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해장죽 터널 걸어 보셨나요?
동백숲길도 있고 해장죽 터널길도 있는 여수 오동도
▲ 여수 오동도에 활짝 핀 동백꽃. 그 꽃길을 따라 연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 이돈삼
새봄이다. 남도의 봄이 꽃으로 시작되고 있다. 섬진강변의 매화, 지리산 자락의 산수유꽃이 많이 피었다. 이름 모를 들꽃도 꽃망울을 터뜨리며 부산해졌다. 터지는 봄꽃 소식에 내 가슴도 덩달아 꽃물이 든다.
여수 오동도로 간다. 지난 12일이다. 바닷바람은 아직 쌀쌀하다. 하지만 한낮의 햇살은 완연한 봄의 것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졌다. 얼굴 표정도 환하다. 다들 새봄을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다.
오동도 입구에 있는 자산공원으로 먼저 올라간다. 방파제 끝자락에 오동도가 걸려 있다. 조그마한 섬을 뭍과 연결시켜 준 방파제가 그리 길지는 않다. 풍경이 빼어나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혔다. 여행객들이 이 방파제를 따라 오동도로 드나들고 있다.
▲ 자산공원에서 내려다 본 오동도 전경. 방파제 옆 바다에서 모터보트가 물살을 가르고 있다. ⓒ 이돈삼
▲ 오동도 동백숲길. 아직 동백꽃은 많이 피지 않았지만 꽃내음을 맡으려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 이돈삼
바다에선 여행객을 태운 모터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관광용 유람선도 한려해상을 유유자적하고 있다. 여수항과 광양항을 오가는 화물선박도 군데군데 떠 있다. 평온한 봄날의 바다다.
왼편으로는 여수세계박람회장이 펼쳐진다. 2년 전 북적거렸던 엑스포장과 달리 한산하다. 엠블호텔도 우뚝 서 있다. 오른편에는 거북선대교가 이어주는 돌산도가 보인다. 수려한 해안선과 섬에 반해 한참을 머물렀다.
오동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북적대고 있다. 자동차를 고쳐 만든 동백열차는 쉬지 않고 여행객을 태우고 있다. 젊은 연인들은 2인용 자전거의 페달을 같이 굴리며 애정을 과시한다. 바닷바람에서도 그 달콤함이 묻어난다.
▲ 빠알간 동백꽃. 여수 오동도에 동백꽃이 피기 시작했다. ⓒ 이돈삼
▲ 오동도에 활짝 핀 동백꽃. 한 여행객이 스마트폰으로 동백꽃을 찍고 있다. ⓒ 이돈삼
방파제를 따라 오동도로 들어간다. 길게 이어진 방파제가 바다 한가운데로 이끈다. 내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바닷물도 맑고 깨끗하다. 원유 유출사고를 겪은 신덕리가 멀지 않지만 기름 찌꺼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방파제 끝에서 오른편 해안에 놓인 나무데크 길을 따라 간다. 섬의 속살을 만나는 길이다. 동백나무가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다. 절정은 아니지만 동백꽃도 피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지는 동백꽃이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연인들도 붉은 동백꽃을 보며 밀어를 속삭이고 있다.
오동도는 면적이 9만㎡로 작은 섬이다. 여기에 수십 년 묵은 동백 300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동백은 샛노란 수술에 붉은 꽃잎과 짙푸른 잎새가 선명한 색의 대비를 이뤄 강렬한 이미지를 준다. 선홍빛깔의 꽃이 활짝 피면 황홀경을 연출한다. 올해도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동백은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고 생각될 때쯤 꽃잎을 떨어뜨린다. 이렇게 꽃잎을 뚝-뚝- 떨궈 빨갛게 물든 숲도 매혹적이다. 동백은 꽃이 필 때와 질 때 두 번 봐야 한다는 말도 이래서 나왔다. 피는 모습도, 지는 모습도 모두 아름답다.
▲ 오동도 해안 풍경. 바다에선 모터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 이돈삼
▲ 오동도 용굴. 오동도 해안에서 만나는 비경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동백숲 산책로에서 오른쪽 해안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바닷가 기암절벽에 뚫린 용굴을 보러가는 길이다. 나무데크로 계단을 이루고 있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내려갈 수 있다. 데크 주변에 아열대식물인 팔손이가 부지기수다. 이파리를 세어보니 여덟 가닥만 있는 게 아니다. 일곱 가닥도 있고 아홉 가닥도 있다.
용굴은 해안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바닷물이 쉴 새 없이 드나들어 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파도가 떠밀고 온 바닷물을 가까이서 마주하는 것도 상쾌하다. 바닷가 숲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오동도등대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백숲길을 걷다 만나는 오동도 등대(항로표지관리소)는 한국전쟁 때인 1952년 5월 처음 불을 밝혔다. 둥근 모양의 흰색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지금의 팔각형 구조물은 지난 2002년 다시 세웠다. 높이가 27m에 이른다.
▲ 오동도등대. 한국전쟁 중에 불을 밝혔다. 지난 2002년 새로 지었다. ⓒ 이돈삼
▲ 오동도 동백숲길. 숲 사이로 나무데크가 놓여 있어 편하게 걸을 수 있다. ⓒ 이돈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부러 나선형 계단을 따라 등대 전망대까지 올라간다. 전망대에 서니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세상 시름 다 잊게 해준다. 정면으로 기다랗게 보이는 섬의 무리가 경상남도 남해군이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섬은 갓김치로 유명한 돌산도다. 발품을 잠깐 팔아서 누리는 호사가 분에 넘친다.
등대 주변에는 신우대와 비슷한 '해장죽'이 숲터널을 이루고 있다. 아무 데서나 보기 드문 해장죽이다. 두 갈래로 휘어진 해장죽 터널은 동백숲과는 또 다른 멋을 선사한다. 이국적인 느낌까지 든다. 여행객들도 이 숲길에서 오래 머문다. 경물도 다소곳하다.
▲ 오동도 해장죽 터널. 신우대의 하나인 해장죽으로 이뤄진 길은 오동도에서 만나는 특별한 풍경이다. ⓒ 이돈삼
숲길을 거닐면서 만나는 남근목도 별나다. 오가는 사람마다 힐끔힐끔 쳐다보며 즐거워한다.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거닐 수 있는 지압 산책로도 따로 있다. 하지만 오동나무는 보기 드물다. 여기엔 고려 공민왕 때 신돈과 관련된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오동도엔 오동나무가 빽빽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봉황도 많이 날아들었다. 신돈은 이를 새로운 임금이 나올 징조라 여기고 이곳의 오동나무를 다 베어냈단다. 봉황의 근거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마음을 잔디광장의 음악분수가 위무해 준다. 꽃바람으로 가득 부풀었던 내 마음도 다독거려 준다. 새봄에 찾아서 더 좋은 여수 오동도다.
▲ 오동도 산책로와 지압로. 동백숲을 따라 난 산책로를 따라 여행객들이 봄바람을 쐬며 걷고 있다. ⓒ 이돈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해고속국도 순천나들목으로 나가 여수방면 17번 국도를 탄다. 여수산단 입구를 지나 여수교차로에서 우회도로를 타고 돌산방면으로 가면 오동도로 연결된다. 내비게이션은 여수시 오동도로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