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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섹스'를 아십니까?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⑥] 이종 바이러스의 결합은 어떻게 진행됐나

등록|2014.03.05 10:26 수정|2014.03.18 10:57
불륜은 달콤할지언정 그 끝은 치명적인 예가 많다. 금기된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신부나 승려가 주인공인 애정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최근 들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는 바이러스의 행각이 그렇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략 2003년부터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H5N1 바이러스의 횡행에는 애정 행각이 개입돼 있다. 바이러스가 불륜의 주인공이라니? 하찮은 곤충은커녕, 온전한 생물 대우조차도 못 받는 바이러스를 두고 불온한 '정사'를 운운하는 게 말이나 될까?

바이러스는 어떻게 '섹스'할까

▲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바이러스의 행태를 보면, 섹스(sex)라는 말을 결코 떼놓을수 없다. 전문가들이 흔히 '바이러스 섹스'(viral(바이러스를 뜻하는 형용사) sex)라고 부르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 sxc


하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바이러스의 행태를 보면, 섹스(sex)라는 말을 결코 떼놓을수 없다. 전문가들이 흔히 '바이러스 섹스'(viral(바이러스를 뜻하는 형용사) sex)라고 부르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종이 있고, 민족이 있고, 집안이 있듯 바이러스에도 다 계통이 있다. 헌데 국제결혼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바이러스도 드물지만, 딴 종자와 몸을 합치기도 한다. 다른 부류의 바이러스와 만남은 일종의 돌연변이를 탄생시킨다. H5N1도 서브타입(subtype)이 다른 두 종류의 바이러스가 결합해 나온 것이다.

점잖게는 '혼혈 바이러스'의 탄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종 바이러스의 결합은 몸을 섞는다는 속된 표현이 보다 정확한 묘사이다. 서로의 바이러스 DNA 혹은 RNA가 뒤섞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핵산, 즉 DNA, RNA 등으로 불리는 물질과 약간의 단백질로 이뤄진 '것'이다.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생명체의 기본 핵심 물질인 핵산은 있지만 혼자 힘으로는 자손번식을 할 수 없는 등 생명체로서는 결격 사유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한마디로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존재다.

그럼에도 섹스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건, 새로운 핵산 서열을 가진 바이러스가 이종 바이러스 간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탓이다.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혹은 식물이든, 생명체들의 섹스 결과물, 즉 자손은 새로운 핵산 서열의 탄생을 의미한다. 사람을 예로 들면, 엄마 아빠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모든 우리는 핵산 차원에서는 부모와는 다른 DNA 서열을 가진 생명체이다.

사람의 섹스는 겉으론 살을 섞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바이러스 섹스와 마찬가지로 재배열된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탄생시킬 수 있다. 인간의 섹스가 방 안에서 일어난다고 하면, 바이러스 섹스는 세포 안에서는 일어나는 정도가 다르다면 다를까? 모든 생명체에서 섹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통한 환경 적응력 향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나 사람이나 섹스를 추동하는 배경은 똑같은 셈이다.

세상에는 지구상의 민족 숫자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겉모양만 대충 보면, 실처럼 생긴 것도 있고, 다면체인 것도 있고, 나선형으로 꼬인 것도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따지고 들면 종류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각자 살아가는 방식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는 점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사람 체내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는 사람 체내에서만, 돼지 몸에서 사는 바이러스는 돼지 몸에서만 살 수 있다. 식물인 담배에서 증식하는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로 해당 식물에서만 주로 증식한다.

게다가 같은 사람 몸이라도, 호흡기 세포에 주로 기생하는 녀석, 자궁 세포에서 잘 자라는 녀석이 따로 있고, 이들은 서로 몸을 섞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식물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소를 사람이 날로 먹더라도, 세균으로 인해 배탈은 날 망정 해당 바이러스에 인간은 감염되지 않는다. 식물바이러스는 원천적으로 인간의 세포에서는 증식할 수 없는 탓이다.

변형 바이러스 기승, 사람도 책임있다

▲ 올해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가운데, 경남 창원 동읍 본포교 주변에 방역소독 통제초소가 설치되어 지나는 차량에 대해 소독을 해주고 있다. ⓒ 윤성효


헌데 최근 들어 변형 바이러스들이 자주 출몰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내놓는 전문가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이들 변형 바이러스는 '우연에 의한 진화'의 소산물이다. 변형 바이러스는 인간이든 돼지든 닭이든 어느 숙주 세포에서인가, 이종의 바이러스들이 우연하게 만나, 서로 '눈이 맞아' 탄생하게 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사람 몸에서도, 닭이나 다른 조류의 몸에서도 증식을 할 수 있다면 자신들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한층 유리할것이다. '위험한 사랑'이 때로는 진화에서 유리한 도구로 활용되는 결과인 셈이다.

물론 이런 바이러스에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극도의 위기감이 없을 수 없다. 2009년 유행했던 돼지 독감 바이러스(H1N1)는 각각 돼지, 사람, 조류에 독점적으로 기생하던 3가지 바이러스들이 유전자 섞기를 통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낳은 결과이다.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변형 바이러스의 기승에 사람들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좁은 우리에 수천 마리씩 닭이나 오리를 가둬두고 키우는 밀식 축산은 이종 바이러스들이 '밀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준다. 우연일 수도 있는 바이러스의 불륜을 필연으로 바꿔놓는 게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다.

도움말-서울대 의대 오명돈 교수
덧붙이는 글 위클리 공감(http://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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