이었을지 모르나, 비민주적 당운영과 리더십의 결여로 결국 당의 분열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런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에 '조직에 대한 믿음이 떨어진다', '당에 대한 공부를 더 해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오니 결국 탈당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탈당 후의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아, 당을 버렸다는 비난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고,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조직이 없어지니 한동안 모임 자체를 진행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주부모임에서 여성주의를 공부하는 모임으로 전환하면서 모임을 다시 정비하게 되었다고 하니, 암탉의 지난한 시간들이 충분히 상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총회 자료에서 '암탉'의 성격을 정의한 것을 보면 "진보적인 가치를 공부하고, 다른 조직과 연계하여 세상과 소통하며, 생활 정치를 실현하는 여성소모임"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매월 2주와 4주 목요일, 정기적으로 모여 '여성주의'에 대한 공부를 해 왔으며, 지역의 가장 큰 문제였던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 촛불문화제에도 참석하여 지속적으로 의료공공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해 왔다.

정치라고 하는 것이 꼭 거창한 거대 담론만이 아닌 생활 속, 즉 우리의 가정에서도 시작됨을 인식하고 모임을 지속해 오다보니 이제는 젖먹이 아기였던 아이들이 훌쩍 자라 서로 논리적으로 뭔가를 논의하는 것을 보고 '암탉'의 가치를 내면화한 것 같기도 하다고 한다. '암탉'이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다.

▲ 창립 10주년을 맞았던 여성주의 <암탉>회원들이 지리산둘레길 걷기에 나선 회원들. ⓒ 진주같이


인터뷰를 끝내며 마지막으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들은 "우리가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면 마치 여성상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고자하는 여성주의란 그런 것이 아니고 "같이 가는 것"이다.

가사노동에 한정시켜 본다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이고 "너는 할 수도 있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왜 남자는 항상 "도와 준다"고 표현하는가? 이런 가치들이 아이들에게까지 내면화되어 알게 모르게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성역할을 나누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의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은 하면서 실천은 아직 먼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당연한 말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당신이라면 주위를 한번 둘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13년 3월 "진주아이쿱생협"의 동아리로 승인을 받은 "암탉"은 이제 든든한 울타리가 생겼다고 기뻐했다. 생협에서, 농민직거래 장터인 '텃밭'에서, 또 여성농민회에서 각자의 몫을 열심히 해내고 있는 강한 그녀들. 2014년 한해가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http://jinjunew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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