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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의 기적? 신발 300켤레만 더 보내고요

등록|2014.03.12 16:50 수정|2014.03.12 16:50

508호의 기적북스인터네셔널 '508호의 기적' 팀으로 (왼쪽부터) 박소민, 조유정, 이지민, 유재연 학생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 배도현


최빈국에서 원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거듭난 우리나라에서 최빈국을 돕는 일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시작이 돈, 인력이었다면, 이제 인문학적 영역으로 확장했다. 책, 그리고 신발로 단순한 가난을 뛰어넘어 꿈 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엄청 기다리고 있대요"

박소민(한양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조유정(성균관대·사회복지학과) 학생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상피병(신발을 신지 않아 오염된 표면에 발이 감염되어 코끼리 발처럼 딱딱해지는 질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해 에티오피아 초등학교에 동화책 300권을 전달했지만 신발 300켤레가 아직 세관문제로 물류창고에 묶여 있어서다.

"508호의 기적"으로 불리는 그들은 작년까지 인천국제고등학교 기숙사 508호 구성원(박소민, 조유정, 유재연, 이지민)으로 이뤄진 팀이다. 최빈국 아이들에게 책을 전달하는 프로젝트 '북스인터네셔널' 최초의 고등학생 팀으로 활동했다.

유일한 휴식시간인 자정부터 1시간가량 활용해 2월부터 7개월 정도 준비했다. 그렇게 동화책 스토리 구성부터 일러스트까지 마무리해 '축구왕 테스파예'라는 동화책 300권을 에티오피아 초등학교에 전달한 것이다. 책은 '북스인터네셔널' 홈페이지에서 E-Book 형태로 무료로 읽을 수 있다. 3월 현재까지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를 안고 있는 박소민, 조유정 학생을 추운 겨울이 한창이던 1월 27일 만났다.

"체험으로 번역한 것이 화근이었죠"

3학년 되는 지난해 겨울방학, 학교 스페인어 선생님이 '북스인터네셔널' 단체를 소개시켜줬다고 한다. 제 2외국어가 스페인어라 재미로 '아기 코끼리 윔보'라는 책을 번역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주제를 생각하던 도중 다큐멘터리를 통해 에티오피아 인구의 90%가 상피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해 2월 4일, 그 길로 시작했다. 3월부터는 동화책 줄거리 구성이 시작됐다. 다 같이 모여 아이디어를 냈고 유재연 학생이 한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도맡았다. 다만 동화책은 처음 쓰는 것이어서 조한나 동화작가가 도와줬다.

그렇게 작업을 하던 3월,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이끈 박소민 학생은 "동화책을 통해 상피 병 예방에는 발을 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에티오피아 학생들은 돈이 없어서 상피 병에 걸렸고 환경 역시 좋지 못해 계속 병에 노출된다는 사실이었어요"라며 "신발을 사지 못하는 환경의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심된 마음 없이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가장 치열한 고등학교 3학년을 시점에 두고 말이다. 먼저 신발 제작 업체 '프로스펙스'에 전화했다. 연락할 방도가 없으니 A/S 센터에 연락했다.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한 설명 후 후원실로 연결됐지만 후원실에서는 그런 후원 받지 않는다고 끊었다. 또 한 번 전화했고 비서실에 연락해 비서실장 이메일을 알았다. 즉시, 이메일을 보냈으나 읽지 않길래 매일 전화했다. 읽어달라고. 일주일 쯤 지나 김승동대표님이 보시고 후원해주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신발 300켤레를 무료로 후원 보낸다는 약속을 받았다.

"마음가짐을 달리 했어요"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힘들지는 않았어요. 애초에 고3이라는 현실적 환경을 고려했었다면 시작을 안 했겠죠? 마음가짐을 달리 했어요"라고 박소민 학생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정부터 1시까지 같은 방이라 틈틈이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각자 역할을 분담 한 뒤 3월, 시험 직후를 기점으로 굉장히 집중했다. 줄거리 구성부터 책 제작, 출판까지 생각하다보니 주위 사람의 도움도 컸다고 한다.

