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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카드사의 독촉전화...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왜 카드를 잘랐나④] 신용카드를 향한, 빗나간 내 사랑

등록|2014.03.11 20:10 수정|2014.03.11 20:10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돈 없어서 안 돼" 하고 말리면 "엄마 카드 있잖아"라고 대답한다죠? 아이들에게 신용카드는 정말 신기한 도깨비방망이라도 될 듯합니다. 뭐든 카드 한 장이면 구입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어른들도 그랬죠. 각종 포인트와 할인 혜택으로 여러 장의 카드에 혹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가 정말 고객을 위한 것일까요? <오마이뉴스>는 '나는 왜 카드를 잘랐나' 기획을 통해 '당겨 쓰고 갚게 하는 소비 문화'를 바꾸고자 합니다. 비슷한 사례가 있으신 분은 직접 기사로 입력하셔도 좋습니다. [편집자말]

▲ 현금이냐 카드냐 그것이 문제로다 ⓒ 최유진


2004년 집에 불이 난 뒤 생활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경제 사정이 극도로 나빠졌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재 직후, 1992년부터 운영해온 가게가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웃집의 부주의로 불이 나 집이 모두 탔지만, 보상은 전혀 받지 못했다.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이었다. 먹을 것부터 입을 것까지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한 나이였다.

가게는 갈수록 눈에 띄게 매출이 떨어지는데 돈 쓸 일은 많고…. 급한 사정에 의지할 것은 신용카드뿐이었다. 화재 당시 내겐 네 장의 카드가 있었다. 한도가 1200만 원인 카드를 비롯해 나머지 카드의 한도도 수백만 원씩이라 결제 날짜만 잘 이용하면 큰 어려움 없이 결제대금을 낼 수 있었다. 이렇다보니 신용카드의 위험이 피부에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리하여 화재 이후 신용카드를 더욱 더 요긴하게 쓰곤 했다.

우린 자동차용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업자등록 상태라 신용카드 사용자인 동시에 가맹점이었다. 우리가 취급하는 물건은 몇 천 원짜리부터 100만 원이 넘는 물건까지 있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맹점 수수료가 나가지 않는 현금 손님을 반가워하면서도, 소비자로서 난 쉽게, 그리고 생각 없이, 적은 금액도 신용카드로 결제할 정도로 신용카드 애용자였다.

가게 손님들 중 몇 십만 원 하는 물건도 꼭 현금으로 사는 손님들이 있었다. 가끔은 금방이라도 구매를 하거나 작업을 맡길 것처럼 물건 값에 작업과정, 비용까지 물어놓고 며칠 후 현금을 가지고 오겠다며 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며칠 후 현금 뭉치를 들고 왔다.

가맹점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그런 손님들이 고마웠다. 그러나 한편으론 신용카드를 이용해 할부로 내는 게 현명할 것 같은데, 나라면 그럴 것인데 현금을 고집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며칠 뒤에 오겠다고 해놓고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뭐랄까, 시대감각이 떨어져 보였다고 할까. 난 그정도로 신용카드의 혜택을 고마워하며 즐겨 썼다.

사실 내 형편에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옷이나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가끔 사기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은 장을 보거나 아이들 옷가지를 사는 등 꼭 필요한 지출이었다. 때문에 결제 금액이 눈에 띄게 늘고 있음에도 큰 자책 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정말이지 기댈 것은 신용카드뿐. 장사가 잘되면 결제대금을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크게 걱정하지 않고 쓰고, 또 썼다.

현금 내는 손님들, '시대감각 떨어진다' 생각했는데...

그 결과, 화재가 난 뒤 1년 반쯤 지난 2005년 가을에 갚아야 할 신용카드 대금은 1500만 원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불과 두 달 전까지 결제가 힘들단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카드결제대금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악몽을 꾸는 날이 많아졌다.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했으나 속수무책. 필요한 돈 앞에 어쩔 수 없이 또 신용카드를 쓰는 상황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둘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줄여보자'란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외엔 지출하지 않았고, 현금서비스도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나 줄기는커녕 계속 늘기만 했다. 와중에 가게를 하면 할수록 적자만 커진다는 결론을 냈고, 우린 가게를 접기로 했다.

가게를 접자 마음먹으니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이 카드대금이었다. 사실 그때까지 며칠 동안의 매출액으로 카드대금을 메꾸곤 했다. 그런데 가게를 접으면 더 이상 카드값을 막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진 것 중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정리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직후 만들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붓던, 몇 년 동안 아이들이 받은 세뱃돈을 고스란히 모은 주택통장 두 개를 해약했다. 30개가 넘는 아이들 돌반지도 처분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손 벌리고 싶지 않았던 형제들 도움도 받았다. 친구에게 빌리기도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끼고 있던 반지까지 모두 팔고 말았다. 자그맣게 들고 있던 적금도, 보험도 모두 해약했다.

