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호기심이 부른 사고... '혼령'이 날 지켜줬다
[뒷길에서 본 아메리카 27] 뉴멕시코 챠코 캐년에서 신령스런 체험
아무리 살펴봐도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도로 전방도, 후방도 마찬가지였다. 한겨울 미국 뉴멕시코 주의 챠코(Chaco) 골짜기 근처 평원에서였다. 도로는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눈 위로 난 차 바퀴 자국이 서너 줄기만 보이는 게 겨울철에는 통행이 뜸한 길인 게 분명했다. 게다가 눈이 덮여 있어서 잘 알 수 없지만, 햇빛에 녹은 두어 군데를 살펴보니 흙이 드러나 있어 비포장 도로임을 짐작했다.
550번 연방고속도로(US 루트)에서 내려, 이 비포장 길을 탔는데 처음에는 시속 40~50km를 넘지 않도록 조심 운전했었다. 헌데 한참을 달렸지만, 앞뒤로 차 한대 스쳐 지나가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난 뒤 내겐 천형 같은 '미친' 호기심이 또 발동하고야 말았다.
때마침 눈앞으로 일직선 구간이 펼쳐졌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눈길이었지만, 탄력 탓인지, 속도는 지체 없이 올랐다. 마일과 킬로미터가 병기된 계기판의 속도가 시속으로 최소 40마일을 넘은 시점, 대략 60km 이상은 확실했고, 시속 80km에는 이르지 못했을 어느 순간이었을 것이다.
비포장도로서 시속 80km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확 밟았다. 발목을 잡힌 타이어가 그 즉시 미끄러지는 게 느껴졌다. 달리는 것과 미끄러지는 것, 썰매를 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맛이 영 다르다. 하지만 달콤함은 잠시, 차는 직진이 아니라 회전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달려가던 방향과 반대로 180도 돌아 미끄러지면서, 앞 오른쪽 바퀴가 도랑으로 처박혔다.
충격으로 상체가 기우뚱하면서 운전대에 갈비뼈 부위를 찧었다. 조수석에 올려놓은 잡다한 물건들이 하나도 남김 없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렀다. 점심 즈음이었지만, 겨울 해는 짧기 때문에 머잖아 해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차에서 내려 돌멩이 같은 것을 모아 도랑에 처박힌 앞 바퀴 뒤쪽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선 차에 올라 타 후진 기어를 넣고, 있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바퀴는 의외로 쉽게 도랑을 빠져 나왔다.
다시 룰루랄라~ 모드로 기분이 급변했다. 챠코 캐년 국립유적지에 도착한 것은 '자발적' 자동차 사고를 경험한 뒤 30분도 안 돼서였다. 챠코 캐년은 나바호, 호피 같은 미국 남서부 원주민들의 유적지로 유명하다. 최소 수백 년 이상 된 제법 큰 돌 건물들이 특히 인상적인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헌데 난 이곳에서 낱낱의 유적에 감명받기보다는, 신령스러운 체험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평원의 한복판에 자리한 거대한 골짜기와 분지 형상을 한, 챠코 캐년을 두어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면서 뒷덜미와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일종의 전율이었는데, 나쁜 기분은 전혀 아니었다. 다만 어디에서인가 혼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온몸이 감전된 듯 찌릿했다. 계곡을 타고 도는 바람 소리는 혼령의 속삭임인 듯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이곳은 북미 원주민들에게 일종의 성소였다. 미국 국립공원국이 세운 팻말에도 '신성한 장소이므로 경외심을 갖고 유적지를 살펴보라'는 문구가 있었다. 원주민들은 이곳에 조상들이 혼이 떠돈다고 믿고 있었다.
난생 처음 발을 디뎌본 챠코 캐년에서 왜 내가 신령스러운 기운에 사로잡혀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풍경이나 모습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 혹은 직관이란 무릇 비슷한지, 혹은 원주민들과 내가 같은 몽골로이드로서 혈연적 근친성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참으로 신기했다.
