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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G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고? 난 믿을 수 없다

[주장] '과학' 통해 증명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내 아이는 안다

등록|2014.03.10 19:10 수정|2014.03.10 19:10
"MSG는 매일 평생 먹어도 안전한 식품첨가물이다."

얼마 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동안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MSG(글루탐산나트륨)가 몸에 해롭지 않다고 공식적인 결론을 내렸다.  단지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의 포장지에 광고처럼 표기됐던 'MSG 무첨가'라는 글귀도 시나브로 사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몸에 해롭지 않다고 공언한 마당이니 사용량이 급증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금까지 MSG가 나쁘다는 건 우리 국민들의 보편적인 '상식'이었는데, 순식간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상식'이 부정당한 꼴이 됐다. 그러나 정부가 근거로 삼은 그 '과학'을 난 전혀 믿을 수 없다. 기존의 과학을 통해서 증명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몸'의 반응이 그 유해성을 똑똑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토피를 앓아온 내 아이 이야기다. 지금은 겉으로 보기엔 거의 완치된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이따금 가려움을 동반하며 발작처럼 피부가 벌겋게 부어오르는 탓이다. 평상시엔 아무렇지도 않다가, 외식을 하거나 간식으로 라면이나 피자,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를 먹을라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몸의 반응이다.

물론 패스트푸드에 반응하는 것을 두고 모두 MSG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는 MSG가 주는 이른바 '감칠맛'에 대해 좋아하기는커녕 얼굴을 찌푸리기 일쑤다. 일종의 '공포감'이다.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외식하는 걸 무척 싫어하고,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음식을 가장 맛있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패스트푸드뿐만 아니라, 필경 MSG가 듬뿍 들어갔을 식당 음식을 먹고 오는 날이면 탈이 난다. 또, 이따금 식당엘 가면 "이 매운탕과 콩나물국은 조미료를 엄청 많이 썼다고, 또 이 김치와 나물은 맛소금으로 간을 맞췄다"고 품평하듯 말하곤 한다. MSG가 내는 맛을 귀신처럼 알아내는 것이다. 그 '절대 미각'은 아토피로 수 년 동안 고생한 몸이 아이에게 건네준 후천적 '재능'이다.

아이의 병을 낫게 하려고 안 해본 일 없고, 안 가본 병원이 없는 아빠로서 단언하건대, MSG가 애초 원인은 아닐지언정 내 아이의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봐서 내린 결론이지만, 과학의 '과'자도 모르는 내가 물론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과학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게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우리 사회엔 지금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는 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고, 그들 중 대부분이 내 아이의 경우처럼 MSG가 첨가된 음식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들 역시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토피를 앓은 아이 덕에(?) 우리 집은 화학 조미료는커녕 맛소금과 시중에서 파는 '천연조미료'조차도 아예 쓰지 않는다. 대신 국 하나를 끓일 때도 살짝 볶아낸 멸치에 말린 버섯과 다시마를 넣고 국물을 우려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 번거롭긴 해도 MSG를 첨가한 음식 못지않은 맛을 낼 수 있다.

참고로 맛소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족 하나. 차림표에다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큼지막하게 써 놓은 어느 식당에서 겪은 일이다. 여느 식당과 마찬가지로 MSG에 기댄 감칠맛이 강하게 느껴지기에 살짝 주방을 들여다봤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맛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짜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한 건지, 주인아주머니는 맛소금이 화학조미료는 아니지 않느냐며 되레 역정을 냈다. 아이의 아토피로 화학조미료에 무척 예민해진 까닭에 벌어진 실랑이였다. 하긴 그때 함께 식사를 친구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조미료 안 쓰는 식당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며, 고작 차림표 글귀를 두고 주인과 다투는 나의 순진함과 속 좁음을 탓했다.

하나 분명히 하자. 맛소금은 일반 소금에 MSG를 입혀 건조시켜 가공한, 이름만 소금일 뿐 엄연한 화학조미료다. 대개 맛소금 전체 중량의 10% 안팎이 MSG라고 하니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 웬만한 요리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해서, 굳이 다른 화학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없다. 오죽하면 MSG가 맛소금의 영문 이니셜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돌겠는가.

어쩌면 MSG는 맛은 맛대로 살리면서 돈과 요리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찾아낸 '위대한' 발명품인지도 모른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감칠맛을 내기 위해 그 많은 값비싼 재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식재료마다의 고유한 풍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긴 요리 시간도 필요 없으니 말이다. 늘 시간에 쫓겨 사는 바쁜 현대인들의 식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나 할까.

1분 1초가 아까운, 또 그래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에 한가롭게 요리를 즐기는 건 사치에 가깝다. 어느 나라에선가는 '먹기 위해 산다'며 삶의 여유를 뽐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먹는 일이란, 거칠게 말해서, 고작 일할 때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에 불과하다. MSG로 범벅인 패스트푸드가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식품의약품안전처의 MSG가 안전하다는 결론은 포화상태에 이른 패스트푸드 업체를 비롯한 수많은 식품 기업을 위한 정치적인 배려에서 나온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아이는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놀이공원에서 먹었던 미역국을 잊지 못한다. 전국의 웬만한 초, 중학교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인 그곳 식당에서 단체 점심식사 반찬으로 나온 것이다. 훌렁한 국물에 몇 가닥 둥둥 뜬 미역밖에 안 보이더라는 그 음식의 진한 감칠맛에 혀끝이 얼얼하더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건 미역국이 아니라, 그냥 'MSG탕'이었어요."

그 일이 있은 뒤,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이 뭐냐고 물으면 주저함 없이 놀이공원 가는 거라고 말하던 아이인데도 그곳엔 절대 가려하지 않는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의 아빠이기에 앞서 미래세대를 길러내는 기성세대로서 화가 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이들에게 화학조미료로 범벅된 그런 음식을 먹이는 게 가당키나 한가.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과 건강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젠 그런 생각을 갖는 것조차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요리를 하면서 '감추고 싶은' 마음이라도 있었다면, 이제는 '떳떳하게' MSG를 음식에 들이부을 수 있게 된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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