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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만큼 억울한 그들을 위해... 희망버스 탑니다

[유성기업 희망버스] 송전탑 반대 주민들도 유성으로 달려갑니다

등록|2014.03.10 16:15 수정|2014.03.10 16:15

▲ 2011년 5월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파업 당시. 헬멧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방패를 든 회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백여명에게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등 폭력을 휘둘러 20여명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 금속노조 제공


지난 2012년 1월 초, 밀양 주민들과 함께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에 마음이 너무 아파 여러 장기투쟁 농성장들을 순례한 적이 있다. 그때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 농성장이었다. 우리를 맞아주는 유성 노동자들의 인상이 너무 선하고 순박했다.

"이렇게 멀꿈하게 잘 생긴 청년들이 몇년 동안 왜 이 고생을 할꼬."

할머니들은 그들의 손을 잡고 "죽지 마소! 죽는다 하지 말고 살아서 싸우소", 이렇게 위로했다. 홍종인 지회장이 목에 밧줄을 걸고 좁디좁은 굴다리 위 새집같은 농성장에 들어앉아 외치는 모습은 많은 어르신들을 눈물짓게 했다. 그때 우리는 밀양에서 수확한 밤, 대추들을 전해주었고, 함께 '물가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살자며 함께 박수치며 노래를 불렀다.

다시 유성기업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그 사이 홍종인 지회장은 밧줄을 풀고 내려온 뒤에 한 번 더 고공농성에 돌입해야 했다. 밀양 송전탑도 두 번의 큰 공사재개를 당했고, 지난 10월 이후 6개월째, 수천 명의 경찰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유성기업이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밀양 현장에 연대하러 온 유성 노동자들로부터 그들이 겪었던 일을 들어보니, 한 마을 안에서 움막짓고 먹고 자며 농성해 온 우리가 더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유성 노동자들이 투쟁하게 된 것도 밤샘 근무로 젊디젊은 노동자들이 풀썩풀썩 쓰러지니 야간근무 좀 그만하고, 교대근무를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노동자가 쟁의를 시작하자 회사는 직장을 폐쇄했고, 노동자들은 징계를 받고 해고당하고, 어용노조가 만들어지고 회사는 그들하고만 대화하고, 싸우는 노동자들은 고립되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자동차로 조합원들을 치고 달아나는 테러를 하고, 비닐하우스에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 달려들어 누군가는 두개골이 함몰되는 부상을 입고…. 이 모든 일들이 그냥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리라. 2012년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것처럼 노동조합을 부수려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청와대, 국정원, 경찰, 경총, 노동부가 한몸이었다. 이들과 '유관협력체제'를 구축한 '창조컨설팅'이라는 노조파괴 전문 집단이 있었다.

그들과 공모한 사업주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용역업체 직원들, 이들을 사주한 인간들 누구도 사법처리되지 않았다. 병원치료비로만 3억 원이 넘게 들어갔고,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중인 노동자들도 있다 한다.

밀양 주민들과 유성 노동자들은 이 '억울함'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밀양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폭력은 우리가 다 당했는데, 밀양 주민들도 지금까지 100명 넘는 어르신들이 응급 후송을 당했고, 70명 넘는 주민들이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40명 넘는 주민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집단으로 홧병이 난 것이다. 인권위든 검찰이든 어디든 진정하고 고소를 해도 다 '증거불충분'으로 저들의 손만 들어준다. 그냥 앉아서 당하다 죽으라는 이야기, 그 억울함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밀양 주민들이 그러하듯, 유성 노동자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싸우는 것 외에 달리 다른 수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싸움의 과정에서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웃음과 눈물의 푸닥거리... 함께 희망버스를 탑시다

▲ 25일 오후 경남 밀양시청 앞에서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2차 밀양 희망버스' 집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남원·서울·부산·대구에서 온 학생들이 공연에 환호하고 있다. ⓒ 김종술


오랫동안 싸우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가, 괜히 시작한 것 아닌가, 가시처럼 일어나는 온갖 번민들, 솔솔 꾀어드는 감언이설들이 마냥 허투루만 들리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너무 지쳐서, 그리고 외로워서일 것이다.

저 막강한 자들과 싸워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 그 한없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도, 우리가 헛된 일을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자기 확인도, 끝내는 우리를 지지하고 우리의 정당성을 믿어주는 수많은 연대의 물결, 전국에서 몰려온 희망버스의 행렬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밀양도 매일 안타까운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어르신들도 많이 지쳐 있다. 그러나, 3월 15일 유성 희망버스 이야기에 어르신들은 흔쾌히 "우리도 가야지! 그때 그 굴다리 총각 만나러 가야지" 하신다. 정치권이 사실상 방기했고, 진보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날것 그대로의 폭력에 내던져졌던 저 유성의 노동자들에게 찾아간 거대한 연대의 물결은 설령 희망버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들의 몸과 마음을 오랫동안 일렁이게 할 것이다.

밀양 주민들이 지금도 1차, 2차 때 온 밀양 시내를 뒤흔들었던 수천 명의 물결을 추억처럼 회고하며 흐뭇해 하듯이, 그때의 기억으로 이 고달픈 현재를 견뎌내듯이 말이다.

경상도 외진 시골 마을 노인들의 외로운 외침으로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던 밀양 송전탑 싸움이 이렇게 저 거대한 전력마피아들을 뒤흔들고, 국가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되돌아보게 만든 큰 싸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연대의 힘이었다. 마찬가지로 유성기업의 노동자들 또한 이러한 연대로써 그들이 겪은 탄압과 인권·법치 유린에 대해 끝까지 증언하고 자신들의 존엄을 되찾고 끝내 평화로운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밀양 희망버스에 대해서도 저들은 '절망 버스', '분열 버스', 심지어는 AI를 옮긴다는 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면서 '병균 버스'로까지 불렀지만, 이 땅의 노동자들,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게 희망버스는 말 그대로 천상의 희망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밀양 어르신들도 유성 희망버스로 간다.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모두 간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축제, 우정과 눈물의 푸닥거리, 이제 유성에 가서 청년 노동자들을 안아 주자!
덧붙이는 글 이계삼 기자는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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