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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들의 희생정신, 절대 잊지 않겠다!"

[현장 - 군산] 제95주년 삼일절... 3·5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 열려

등록|2014.03.02 16:09 수정|2014.03.02 16:09
온종일 날씨가 찌푸렸던 어제(토요일)는 제95주년 삼일절이었다. 1919년 3월 1일 온 민족이 일제의 야만적 식민통치에 항거, 세계만방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했던 날이다.

▲ 군산시 구암동 거리에서 3·5독립만세 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 조종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자주독립 정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날, 군산시 구암동산 일원에서는 오전 9시부터 3·5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와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렸다.

군산의 3·1독립만세 운동은 군산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세브란스 의학전문 학생 김병수(영명학교 졸업)는 1919년 2월 26일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이갑성 지사에게 받은 독립선언서 200장을 영명학교 교사들에게 전하였고, 그들은 태극기를 더 인쇄하여 그해 3월 5일(장날) 주민 500여 명과 함께 설애장터(서래장터)를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벌였다.

문동신 군산시장, 김영만 3·1독립운동 기념사업회장, 문병준 광복회 군산지회장, 김관영 국회의원, 강태창 군산시의회 의장, 이진원 군산문화원장, 조성돈 군산예총 회장 등 각계 인사와 주민 700여 명은 오전 9시 출정선포를 시작으로 3·1독립운동 기념관에서 군산경찰서까지 평화시민 대행진과 퍼포먼스를 벌였다.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 하루빨리 마무리돼야"

▲ 역사를 부정하는 아베정권의 사퇴를 주장하는 참석자들 ⓒ 조종안


이날 퍼포먼스는 군산 설애장터와 거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제의 총칼에 무참히 쓰러져간 선열들의 순국 장면을 재현한 후 최근 독도와 위안부 망언을 일삼으며, 군국주의 회귀를 꿈꾸는 일본 아베 정권을 강력히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군산 3·5독립만세 운동 발원지인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 진척이 더딘 것에 대해 "일제 침탈을 말로만 잊지 말자고 해서는 안 된다"며 "참혹했던 실체와 역사적 사실들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군산시 관계자는 "3·1독립운동 기념관이 위치한 구암동산은 3.5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희생당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독립, 자주정신이 깃든 역사적인 장소이므로 후세들의 국가관 확립과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성역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선열들의 희생정신, 봉사활동으로 보답하겠다!"

▲ 제95주년 삼일절 기념행사 참석자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조종안


오전 10시부터 3.1독립운동 기념관 광장에서 거행된 제95주년 삼일절 기념식은 독립선언문 낭독과 영상 감상, 삼일절 노래제창, 만세삼창 등으로 진행됐다.

문동신 시장은 "오늘 이 행사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이었던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어받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힘의 원동력으로 풍요, 화합, 품격을 갖춘 세계 일류도시 군산을 건설해 나가자"고 말했다.

광복회 문병준 지회장은 "구암산에서 시작된 군산의 3·5독립만세운동은 28일 동안 일본 경찰의 고문과 폭력 진압으로 사망, 실종, 중경상 등 200여 명이 순국하였고 그 정신은 군산 근대역사의 자랑이자 자긍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며 "나라를 되찾고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왜경의 총칼에 순국한 선열들의 함성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영상물 상영을 통해 95년 전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일어난 3·5독립만세 운동이 지닌 역사적 의의와 군산 보통학교 학생들의 항일시위 방화사건, 임피 장날 독립만세운동 등 모두 28차례의 독립만세운동 과정도 상영되어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위업을 기렸다.

만세운동 재현행사와 기념식에 참여한 군산 영명학교(군산제일고 전신) 후배 200여 명과 멜볼딘여학교(군산영광여고 전신) 후배 50여 명은 "삼일절 홍보영상을 통해 일제 만행을 체험하게 됐으며,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봉사활동을 통해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평화적인 만세시위였던 3·1독립만세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무력진압에도 불구하고 불과 수개월 만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일본과 연해주 등 재외 교포들도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여 1920년 봄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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