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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과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지옥과 같은 계곡'

[홋카이도행 설국 버스를 타다 ①] 아사히가와

등록|2014.03.10 10:24 수정|2014.03.10 10:24

▲ 홋카이도로 가는 비행 루트 ⓒ 이상기


일본은 자주 찾아간 여행지 중 하나다. 그동안 일곱 번 정도 일본을 다녀왔다. 그 중 세 번은 일반 여행, 두 번은 학술답사, 두 번은 학술교류였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여덟 번째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여행이 문화유산 답사에 초점을 맞춘 무거운 여행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온천과 호수 그리고 자연유산에 초점을 맞춘 가벼운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아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이번 겨울에는 해외여행을 쉬기로 했었다. 그런데 홋카이도 쪽에 좋은 조건의 여행상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또 아내와 만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고 결혼기념일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과 온천이 좋은 홋카이도로 가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여행이라는 게 할 수만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떠나는 게 좋다.

▲ 눈의 나라 홋카이도 ⓒ 이상기


그러니까 추억의 신혼여행을 한 번 떠나보자는 개념으로 결정을 했다. 처음에는 따뜻한 남쪽나라 오키나와도 생각을 했다. 그곳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류큐(琉球) 왕국의 유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가운 눈과 뜨거운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홋카이도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또 홋카이도는 5일 여행 기간 중 하루 자유여행이 있어 선택의 여지가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2월 22일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오모리-치도세-아사히가와 공항으로 이어지는 비행 루트

▲ 설국 홋카이도 ⓒ 이상기


비행 루트를 보니 처음에는 동해바다를 향해 날아간다. 지도에 독도(Dokdo)라는 명칭이 선명하다. 독도를 지난 다음 방향을 약간 북동쪽으로 틀더니 혼슈의 최북단 아키다(秋田)와 아오모리(靑森)를 지난다. 그리고는 츠가루(津輕) 해협을 넘어 홋카이도로 들어간다. 그러자 파란 바다 대신 하얀 설국이 나타난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눈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 설국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설국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평지와 높은 산은 하얗고, 중간 정도의 산은 오히려 거뭇거뭇하다. 침염수림 사이로 눈이 떨어져 군청색과 흰색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가와(旭川)에 가까워지면서 내륙의 평야가 펼쳐지고 대지가 온통 흰색으로 변한다. 중간 중간 작은 규모의 도시도 보이고 강도 나타난다. 도시는 격자무늬고, 강과 길은 구불구불하다.

▲ 아사히가와 공항 ⓒ 이상기


홋카이도의 도시는 1800년대 후반부터 새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바둑판 무늬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강은 자연 그대로 사행천을 이루고 있고, 도로는 골짜기를 따라 조성되었기 때문에 구불거릴 수밖에 없다. 홋카이도의 겨울에는 눈 오는 날이 열흘 중 칠팔일은 된다고 하는데, 오늘은 날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자연풍경을 제대로 내려다 볼 수 있다.

잠시 후 저 아래로 아사히가와 공항이 보인다. 아사히가와는 홋카이도 북부의 중심도시로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해안지역보다 기온이 낮다고 한다. 1-2월의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12.6℃고, 가장 낮을 때는 영하 40℃까지 내려간다. 인구는 35만 명으로, 삿포로(札幌)에 이은 홋카이도 제2의 도시다. 아사히가와 공항은 2000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한국과 타이완의 항공기들이 운항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외 여행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다.

눈미술관 생각보다 볼 것 없네

▲ 홋카이도 전통공예관 ⓒ 이상기


비행기를 내려 공항을 나오니, 겨울철 눈길에 운전 조심하라는 안내 팸플릿이 보인다. 급가속, 급브레이크, 급핸들 조작을 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천천히 달리고, 차간 거리를 확보하고, 교통상황을 파악하자는 얘기다. 시간이 벌써 오후 1시다. 점심은 기내식으로 해결했으니, 버스를 타고 바로 아사히가와시 미나미가오카(南之丘)에 있는 홋카이도 전통미술공예촌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염직미술관, 직물공예관, 눈미술관이 있다. 우리는 그 중 눈미술관을 볼 예정이다. 눈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보니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1922-1999) 기념문학관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곳엘 가고 싶지만 그냥 지나친다. 미우라 아야코는 이곳 아사히가와 출신으로, 1964년 아사히신문 소설 현상공모에 <빙점(氷點)>을 출품해 1등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65년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었고, 70년대까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 눈미술관 입구 ⓒ 이상기


눈미술관(Snow Crystals Museum)에 도착해 보니 건물이 정말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비잔틴 양식을 토대로 만든 2층 건물로, 눈박물관은 지하에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지하 18m까지 내려가면서 눈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눈의 회랑이 나오고, 그 다음에 눈 결정 박물관이 나온다. 이곳에는 홋카이도대학 저온과학연구소에서 평생 눈을 연구한 고바야시 데이사쿠(小林禎作)교수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전시물을 꾸며 놓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는 눈의 결정체 모양이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눈은 6개의 꽃잎 모양으로 표현된다. 이것을 학술용어로 육화판상결정(六花板狀結晶)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보니 눈의 결정체 모양이 수십 가지나 된다. 그리고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곳으로, 연간 2m 이상 쌓이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곳 아사히가와도 적설량이 1-2m나 되는 곳이다. 눈 결정 박물관을 나오면 중앙 광장에 콘서트홀이 있다.