호기심에 끌려 장난을 치고, 또 큰 사고가 날뻔했다가,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드는 신비한 체험을 한 터라, 오후 늦게 챠코 캐년을 빠져 나올 때는 꿈을 꾸는 듯한 상태였다. 눈 덮인 길을 달려 나오는데, 나도 차창 밖의 세상도 주변의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엔진 이상을 가리키는 빨간 불이 계기판의 두 군데나 들어온 걸 알아차린 순간,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챠코 캐년에 도착하기 직전 장난치다 난 사고로 인해 차에 뭔가 이상에 생겼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차를 그대로 몰고 가다간 엔진이 폭발해, 인적 없는 겨울 평원에서 명을 달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망연자실 차를 세우고 어둠이 찾아오는 걸 기다릴 수도 없었다. 조금 달리다, 시동을 끄고 엔진을 식힌 후 다시 조금 달리기를 십 수 차례, 멀리 큰 길과 띄엄띄엄 지나가는 차들이 보였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핸들이 제대로 꺾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선으로 난 길을 달려올 땐 잘 몰랐는데, 교차로에서 회전할 때 진입할 도로의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고는 우회전이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걱정, 불안, 공포감 같은 게 다시 밀려왔다. 게다가 여행 중 자동차 보험 기간도 끝나서, 긴급 출동 차량을 부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또 낯설고 외딴 곳이라 견인업체의 전화번화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해는 이미 졌고, 여명만 남은 시간이었다. 지도를 펴보니, 차를 고칠 만한 데까지 나가려면 속도를 내도 최소 두 시간은 더 운전해야 할 판이었다.
헌데,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당시 생각으로는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당황, 낙담, 걱정 등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원주민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조금만 더 가면 원주민보호구역 내에 간단한 고장은 수리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허름한 창고 같은 자동차 수리점서 느낀 혼령의 보살핌
엔진도 식힐 겸 가다 쉬기를 반복하고, 묻고 또 물어서 찾아간 곳에는 정말 헛간 같은 간이 자동차 수리점이 있었다. 변변한 장비도, 부품도, 간판 조차 없는 허름한 창고 같은 가게였다. 원주민 남성은 차 후드를 열어 엔진룸을 살펴보더니, 팬 벨트가 벗겨져 있어 생긴 일일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장비가 없어서 그 남성과 나 둘이서 길다란 드라이버를 이용해, 몇 차례 실패한 뒤에야 겨우 벨트를 끼울 수 있었다.
챠코 캐년에서 경건함을 넘어, 혼령의 존재를 느낄 정도로 외경심을 품었던 덕분이었을까. 원주민들의 조상이 나를 보살펴 준 것만 같았다. 팬 벨트를 끼우자 차는 잘 달렸다. 하지만 사고 충격으로 바퀴의 림이 너무 많이 휘어져,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내 보니 핸들 떨림이 불안감을 자아낼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애리조나로 넘어와 큰 돈 주고 휠 얼라인먼트를 해야 했다.
주체할 수 없는 나의 미친 호기심이 여행 중 첫 사고로 이어질 뻔한 하루였다.
어둑해져 찾은 원주민보호구역의 한 간이 자동차 수리점에서 원주민 남성이 벗겨진 내 차의 팬 벨트를 씌워줬다. (왼쪽) 눈길에서 자동차로 장난치다가 십년감수할 뻔한 날이었다. 뉴멕시코 주 산타페의 원주민 노점상들. 내가 만난 원주민 노점상들은 한 사람도 호객 행위를 하지 않았다. 팔러 나온 물건 앞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서 있는 편이었고, 얼굴은 대개 무표정했다. 어딘지 짠한 느낌을 불러오는 '슬픈 민족'으로 원주민은 내 머리 속에 각인돼 있다.
눈 덮인 비포장 길에서 일부러 차를 급 가속한 뒤에 급 브레이크 잡았는데, 큰 사고가 날 뻔 했다. 도랑으로 빠진 차 바퀴 자국이 보인다. (왼쪽) 사고 때 충격으로 조수석에 놓여 있었던 짐들이 모조리 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때의 자발적 사고로 바퀴의 림들이 크게 휘어져 생돈을 물어가며, 수리해야 했다.
챠코 문화 유적지와 주변 풍경. (위) 지은 지 수백 년도 넘은 석조 건축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 곳에서 나는 혼령이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건물들은 주변 자연환경에 녹아 들어 멀리서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규모가 제법 큰 석조 건축물 가운데 하나. (아래 왼쪽). 위 사진의 왼쪽을 자세히 보면 이 석조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그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챠코 유적지를 알리는 안내판(아래 오른쪽).
뉴멕시코 주 산타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타오스의 원주민 마을. 이른바 어도비 양식으로 지어진, 원주민이 살고 있는 건물이다. 어도비는 한국의 옛날 시골집과도 많이 닮았다. 어도비는 건물이 땅에서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스러져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을 준다.
어도비 건물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타페 시내의 모습. 진짜 어도비 건물과는 달리, 벽돌을 쌓은 뒤 그 위에 흙을 바르는 식으로 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왼쪽) 산타페는 고가의 미술품, 공예품 등이 거래되는 곳으로 뉴욕과 함께 미국에서 그 이름이 자자한 곳이다.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 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 있다면 이런 곳에서 원주민으로 환생해 살고 싶다.
