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장 박학규 무형문화재 지정
43년 인고의 결실... 전통 '각자' 전승길 열려
1971년, 17세의 나이로 상경한 충남 예산군 관작리 출신 박학규는 서울 옥수동에 있는 청야 임병선 수하에 입문한다. 청야는 당시에 소목과 각자·부조에 능한 명성높은 장인이었다.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먹으며 합숙했고 스승님께 종아리를 맞아가며 일을 배웠다."
시대가 변하고 제자들이 하나둘씩 돈벌이를 찾아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스승 곁에서 소목과 각자·부조를 전수받았다.
"각자를 하려면 소목을 배워야 한다. 나무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알아야 진정한 각자장이 될 수 있다."
중년이 된 해초 박학규는 고향으로 돌아와 공방(운목산방, 雲木山房)을 열고 후학을 양성한다. 그리고 10일자로 각자장(목각)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전통 각자에 입문한 지 43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각자장이란 나무, 금속, 돌 등의 재료에 도구를 이용해 문자나 그림을 입체화하는 장인이다.
그는 오랫동안 추사체 각자에 심취해 많은 작품을 내고 있다.
해초는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 "전통이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는데 의미가 크다"며 "특히 공방자리를 아무 조건없이 선뜻 내주신 이만우(전 군의원) 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또 돈을 벌어다 준 적이 없는데 지금까지 밥을 먹여주고 있는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박학규씨가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예산군내 국가·도지정 무형문화재는 모두 4명(국가지정 전흥수 대목장, 도지정 조찬형 소목장, 내포영산대제(법륜사 보명))이 됐다.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먹으며 합숙했고 스승님께 종아리를 맞아가며 일을 배웠다."
시대가 변하고 제자들이 하나둘씩 돈벌이를 찾아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스승 곁에서 소목과 각자·부조를 전수받았다.
"각자를 하려면 소목을 배워야 한다. 나무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알아야 진정한 각자장이 될 수 있다."
▲ 박학규 각자장이 서각에 몰두해 있는 모습. ⓒ 이재형
▲ 박 각자장이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조각도. ⓒ 이재형
중년이 된 해초 박학규는 고향으로 돌아와 공방(운목산방, 雲木山房)을 열고 후학을 양성한다. 그리고 10일자로 각자장(목각)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전통 각자에 입문한 지 43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각자장이란 나무, 금속, 돌 등의 재료에 도구를 이용해 문자나 그림을 입체화하는 장인이다.
그는 오랫동안 추사체 각자에 심취해 많은 작품을 내고 있다.
해초는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 "전통이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는데 의미가 크다"며 "특히 공방자리를 아무 조건없이 선뜻 내주신 이만우(전 군의원) 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또 돈을 벌어다 준 적이 없는데 지금까지 밥을 먹여주고 있는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박학규씨가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예산군내 국가·도지정 무형문화재는 모두 4명(국가지정 전흥수 대목장, 도지정 조찬형 소목장, 내포영산대제(법륜사 보명))이 됐다.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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