카드대금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었다. 적은 액수로 시작되어 한번 굴릴 때마다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카드대금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이었다. 이처럼 많은 것들을 잃고 정리했음에도 한도가 가장 적은 S카드의 결제대금은 메우지 못한 상황에 카드들을 죄다 잘라버렸다. 자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다시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돈이 매우 궁한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세뱃돈 통장도 해약...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었다

▲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 ⓒ 이희훈


2006년 2월, 엄청난 재고를 떠안고 가게를 정리했다. 생활은 더 궁핍해졌다. 갚아야 할 빚 때문에, 한창 식욕이 왕성한 아이들과 20만~3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티곤 했다. 그때 나이가 참 잔인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직장을 구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남편은 나이에서 취직선이 잘리곤 했다.

와중에 카드값을 납부하지 못한 S카드에선 매일 아침마다 잔인할 정도로 대금청구를 해왔다. 말로만 듣던 사채업자 수준이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결국 친구에게 속사정을 털어놓고 돈을 빌려 S카드를 청산했다. S카드사의 협박은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다시는 신용카드를 쓰지 말자. 특히 S카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거들떠도 보지 말자' 다짐하고 다짐했다.

신용카드를 자른 후부터, 달마다 신용카드 개수만큼 감당해야만 하는 결제대금의 압박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여전히 빚 때문에 허덕였지만 카드대금 결제 때문에 신경 쓴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카드를 자른 후 몇 년 동안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빠듯했다. 와중에 아이들이 청소년기가 되다보니 살림은 더욱 빠듯해졌다. 생활이 힘들수록 신용카드가 더욱 절실해졌다. 특히 가전제품처럼 큰 액수를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엔 '카드를 다시 만들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할까?' 흔들리곤 했다.

한편으론 자신이 없었다. 카드 때문에, 특히 S카드 때문에 겪은 고통과 수모들이 떠올라 혼자 있으면서도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자꾸 움츠러들곤 했다. 부끄러웠다. 그와 함께 카드대금 때문에 잃었던 것들이 속 쓰리게 떠오르곤 했다. 헐값에 처분해야만 했던 아이들 반지는 더욱 더 아프고 죄스럽게 떠오르곤 했다. 이런 것들을 떠올리는 순간 신용카드에 대한 고마움이나 편리함은 깡그리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 신용카드 때문에 그 많은 것들을 잃고, 그 많은 고통을 겪었음에도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좀 여유 있어지자 신용카드의 편리함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한 장만이라도 남겨 아쉬운 대로 쓸 걸 그랬나? 다시 만들어볼까?'란 생각이 한동안 날 유혹하기도 했다.

신용카드 다 잘라버리고 '있는 만큼'만 쓰고 산다

일도 힘들고 돈도 아쉬울 땐 순조롭게 가게를 하던 시절을 더 떠올리게 되고, 결국 접어야만 했음이 아프게 떠오르곤 했다. 사실 가게를 접을 당시만 해도 좀체 풀리지 않는 국내의 경기사정 때문이라고,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난 대형 할인마트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막연히 사회를 원망하거나 악재가 되풀이 된 우리의 신세를 한탄하곤 했다. 그런데 점점 갈수록 막연한 원망은 사라지고, 무리한 카드 사용이 가게를 접는 데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신용카드를 잘라버린 후 몇 년 동안 빌린 돈을 갚느라 참 많이 쪼들렸다. 그런데 카드 없이, 몇 년 동안 훨씬 적은 생활비로 살았다. 그동안 얼마든지 절약할 수 있었는데 쓸데없이 많은 지출을 하고 살았고, 신용카드 때문에 그 씀씀이가 더 컸다는 것. 날이 갈수록 자책과 후회만 들 뿐이었다.

지금 난 10년 가까이 신용카드 하나 없이 살고 있다. 예전에는 없는 것을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의지하고 애용하던, 외출할 때마다 반드시 챙겨나가던 그 신용카드 하나 없이 말이다. 그러니 카드사에 갚아야 할 돈도 이자도 전혀 없다. 결제 때문에 끙끙 앓거나 신경 쓸 것 없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떳떳해 좋다.

3년 전부터 체크카드를 쓰고 있다. 있는 만큼 쓰니 계획적으로 쓰는데, 그리고 함부로 지출하지 않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때 신용카드로 무엇이든 사주는 다른 부모들이 근사해 보였던지 "엄마 아빠는 왜 카드가 없냐?"라고 묻기도 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성년이 되었다. 신용카드 때문에 마음고생 하는 것을 본 아이들은 나처럼 체크카드를 애용자가 되었다. 스스로 "신용카드는 만들지 않을 것"이란 약속도 했다.

생각하면 지금도 지난날 신용카드에 대한 잘못된 내 사랑이 부끄럽기만 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말기엔 너무나 큰 과오다. 신용카드 때문에 잃어야만 했던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것들은 잘 잊는 편인데, 여전히 아프고 쓰리기만 하다. 지금 마음이라면 죽는 날까지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내게 신용카드는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빚'이자,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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