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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피해자 방치는 국가 권력의 폭력, 인권침해"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증언... 갖가지 사연 소개

등록|2014.03.01 14:24 수정|2014.03.01 14:28
"원폭 피해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폭력이며 인권침해다."
"원폭의 상처와 후유증은 대물림되어 원폭2세환우의 몫으로 남았다."

95주년 3․1절을 맞아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피폭된 한국인 피해자들과 그 자녀들이 실태조사와 대책을 호소하고 나섰다. 지난달 28일 원폭피해자및자녀를위한특별법추진연대회의에 따르면, 하루 전날인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인 원폭피해자 증언대회"에서는 다양한 증언들이 쏟아졌다.

특히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은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범죄의 피해자인 원폭 피해자와 2세들이 지금이라도 병원비 걱정 없이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이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인 원폭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증언하면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 한국원폭피해자협회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그 날 이후 태평양 전쟁은 끝이 났다고 모두 믿고 있지만, 그날의 참혹하고 잔인함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대물림으로 인해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와 후유증은 고스란히 우리의 원폭2세환우들의 몫으로 남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한 회장은 "68년이 지나 69년째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숙제로 남 해결 대책은커녕 관심도 주지 않고 어두컴컴한 터널 안에서 허덕이다 제대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죽음으로 맞이하는 실정에 놓여 있는 환우들을 생각할 때면 눈물이 난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원폭2세 환우들의 눈물 없이는 차마 볼 수 없는 삶이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지만 외면 당하고 있다"며 "부모님이 피폭지에 계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을 햇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회장은 원폭2세 환우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을 소개했다. 그는 한 어머니와 딸에 대해 "중환자실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하면서도 호흡곤란으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 대신 죽을 힘을 다해 힘이 다 빠진 손가락으로 베개에 글로 '내가 이렇게 죽고 나면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해'라고 겨우 몇 자 적고는 스스로 숨져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고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몇몇 원폭2세 환우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간경화 폐암으로 젊은 나이에 수십 차례 피를 토하며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조금 진정되면 병원비 부담으로 퇴원해야 했던 원폭2세 환우도 있었다. 늙으신 부모님과 어린 자식들 앞에서 힘없이 늘어져 누워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돌아누워 보지만, 현실은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 장애로 태어나 세상이 어떤지도 모르고, 캄캄한 방안에서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약간의 빛만 잠깐 볼 뿐 얼굴에 티 하나 없이 곱고 작은 천사 같은 한 여인이 있다. … 대소변을 어머니가 갈아주면 그 손길이 따뜻한지도 느끼지 못한 채 그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헤아리지 못한 지 40년이 넘었다."

"3남1녀 중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두 아들의 손을 끝내 놓아야 했던 엄마도 있다. 건강한 아들과 딸, 그리고 장애를 가진 두 아들. 이 두 아들을 엄마는 늘 곁에서 잠시도 떼어놓지 않고 양 쪽 손에 꼭 붙잡고 다녔다. … 기적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엄마는 결국 치료를 포기했고, 이제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하시면서 두 손에 쥐었던 아들의 손을 놓고 가셨다."

"대구에 사는 A씨의 엄마는 피폭 당시 나가사키에 사셨다고 한다. 다른 가족들과 한국으로 돌아와 뿔뿔이 흩어져 엄마 혼자 남겨졌는데, 그 때 나이도 어려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여기저지 남의 집살이를 하다 식당일을 하게 되셨다. … 세상을 원망한들 소용없고 이제는 일어서서 걷는 것조차도 할 수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원폭이 후유증이 이렇게 무서운지 정말 몰랐다."

"피부병으로 머리카락부터 눈썹, 온몸 전체에 털이 전혀 나지 않고 겨울에는 조금 덜하다가 봄부터 여름, 가을은 늘 습진으로 진물이 나고 가려움증으로 고생하는 환우도 있다. 2세대에는 아무 증세가 나타나지 않다가 3세대에서 다운증후군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관절이 녹아내려 수차례 인공관절 수술을 되풀이하면서 아들(3세)이 뇌성마비로 태어난 환우도 있다."

한 회장은 "한국원폭2세환우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과 대량 살인무기인 핵무기를 투하한 미국 정부에 의한 전쟁범죄의 피해자"라며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들은 핵폭탄 투하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것을 증언하는 증언자들이다"고 강조했다.

김정록 의원 "국민적 관심이 필요"

이날 증언대회는 김정록·이재영(새누리당), 이학영(민주당) 김제남(정의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인원자폭탄피해자실태조사및지원을위한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던 김정록 의원은 이날 "대한민국이 경제강국이 되었지만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을 위한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박영표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은 "평생을 피폭자로 불리며 인간의 권리와 명예를 상실한 채 살아왔지만, 지난 70여 년간 정부에서는 실태조사는 커녕 가해자인 일본정부에 피해배상 협상조차 외면했다"며 "국민의 권리를 찾아주겠다는 정부는 어디에 있는 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회장은 "피해자는 있는데, 원폭을 투하한 미국도 전범국인 일본도 가해자는 없다"며 "지난 시간 정부는 주인인 국민에게 기만정책을 펼쳤지만, 이제 전쟁 피해자인 원폭피해자들을 위해 일본국에 한국피폭자를 대변함은 물론 그 피해에 대한 보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봉대 한국원폭2세환우회 고문(고 김형률씨 부친)은 "2005년 공개된 정부 문서 중 '한국인 원폭피해자 구호 1974'를 보면 이미 원폭2세 자녀들을 1974년에 공식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당시 보건사회부는 원폭피해자 1세, 2세에 대한 지원과 치료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며 "현재까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양한 질병과 장애를 가진 원폭피해자 2세 환우들을 방치한 채 죽음으로 내 몬 것은 국가권력의 폭력이며 인권침해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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