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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찾아온 봄을 만지다

75세 노모가 먼저 마중나간 봄

등록|2014.03.13 11:25 수정|2014.03.19 16:46

▲ 시들시들한 나무와 화초 ⓒ 이경모


"아범아, 일어났으면 이 화분 좀 바닥에 부어 주라. 화분에서 나무를 뽑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뽑히지 않는다."

베란다 쪽에서 어머니가 부르신다. 베란다 바닥에 화분을 부어 놓으면 당신이 분갈이를 하시려고 한 것이다. 며칠 전, 작은 화분은 어머니가 분갈이를 했지만 큰 화분은 분갈이를 하실 수 없어 아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3년 전, 가게 개업식이 끝나고 집에 가져 온 화분을 한 번도 분갈이를 해주지 않았다. 나무와 화초의 키는 많이 자랐지만 이파리들이 시들시들 하다. 그나마 어머니 정성이 있어 죽지는 않은 것이다.

어머니가 연세가 드시면서 다른 어머니들과 똑같아진 것이 있다. 뭔가 한 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시면 거기에 목숨(?)을 거신다.

우리에게는 하찮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당신에게는 큰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젯밤 모임에서 과음한 탓에 고양이 세수만 하고 나온 나를 부르는 것도 연세 탓이다.
예전 같으면 나중에 불렀을 텐데 말이다.

만약 내가 '다음에 할게요'라고 하면 또 노인들의 공통점인 삐짐, 서운함으로 이어졌을 게다. 어머니 성격을 잘 알아 베란다에 갔지만 나무와 화초들을 보는 순간 귀찮기는커녕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몇 발짝 근처에 있는 나무와 화초들에게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아니 못한 내 삶이 갑자기 한심스러웠다.

"어머니, 가게 문 열고 와서 제가 분갈이 해 놓을게요. 노인정에 다녀오세요."

어머니 숙제도 해드리고 오랜만에 나무와 화초들 하고 얘기도 하고 싶었다. 단골 꽃집에 가서 나무 분갈이 하는 법을 더 배우고 한 포대 거름도 샀다. 따뜻한 햇살은 겨우내 어디서 숨어있다 왔을까. 분갈이를 하는 동안 내내 베란다에 심어진 화분에 봄 인사를 하고 있다.

3시간이 지나서야 분갈이는 끝났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한가로운 봄 나절이었다.
새로 태어난 화분들은 좋아서 나에게 윙크하고, 어머니 사랑을 먹고 꽃을 피운 꽃들은 환하게 웃는다.

▲ 어머니 사랑을 먹고 예쁜 꽃을 피운 화분 ⓒ 이경모


▲ 가지런히 화분이 정리 된 베란다 ⓒ 이경모


"지금까지 하고 있느냐? 점심은 먹었고?"
"다 끝났어요. 지금 먹을게요."

노인정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한걸음에 베란다 쪽으로 가셨다. 가지런히 정리된 화분을 보시고는 정말 좋아하신다. 근래에 그렇게 좋아하신 것을 본 적이 없다. 아파트를 돌아 베란다에 오는 봄을 나보다 75세 노모가 먼저 마중 나가셨다. 조금 늦었지만 어머니 덕분에 베란다에 피어있는 꽃에 얼굴을 비비며 가까이 와 있는 봄을 만졌다.
덧붙이는 글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4월호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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