동화책 인쇄비용, 배송비용을 합쳐 약 200만원이 들었다. 충당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했는데 주변 분들의 후원의 도움도 있었지만 '하이 스쿨 잼'으로 유명한 이신혁씨(Project SH)의 페이스북 홍보가 컸다고 한다. 업로드 이후 파급효과가 커진 것이다. 200만원을 모은 것은 물론이다.

번역도 일이었다. 한글, 영어, 그리고 현지 언어인 암하릭어로 번역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소민 학생의 오랜 펜팔 친구인 페카두씨가 암하릭어 번역을 도와줬다. 가장 상황이 열악해 도움이 필요한 학교를 직접 조사해주고, 수요조사를 통해 정확한 수량을 제시해줬다.

특히 동화책 주인공 이름 지을 때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국어, 영어, 암하릭어 모두 편하게 사용되어야 했고 뜻도 중요했기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현지어 이름을 조사하던 중,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 학급 한 생명 살리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후원했던 아이 이름에 영감을 얻었다. 한글자만 바꿔 '테스파예'라는 이름을 떠올랐다고 한다. 실제 에티오피아에서 남자이름으로 쓰이는 이름이며, 테스파예가 평화라는 뜻이라고 한다. 발음하기도 편하다고 강조했다.

한창 수시 준비로 바쁠 지난해 8월, 그렇게 책을 출판했다. 9월에는 해당 초등학교에 300부를 전달했다. '508호의 기적'으로 불리는 그들에게 진짜 기적이 닥친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기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프로스펙스'에 후원받았던 신발 300켤레가 세관문제로 물류창고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한 번도 자기 소유물건을 가진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맨발로 다니는 학생들도 있고···그래서 운동화를 엄청 기다리고 있대요."

현재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일까. 조유정 학생이 안쓰러운 목소리로 전했다.

현재 에티오피아 정부에서 거부하고 있다. 물품보다 돈으로 받는 것을 원하고, 에티오피아 시장경제가 힘든 측면도 한 몫 한다. 이에 현재 마땅한 방법이 없다. 얇은 동화책을 보내는데도 배송비만 100만원이 들어, 보다 무거운 신발의 배송비를 걱정했는데 진짜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 것이다. 주변 분들의 도움을 통해 에티오피아 한국대사관에도 알아보고 NGO단체에도 문의했으나 세관업무는 힘들다고 연락받았다. 워낙 복잡하고 부패해,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학생대로 사정을 모른 채 마냥 기다리고 있고, 저희도 끝마침을 못해서 에티오피아에 가고 싶어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아쉬워요."

씻는 개념이 잡혀있지 않아 에티오피아에 간다면 발 닦는 방법부터 알려주고 싶다는 조유정 학생의 바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진심은 항상 통한다!"

현재 한양대학교에 진학해 '아나테이너'가 되고 싶어 연기학원을 다니고 있는 박소민 학생,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회적 기업, 복지행정 등을 배우면서 국제개발협력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조유정 학생, 후회 없는 순간을 위해 재수를 선택한 유재연, 이지민 학생들까지 한국 고등학생이라는 신분 아래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주위시선에 동요되지는 않았을까. 워낙 일을 많이 벌리고 성공해 의기양양할 법도 한데, 그런 기색하나 없었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이용할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내색하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니까. 다만 입시 후에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대단하다며 응원해줬어요."

박소민 학생이 무덤덤하게 전했다. 질문한 기자가 무안해질 정도였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에 미화되지 않고 직면한 현실을 파악해 겸손하게 선을 그을 줄 안다. 이어 고3이라는 환경을 경험한 선배로서 마냥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 고등학생들에게 그 시선이 향하자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잇는다.

"스스로의 목표를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치열하지만 한 번 멈춰 서서 꿈을 찾아보고 꿈 따라 공부하는 사람이 되길 바래요."

조유정 학생에 이어 박소민 학생도 조곤조곤 전한다.

"프로젝트 준비하면서 시간도 노력도 남들 배로 해야 했지만, 오히려 인생에 있어 배우지 못할 값진 경험을 했어요. 매번 말하는 건데,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해요. 무모하게 후원을 받는 과정에 길이 보이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승부했더니 후원 받았던 것처럼 말이죠."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끝까지 승부하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길이 보일 것이라는 말이다. 신발 300켤레를 보낸 후 에티오피아에 가서 돕고 싶다는 학생들, 그 이야기가 머지않아 들려오길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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