550번 연방고속도로(US 루트)에서 내려, 이 비포장 길을 탔는데 처음에는 시속 40~50km를 넘지 않도록 조심 운전했었다. 헌데 한참을 달렸지만, 앞뒤로 차 한대 스쳐 지나가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난 뒤 내겐 천형 같은 '미친' 호기심이 또 발동하고야 말았다.
때마침 눈앞으로 일직선 구간이 펼쳐졌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눈길이었지만, 탄력 탓인지, 속도는 지체 없이 올랐다. 마일과 킬로미터가 병기된 계기판의 속도가 시속으로 최소 40마일을 넘은 시점, 대략 60km 이상은 확실했고, 시속 80km에는 이르지 못했을 어느 순간이었을 것이다.
비포장도로서 시속 80km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확 밟았다. 발목을 잡힌 타이어가 그 즉시 미끄러지는 게 느껴졌다. 달리는 것과 미끄러지는 것, 썰매를 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맛이 영 다르다. 하지만 달콤함은 잠시, 차는 직진이 아니라 회전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달려가던 방향과 반대로 180도 돌아 미끄러지면서, 앞 오른쪽 바퀴가 도랑으로 처박혔다.
충격으로 상체가 기우뚱하면서 운전대에 갈비뼈 부위를 찧었다. 조수석에 올려놓은 잡다한 물건들이 하나도 남김 없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렀다. 점심 즈음이었지만, 겨울 해는 짧기 때문에 머잖아 해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차에서 내려 돌멩이 같은 것을 모아 도랑에 처박힌 앞 바퀴 뒤쪽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선 차에 올라 타 후진 기어를 넣고, 있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 바퀴는 의외로 쉽게 도랑을 빠져 나왔다.
다시 룰루랄라~ 모드로 기분이 급변했다. 챠코 캐년 국립유적지에 도착한 것은 '자발적' 자동차 사고를 경험한 뒤 30분도 안 돼서였다. 챠코 캐년은 나바호, 호피 같은 미국 남서부 원주민들의 유적지로 유명하다. 최소 수백 년 이상 된 제법 큰 돌 건물들이 특히 인상적인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헌데 난 이곳에서 낱낱의 유적에 감명받기보다는, 신령스러운 체험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평원의 한복판에 자리한 거대한 골짜기와 분지 형상을 한, 챠코 캐년을 두어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면서 뒷덜미와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일종의 전율이었는데, 나쁜 기분은 전혀 아니었다. 다만 어디에서인가 혼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온몸이 감전된 듯 찌릿했다. 계곡을 타고 도는 바람 소리는 혼령의 속삭임인 듯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이곳은 북미 원주민들에게 일종의 성소였다. 미국 국립공원국이 세운 팻말에도 '신성한 장소이므로 경외심을 갖고 유적지를 살펴보라'는 문구가 있었다. 원주민들은 이곳에 조상들이 혼이 떠돈다고 믿고 있었다.
난생 처음 발을 디뎌본 챠코 캐년에서 왜 내가 신령스러운 기운에 사로잡혀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풍경이나 모습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 혹은 직관이란 무릇 비슷한지, 혹은 원주민들과 내가 같은 몽골로이드로서 혈연적 근친성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참으로 신기했다.
호기심에 끌려 장난을 치고, 또 큰 사고가 날뻔했다가,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드는 신비한 체험을 한 터라, 오후 늦게 챠코 캐년을 빠져 나올 때는 꿈을 꾸는 듯한 상태였다. 눈 덮인 길을 달려 나오는데, 나도 차창 밖의 세상도 주변의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엔진 이상을 가리키는 빨간 불이 계기판의 두 군데나 들어온 걸 알아차린 순간,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챠코 캐년에 도착하기 직전 장난치다 난 사고로 인해 차에 뭔가 이상에 생겼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차를 그대로 몰고 가다간 엔진이 폭발해, 인적 없는 겨울 평원에서 명을 달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망연자실 차를 세우고 어둠이 찾아오는 걸 기다릴 수도 없었다. 조금 달리다, 시동을 끄고 엔진을 식힌 후 다시 조금 달리기를 십 수 차례, 멀리 큰 길과 띄엄띄엄 지나가는 차들이 보였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핸들이 제대로 꺾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선으로 난 길을 달려올 땐 잘 몰랐는데, 교차로에서 회전할 때 진입할 도로의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고는 우회전이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걱정, 불안, 공포감 같은 게 다시 밀려왔다. 게다가 여행 중 자동차 보험 기간도 끝나서, 긴급 출동 차량을 부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또 낯설고 외딴 곳이라 견인업체의 전화번화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해는 이미 졌고, 여명만 남은 시간이었다. 지도를 펴보니, 차를 고칠 만한 데까지 나가려면 속도를 내도 최소 두 시간은 더 운전해야 할 판이었다.