▲ 콘서트홀 무대 ⓒ 이상기


이곳의 한쪽으로 피아노가 있는 무대가 있고 200여개의 좌석이 갖춰져 있어 음악회, 강연, 행사 등을 할 수 있다. 콘서트 홀 천정에는 2만8000호나 되는 대형 프레스코화 '북쪽 하늘(北の空)'이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조금 전 결혼식이 진행되었고, 그들은 이웃하고 있는 식당에서 피로연을 하고 있었다. 그래선지 옆의 뮤지엄 숍에 다양한 예복이 걸려 있다.

나는 이들을 살펴보고는 후문을 통해 잠시 미술관 밖으로 나간다. 이곳 미술관이 높은 곳에 있어선지 아사히가와 시내가 잘 내려다보인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아사히가와는 온통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아사히가와는 내륙 분지에 자리 잡은 산업도시로 목재, 가구, 제지공업이 발달했고, 양조공업으로도 유명하다. 아사히가와 관광의 백미는 다이세츠산(大雪山) 국립공원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코스에는 그곳이 없다.   

도오(道央) 자동차도로를 따라 홋카이도를 관통하다

▲ 아사히가와 시내 모습 ⓒ 이상기


눈미술관을 보고난 우리는 아시히가와 인터체인지를 통해 도오 자동차도로로 들어선다. 이 도로는 북쪽의 시베츠(上別)에서 삿포로를 거쳐 남쪽의 하코다테(函館)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삿포로를 지나 노보리베츠(登別)까지 갈 것이다. 노보리베츠는 유황온천지대로 지고쿠다니(地獄谷)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고쿠다니는 유황과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지옥과 같은 계곡을 말한다.

아사히가와에서 노보리베츠까지는 거리가 225㎞로, 약 3시간쯤 걸릴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50㎞를 달려 스나가와(砂川) 휴게소로 잠깐 들어간다. 그곳에는 하이웨이 오아시스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이시야마(石山) 산자락에 위치한 휴게소로, 시설과 경치 양면에서 도오 자동차도로의 오아시스가 될 만하다. 휴게소 건물은 바로크 양식이며, 뒤로 펼쳐진 자연은 하얀 눈이 덮인 광활한 홋카이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곳에는 눈썰매장도 있고, 눈집(かまくら)도 만들어져 있다.

▲ 눈썰매장에서 바라 본 스나가와 휴게소 ⓒ 이상기


나는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홋카이도의 특산물들을 살펴본다. 친환경 농산물과 유제품, 과자와 빵, 해산물 등이 눈에 띈다. 그 중 이곳의 유제품을 첨가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는다. 맛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는 홋카이도 여행에 대비해 홋카이도 도로지도책을 한 권 산다. 이곳에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우리는 다시 삿포로를 향해 달린다. 스나가와에서 삿포로까지는 75㎞로 1시간이면 간다.

삿포로를 지나면서 보니 이곳 역시 분지에 자리 잡은 커다란 도시다. 인구가 195만 명이나 된다.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삿포로는 1886년 홋카이도청이 설치되면서 홋카이도의 중심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바둑판형으로 설계된 계획도시로, 도요히라가와(豊平川) 북서쪽 주오구(中央區)가 시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동쪽 시로이시구(白石區)를 지나 남쪽의 치도세시(千歲市)로 내려간다.

▲ 노보리베츠 온천 지구 ⓒ 이상기


그리고는 도마코마이시(苫小牧市)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다를 따라 내려간다. 여기서 50㎞ 정도 가면 노보리베츠 온천이 나온다. 우리가 묵을 노보리베츠 온천은 노보리베츠시에서 동쪽으로 10㎞쯤 떨어진 계곡에 있다. 버스가 이제 동쪽 노보리베츠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노보리베츠 온천은 동쪽의 사방령(四方嶺: 549m)과 북쪽의 히요리야마(日和山: 377m) 아래 구릉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는 오유누마가와(大湯沼川)가 흐른다. 노보리베츠 온천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곳이라고 일본 사람들이 선전하고 있다. 정말 그럴지 한 번 들어가 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2월 22일부터 26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22일 오전 9시 45분 인천공항을 출발, 12시 45분에 아사히가와공항에 도착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노보리베츠와 도야 지역의 자연과 온천 그리고 호수를 보았다. 셋째 날과 넷째 날은 홋카이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도시 오타루와 삿포로에 머물며,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박물관과 전시장 등을 살펴보았다. 특히 넷째 날은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일본 사람들과 함께 자유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섯째 날인 26일 오후 2시 아사히가와공항을 출발해 5시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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