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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이 식당, 강호의 '숨은 고수'였구나

글쟁이들이 마음으로 추천하는 강호에 숨은 여수 맛집

등록|2014.03.06 14:18 수정|2014.03.06 14:18

▲ 푸짐한 선어 모듬회입니다. 대짜로 5만원입니다. ⓒ 임현철


'음식 포르노(food porn)'

최근 이 단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심심찮게 오르내립니다. 내적으로 입맛 당기는 '음식'과 외적 거부감이 있는 '포르노'의 합성어. 긍정과 부정적 단어 조합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음식 포르노'는 요리를 먹기도 전에 사진부터 찍는 행위를 비판한 요리사들 때문에 생겨난 단어입니다. 비판의 요지를 살피면 '사진부터 찍기 전에 요리의 깊은 말을 알아달라'는 겁니다. 또 '요리라는 창작 예술을 손님 끌기에 동원할 수는 없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요리사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자제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종종 맛집 글을 쓰는 글쟁이 입장에서는 이런 비판이 아쉽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맛있는 식당을 일부러 찾는 사람에게 숨은 맛집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이란 대단하기 때문이지요. 마치 강호에 숨은 고수를 만나 서로 의기투합하는 심정이랄까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은 사진기를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요리사들은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 관계를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가끔 글쟁이들과 '번개'를 합니다. 이때 추천되는 맛집은 엄선에 엄선을 거치지요. 아무데나 잡았다간 한 성질 하는 글쟁이들의 집중 포화를 견디지 못할 테니까요. 최근 제가 여수의 맛집 '무번지'에서 번개를 진행했습니다. 까칠한 글쟁이들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답니다.

노파심에 말합니다. 다들 아시죠? 대박난 뒤 욕먹는 맛집들이 많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곳은 맛에 인색한 식당이 될 염려가 적다는 점에서 끌렸습니다. 왜냐? 식당 개업 13년 차인데다가 몇 차례 가게터를 옮겼음에도 손님들이 따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맛에 관한 한 배신은 없을 것 같습니다.

삼치·민어·병어·준치를 썬 선어 모듬회

▲ 밑반찬 내용이 장난 아닙니다. 이게 여수의 맛이지요. ⓒ 임현철


▲ 가자미찜입니다. 찜은 손으로 찢어 먹어야 제맛이지요. ⓒ 임현철


▲ 민어 부레입니다. 요걸 여기서 먹다니... ⓒ 임현철


'무번지'. 상호가 특이했습니다. 왜 무번지라 했을까요. 주인장에게 물어봤더니 "흔하지 않으면서 뭔가 숨은 맛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걸 찾다가 무번지라 붙였다"고 합니다. 이 식당 주변에는 택시회사·수산물 가공회사·철공소 등이 있는데 허허벌판에 식당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당연히 불만이었지요.

"번개 장소를 뭐 이런 곳으로 정했대!"

술 한 잔 하기에는 약간 이른 시각, 식당 안은 썰렁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요. 식당 문을 여는 순간, "와~"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손님이 바글바글했습니다. "뭐야, 이집~"이라는 말까지 튀어 나왔습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소리 소문 없이 강한 '숨은 맛집'임을 금방 알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지요.

밑반찬으로 고구마, 오이, 콩, 냉이, 김치, 전, 홍합, 멍게, 게지, 문어, 피조개, 가자미 등이 나왔습니다. 여수 밑반찬은 알아주는 명품 밑반찬이니 그렇다 치죠. 근데 보기 힘든 게 하나 있더군요. 가자미였습니다. 여수는 보통 서대를 올리는데, 여긴 가자미를 올렸더군요. 가자미 씹는 식감이 더 쫄깃쫄깃했습니다.

"생선찜은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하는 거 아녀. 손으로 발라야 제 맛이여!"

5만 원 선어 모듬 대(大)자를 주문했습니다. 푸짐한 밑반찬만으로도 술이 서너 순배 돌았습니다. 선어회가 나왔습니다. 삼치, 민어, 병어, 준치를 썰어놨습니다. 잘 섞어놨더군요. 이어 김과 양념간장까지 등장! 제가 군침 삼켰던 건 '민어 부레'였습니다. 허허~, 요걸 여기서 먹을 줄이야!

남편 회사 부도 땜에 차린 식당... 비싸게 못 받아

▲ 홍합과 전, 고구마 등도 밑반찬으로 나왔습니다. ⓒ 임현철


▲ 심명남 기자와 주인장은 여수 남면 안도 출신이더만요. 덕분에 서비스도 먹었지요. ⓒ 임현철


▲ 선어회 김에 한 입 싸 먹는 맛 누가 알리오! ⓒ 임현철


한참 먹다보니 정신 줄을 놓았습니다. 맛있어도 정신을 차리고 먹어야 하는데…. 괜히 혼자 뻘쭘해 글쟁이들에게 한 마디 던졌지요.

"말 좀 하고 먹어. 그렇게 맛나?"

입에 가득한 음식물로 인해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이 튀어 올랐습니다. 아울러 묘한 미소까지 지어주는 센스! 어디서 본 건 많아서리…. 여수 토박이들도 이런 집은 난생 처음입니다. 저렴하고 푸짐하더군요. 이 식당의 경영원칙은 '박리다매'라고 합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남편 회사 직원들 밥 해주다가 손맛이 좋다고 식당을 권했다. 사양하다 남편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식당을 차렸다. 많은 보탬이 됐다. 어려울 때를 생각해 비싸게 못 받는다."

서비스로 비싼 새조개가 나왔습니다. 글쟁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준 걸까요? 아닙니다. 일행 중 여수 남면 안도가 고향인 후배가 있어 주인장 심숙녀씨가 특별히 들고 왔더군요. 그러니 평소 가면서 서비스를 기대하지는 마시길. 마무리로 삼치 지리탕이 나왔습니다. 와~, 무척 푸짐했습니다. 맛있는 집에서 맛있게 먹는 즐거움은 크나 큰 행복 아닐까요.

▲ 주인장 심숙녀 씨가 준 새조개 서비스입니다. ⓒ 임현철


▲ 마무리는 삼치 지리탕이었습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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