헌데,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당시 생각으로는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당황, 낙담, 걱정 등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원주민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조금만 더 가면 원주민보호구역 내에 간단한 고장은 수리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허름한 창고 같은 자동차 수리점서 느낀 혼령의 보살핌
엔진도 식힐 겸 가다 쉬기를 반복하고, 묻고 또 물어서 찾아간 곳에는 정말 헛간 같은 간이 자동차 수리점이 있었다. 변변한 장비도, 부품도, 간판 조차 없는 허름한 창고 같은 가게였다. 원주민 남성은 차 후드를 열어 엔진룸을 살펴보더니, 팬 벨트가 벗겨져 있어 생긴 일일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장비가 없어서 그 남성과 나 둘이서 길다란 드라이버를 이용해, 몇 차례 실패한 뒤에야 겨우 벨트를 끼울 수 있었다.
챠코 캐년에서 경건함을 넘어, 혼령의 존재를 느낄 정도로 외경심을 품었던 덕분이었을까. 원주민들의 조상이 나를 보살펴 준 것만 같았다. 팬 벨트를 끼우자 차는 잘 달렸다. 하지만 사고 충격으로 바퀴의 림이 너무 많이 휘어져,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내 보니 핸들 떨림이 불안감을 자아낼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애리조나로 넘어와 큰 돈 주고 휠 얼라인먼트를 해야 했다.
주체할 수 없는 나의 미친 호기심이 여행 중 첫 사고로 이어질 뻔한 하루였다.
▲ 원주민 ⓒ 김창엽
어둑해져 찾은 원주민보호구역의 한 간이 자동차 수리점에서 원주민 남성이 벗겨진 내 차의 팬 벨트를 씌워줬다. (왼쪽) 눈길에서 자동차로 장난치다가 십년감수할 뻔한 날이었다. 뉴멕시코 주 산타페의 원주민 노점상들. 내가 만난 원주민 노점상들은 한 사람도 호객 행위를 하지 않았다. 팔러 나온 물건 앞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서 있는 편이었고, 얼굴은 대개 무표정했다. 어딘지 짠한 느낌을 불러오는 '슬픈 민족'으로 원주민은 내 머리 속에 각인돼 있다.
▲ 사고의 흔적 ⓒ 김창엽
눈 덮인 비포장 길에서 일부러 차를 급 가속한 뒤에 급 브레이크 잡았는데, 큰 사고가 날 뻔 했다. 도랑으로 빠진 차 바퀴 자국이 보인다. (왼쪽) 사고 때 충격으로 조수석에 놓여 있었던 짐들이 모조리 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때의 자발적 사고로 바퀴의 림들이 크게 휘어져 생돈을 물어가며, 수리해야 했다.
▲ 챠코 문화 사적지 ⓒ 김창엽
챠코 문화 유적지와 주변 풍경. (위) 지은 지 수백 년도 넘은 석조 건축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 곳에서 나는 혼령이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건물들은 주변 자연환경에 녹아 들어 멀리서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규모가 제법 큰 석조 건축물 가운데 하나. (아래 왼쪽). 위 사진의 왼쪽을 자세히 보면 이 석조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그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챠코 유적지를 알리는 안내판(아래 오른쪽).
▲ 어도비 ⓒ 김창엽
뉴멕시코 주 산타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타오스의 원주민 마을. 이른바 어도비 양식으로 지어진, 원주민이 살고 있는 건물이다. 어도비는 한국의 옛날 시골집과도 많이 닮았다. 어도비는 건물이 땅에서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스러져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을 준다.
▲ 산타페 ⓒ 김창엽
어도비 건물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타페 시내의 모습. 진짜 어도비 건물과는 달리, 벽돌을 쌓은 뒤 그 위에 흙을 바르는 식으로 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왼쪽) 산타페는 고가의 미술품, 공예품 등이 거래되는 곳으로 뉴욕과 함께 미국에서 그 이름이 자자한 곳이다.
▲ 뉴멕시코 남부 풍경 ⓒ 김창엽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 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 있다면 이런 곳에서 원주민으로 환생해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립니다. 세종시 닷넷은 세종시의 비영리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