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잘타지혼자서도 잘타시는 엄마 ⓒ 정성민
우리의 삶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시간 위에 있다. 힘이 있고 잘 준비한 사람만이 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작은 선택부터 건강한 선택을 한 사람만이 찰라의 시간 속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행운, 기회, 재수 이 모든 것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바야흐로 2005년 자전거로 6개월의 유럽 여행기를 마치고 한국 땅에 돌아왔다. 얼굴과 몸은 새까맣게 탔고, 유럽의 자외선은 어느새 나의 얼굴에 주금깨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나의 눈은 빛났고 웃음에는 거짓과 걱정이 사라진, 세상을 다 가진 자의 기쁨의 미소가 입가에 가득했다. 이러한 나의 입술을 타고 나오는 그동안의 고생과 놀라운 반전들이 전파처럼 타고 흘러 어머니의 귓가에 들어갔다.
사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부터 부산에서 여행사 직원으로 오랬동안 일을 해 오셨다. 그래서 사실 어머니 또래들 보다는 외국여행을 많이 해보셨다. 그럼에도 아직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한비야의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이시다 유스케의 가보기전엔 죽지마라'같은 책을 읽고 여행다운 여행을 꿈꾸고 계셨다. 그리고 2009년 8월 터키의 어느 한 지방의 저녁 텐트 안에서 이렇게 나지막히 읇조리신다.
"성민아~ 엄마는 사실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다녀왔는데, 여지껏 다닌 것은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었네..... 이게 진짜 여행이다...."
아직도 텐트안 내 옆에서 조용히 말씀하시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이난다. 그리고 엄마와 여행을 떠나기 전 나눴던 대화들도 떠오른다.
"엄마도 가고 싶다.... 같이 갈까?"
"엄마랑..?? 자전거 여행을?? 자전거 탈 수는 있어?? 직장은? 이거는 일주일 이렇게 가는거 아니야~~"
"글치.... 그래도 한번 자전거로 가보고 싶다......."
아마 누구나 어느 누군가의 재미있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의 연속의 여행기를 듣노라면, 가고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아들이 6살 되던 해 남편이 사고로 죽고, 혼자 아들을 힘들게 키우며 생활고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써의 입장이라면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 쉬운게 아닌 아주 어렵고도 어려운 결정이다. 그렇다고 모아둔 돈도 없다. IMF를 격고, 그 뒤 사기를 당해 집안이 말 그대로 '쫄딱' 망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월급으로 먹고 살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달 이상의 여행은 사실 무리다. 아니 불가능하다. 한비야씨도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이라도 받고 여행했다는데. 어쩌면 아들만 보낸 것으로 위안을 삼아도 될 것을... 어머니는 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2009년 7월 회사를 사직하고 터키 여행의 길에 나선다. 그 후.... 9개월동안 집에서 쉬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그 때의 선택과 결정은 마치 바둑판에서 말하는 '신의 한 수'인지도 모른다.
그 여행의 경험으로 이제 부산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고 있다. 여행에서 받은 현지인들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서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여행 중에 이렇게 말하셨다.
"한국에 가서 외국친구들이 좀 저렴하면서 정을 느끼는 그런 게스트하우스를 하면 참 좋겠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되어 싹을 틔우 듯, 그런 게스트 하우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