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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에 '김'이 있다면, 동해안엔 '이것'이 있다

[강원도 여행] '고리매' 만들어 먹는 강릉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낭만 여행

등록|2014.03.05 14:38 수정|2014.03.11 08:13

안인바다를 지나는 기차바다와 가까운 철도. 눈 내리는 바닷가를 달리는기차. ⓒ 최원석


바다에 봄이 온다. 숭어잡이가 제철이다. 숭어는 눈 녹은 물이 바다로 흘러들 때와 송화 가루가 물위에 노랗게 뜰 때 제일 맛있다고 한다. 산에는 눈 녹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커진다. 하얀 눈에 덮여 있던 해안가에 새 단장을 한 바다열차가 달리기 시작한다.

하슬라아트월드바다위를 걷는 듯한 조각상하슬라아트월드 ⓒ 최원석


통일공원 인근의 하슬라아트월드에 봄 소식이 전해졌다. 수북이 쌓인 눈이 봄 햇살에 녹으면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들이 깨어났다. 구애를 하는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운다. 버들강아지가 통통하게 여문 몸집을 드러내고 노란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햇살이 따스한 곳에는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웠다. 15일 가까이 관람객들이 발길이 뜸했던 야외전시장도 눈이 녹으면서 손님맞이가 한창이다.

고리메작업고리메를 뜯어서 바닷물에 여러번 헹궈 돌가루를 씻어낸다. ⓒ 최원석


동해안의 봄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남녘에서 매화소식이 들리면 동해안의 어민들은 바다에서 고리매를 수확한다. 파도가 바위를 스치는 그 자리, 해수면이 바위에 닿았다가 내려서는 그 자리에서 자라는 해초를 뜯는다.

남해안에서 '김'을 만든다면 동해안의 강릉 사람들은 '고리매'를 만들어 먹는다.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주변 바닷가에서 주로 채취한다.

고르메말리기김처럼 대나무 발에 널어 말린다. ⓒ 최원석


날씨가 맑고 파도가 잔잔한 날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고리메 나물은 바다에서 나는 나물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른 봄 파도가 잔잔해 지면 주민들은 바닷가에 나가 고리매와 돌김, 파래 등 해조류들과 함께 채취하여 깨끗이 씻는다. 김처럼 대나무로 만든 발에 널어 햇볕이 좋은 곳에서 말린다. 이것을 '누덕나물'이라고도 한다.

정동진 레일바이크4월이면 정동진 레일바이크가 정동진에서 등명해수욕장까지를 운행한다. ⓒ 최원석


2~4월이 되면 고리매를 채취하여 지역특산물로 판매하고 있다. 김에 비해 맛이 좋아 외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말린 고리매는 들기름을 발라 불에 살짝 구워 김처럼 밥을 싸먹고, 생 고리매는 된장찌개에 넣어 끓여먹기도 한다.

심곡항에서 옥계면 금진항까지 이어지는 헌화로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바다와 같은 높이의 해안에 새로 만들어진 길이지만 옛이야기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신라시대 성덕왕대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도중 바닷가에 당도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옆에는 돌산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서 그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데 맨 꼭대기에 진달래꽃이 잔뜩 피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이 꽃을 보고서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꽃을 꺾어다가 날 줄 사람이 그래 아무도 없느냐?" 묻자,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올라 갈 데가 못 됩니다. 모두들 못 하겠다고 하는데 새끼 밴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늙은이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오고 또 노래를 지어 드렸다.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헌화로봄이면 헌화로 언덕에 지날래가 지천으로 핀다. ⓒ 최원석


붉은 바위 끝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헌화로는 이 설화처럼 가파른 절벽 아래에 있다. 4월에는 진달래가 활짝 필 것이다. 누가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 그 절벽에 오를 것인가?

해안 도로를 따라 옥계를 지나면 자그마한 도직항이 나온다. 옥계항의 대형 시멘트 저장시설과 유류 운송시설 인근이다. 이곳에는 제주도가 고향인 해녀들이 전복과 문어, 해삼 등을 잡는 곳이다.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등대마을 ⓒ 최원석


망상 오토캠핑장, 대진항 어달리해변을 지나면 동해의 상징 묵호항이 나온다. 해안가에 우뚝 선 언덕위의 등대. 그곳에서 바닷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이야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평생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배어 있는 곳이다.

멀리 망망대해에서 불어 오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언덕 비탈에서, 바다를 발아래 두었다고는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삶의 터전이기에 하늘처럼 이고 살아온 사람들이 화석처럼 된 곳이다.

논골담화. 김진자씨의 글논골 담길의 이야기 ⓒ 최원석


남자들이 떠난 지붕위엔/ 밤이면 별꽃들이 저 혼자 피고 지고/ 아침이면 가난이 고드름으로 달려/ 온종일 허기는 가족처럼 붙어 있었다.

겨울이 다가도록 돌아오지 못한 아부지들을 기다리며/등대는 밤이면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애타게 애타게 손짓을 했지만/ 먼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아부지들은/세월은 구불 구불 논골을 돌고 돌아/그 옛날 새 새댁 옥희 엄마는/ 기억이 희미해진 할머니가 되었다.

논길 담벽에 금속활자처럼 박혀 있는 김진자씨의 글처럼 이곳에는 그리움이 있다. 유년기의 가난과 그 시대를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른 아버지에 대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등대마을 담화시멘트 벽에 그려진 담화 ⓒ 최원석


관광객들의 눈에는 허름하고 낡은 담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카메라에 담아 가면 그만이다. 보기 드문 관광지의 성공사례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함석지붕에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고, 먼 바다에 먹구름이 낮게 드리우면 서둘러 등대밑으로 몰려 갈 것만 같다. 바다에 나간 아버지가 돌아 오지 않던 그 때 그 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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