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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위기의 국정원 "믿었는데, 난감"

[여의도본색] 잇달아 '증거조작' 사실로 드러나자 당혹

등록|2014.03.12 18:39 수정|2014.03.12 18:39

▲ 국정원 현관에 직원들이 서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국정원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한 관계자는 "난감하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국정원이 주장해온 것과 달리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의혹이 잇달아 '사실'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국정원은 부인과 반박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법정에 제출된 증거들이 위조됐다"고 공식 확인해준 직후까지만 해도 이러한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우리 직원을 믿는다"

기자가 지난 2월 중순 접촉했던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우리 직원을 믿는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 직원'이란 중국 선양 총영사관의 이아무개 영사를 가리킨다.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으로 알려진 이 영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 관계자는 "이 영사가 성과를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서를 조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에 문서 자체를 위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혹시나 협력자로부터 위조된 문서를 받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 영사가 직접 문서를 위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는 "최북단 접경지역인 선양은 탈북자들이 많아 아주 중요한 지역이다"며 "그래서 그곳에는 국정원의 에이스들이 많이 간다"라고 귀뜸했다. '국정원 에이스'가 문서조작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만들었을 리 없다는 거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민변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재판을 앞두고 중국 정부의 위조 사실 확인 문서를 공개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라고 주장했다. 

흔들리는 그의 확신... "난감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하지만 이 관계자의 '확신'도 3월 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근 조선족 김아무개씨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국정원의 요청으로 중국 싼허변방검사참 명의의 문서를 위조했다고 폭로했고, 이아무개 영사조차 검찰조사에서 "처음엔 확인서 작성을 거부했지만 본부(국정원)측의 거듭된 지시로 가짜 확인서를 만들어 보내줬다"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이 영사가 '가짜 확인서'라고 진술한 것은 그가 허룽시 공안국을 직접 찾아가 유우성씨의 출입경 기록 발급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는 현지 확인문서다. 법정에 제출된 3건의 문서 가운데 중국 싼허변방검사참과 허룽시 공안국 명의 문서가 모두 '위조됐음'이 국정원 직원과 그의 협력자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일요일이던 지난 9일 밤 늦게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증거 조작 사실을 사과했다. "수사 결과 위법행위가 드러나면 관련자는 엄벌에 처하겠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계기로 거듭나겠다"라는 나름 진지한 방침까지 제시했다.

앞서 언급했던 국정원의 관계자는 국정원의 '한밤중 대국민 사과'에 망연자실한 듯했다. 최근 기자가 접촉한 이 관계자는 "난감하고, 부끄럽고, 자괴감이 든다"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담당자가 확신하니까 국내담당 차장도 믿었겠죠. 틀리지 않다고 판단했으니까 진짜라고 믿었을 겁니다. 조선족 김씨도 그동안 성과를 많이 냈으니까 그가 가져온 걸 진짜로 믿었겠죠."

"남재준 원장이 책임진다면 자진사퇴가 되겠죠"

사퇴 압박받는 남재준 국정원장국가정보원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여당 내부에서 조차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촉구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 ⓒ 남소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의혹이 이렇게 심각한 국면에 이르자 여당 안에서도 남재준 원장 사퇴론이 나왔다. 다만 주로 친이쪽 인사들이 주장하고 있어 여권 내부에서는 힘을 못 받고 있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도 "언론들이 국정원장 경질론을 보도하는데 이는 제가 아는 흐름과 다르다"라고 말했다. 우회적이긴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남 원장을 경질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도 "보수 언론들도 국정원장 사퇴를 얘기하던데 최소한 책임소재가 밝혀진 이후에 사퇴 여부가 결정되어야 하지 않나?"라며 "남재준 원장은 명예 하나로 사는 분이니까 책임져야 한다고 느낀다면 그 방식은 자진사퇴가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제가 본 국정원장 가운데 남 원장은 공사를 분명하게 가리는 등 가장 합리적인 분이었다"며 "원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까 실무선에서 책임지고 원장은 남아서 문제점을 과감하게 고쳐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남재준 원장의 유임을 강하게 바랐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사퇴론이 여당의 친박계에까지 번질 수도 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무사'라는 남 원장도 자신의 거취를 결심할 수밖에 없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無名(무명)의 헌신'을 내세운 국정원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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