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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머리가 커서 옷이 안 들어가요"

머리가 크다고 옷이 안 들어가는 첫째를 보며... 분주한 우리 집 아침 풍경

등록|2014.03.11 11:32 수정|2014.03.11 11:32
우리 집 아침은 참 분주하다. 맞벌이에다 이번에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 서동이와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 살배기를 깨우느라 전쟁, 양치시키느라 전쟁, 옷 입히느라 전쟁이다.

영화 '스크림?'이게 무슨 광경인가? 머리 꼭지에 상투를 튼 것도 아니고... ⓒ 김승한


"아빠! 옷이 안 들어가요!"

첫째 목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린다.

"왜?"
"머리가 커서요."

애들 가방을 챙겨주고 있다가 첫째 놈을 보았다. 기가 막혔다. 보시는 사진 그대로 머리가 들어가지 않아 참 기괴한 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우리 첫째가 머리가 좀 크긴 하다. 출생 당시 4.2kg이었는데, 머리가 커서 다들 무슨 병이 있는지 걱정을 했다더라.

"서동아, 그래도 한 번 집어넣어 봐, 설마 안 들어가겠어?"
"아빠, 머리 아파요, 머리가 커서 진짜 안 들어가요!"

자기 머리 큰 게 자랑인지 툭하면 머리 크다고 난리다.

"서동아 정말 안 되겠어?"

옷 속에서 웅얼거린다.

"아빠 진짜 안 들어가요"

내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만 보인다.그래도 이 상황은 너무 심하지 않나? ⓒ 김승한


둘째 효동이는 재밌다고 웃다 죽는다.

"형아, 머리 커서 옷이 안 들어간대요?"
"그래 그렇다네, 효동아 어떻게 할까"

효동이가 그런다.

"다른 옷 입으라고 해요."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기기로 했다. 쉽지 않다. 한번 턱과 이마에 걸린 옷은, 미세한 힘 조절과 정확한 길이를 예측하고서 벗길 수 있었다.

"아! 벗었다."

서동이가 한 숨을 쉰다. 아마도 옷 속에서 무척 답답했던 모양이다. 하긴 머리에 걸려서 더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으니 본인은 오죽 했겠나?

작아서 못 입은 옷벗겨 놓고 보니 작긴 작다 ⓒ 김승한


벗겨놓고 바닥에 깔아 놓고 보니, 이제 첫째 놈은 못 입겠다. 애들 옷값이라도 아끼려고 이웃집에서 입던 옷 빌려다가 입힌 지 어언 5년이 넘어간다. 이젠 첫째 놈은 옷을 사줄 때도 되었다. 그래도 불평하나 없이 잘 입어준 서동이에게 고맙다.

여덟 살이라고 학교도 들어가고, 이도 하나둘 빠지고…. 어릴 적 나의 기억과 겹쳐지는 나이다. 첫째가 걷는 길이 내가 살아온 자리와 하나씩 만나면서, 서로 시간 차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 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새 부쩍 아빠의 학교생활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아빠는 몇 반이었어요?"
"공부 잘 했어요?"
"태권도 몇 장까지 할 줄 알아요?"

그럼 나는 말한다.

"아빠도 서동이랑 같은 3반이었고, 공부도 잘했고, 태권도도 백 장까지 할 줄 알아!"

놀라워하는 얼굴에 존경심은 아니고 믿기 어렵다는 등 야릇한 표정만…….ㅎㅎ

이빨빠진 서동이이빨이 다섯 개 정도 빠졌다. 어릴 적 엄마가 내게 해준 방법! 실로 감아채기로 뺐다. ⓒ 김승한


아이는 빠진 이를 자랑하며 한번 웃는다. 이제 양치를 해도 이 사이로 구멍이 송송 나 있어 한결 수월하단다. 이가 하나둘 빠지며 말을 할 때 바람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한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저런 표정을 짓는다.

아빠 엄마에게 이를 보며주며, 오늘은 두 개 남았어요, 오늘은 세 개 남았어요.

"그래그래 알았어…….얼렁 양치하고 학교 가야 하니깐 옷 먼저 입어라."

애엄마가 다른 옷을 툭 던져 주었다.

'이 옷은 맞겠지?' 하며 대충 사이즈를 훑어본다……. 음…….

"서동아, 이 옷으로 바꿔 입자!"

첫째 아들 서동이다시 옷을 갈아 입었다. ⓒ 김승한


드디어 맞는 옷을 찾았다.

"아빠, 인제 머리가 들어가요."
"그래? 머리도 들어가고 팔도 집어넣을 수 있어?"
"네, 다 들어가요. 머리가 먼저 들어갔어요."

웬 머리타령인지……. 서동이는 자기 머리가 큰 것이 자랑인가 보다. 큰 머리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생각들이 쏙쏙 자리 잡길 바래본다. 빌려 입은 옷이 워낙 많아서 그동안 옷 걱정은 안 했는데, 이젠 백화점은 몰라도 시장바닥이라도 다녀봐야겠다.

둘째도 빌려온 옷이나 형이 입다 만 옷을 입고 있는데, 때론 안쓰럽다. 다 낡아서 구멍도 나고 뜯어지고, 팔 길이 다리 길이도 짧고. 그래도 아빠가 퇴근하면 아빠 붙들고 1시간여를 씨름하며 밀림의 왕자를 만들어 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또한 직장 다니면서 그렇게 아이들을 잘 키워주는 애엄마가 고맙다. 내가 먼저 출근하면 애엄마는 첫째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서 기다리던 둘째랑 유치원에 향한다. 그리고 애엄마 출근……. 이것이 우리 가족의 아침이다.

아이들 옷 사면서  애 엄마 옷도 한 벌 사주고 싶은데. 비상금도 없고…….ㅎㅎ 남들은 비상금 잘도 만든다는데 우리는 월급통장 서로 조회하면서 관리하니 어디 빼낼 구멍도 없다. 객지 생활 8년차다. 서울과 경기도를 돌다가 울산에 내려온 지 1년이 좀 넘었다. 이제 자리 잡아야 할 텐데…….

오늘 아침도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운전대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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