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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를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서평] 안도현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 <나는 당신입니다>

등록|2014.03.17 17:06 수정|2014.03.18 10:16

나는 당신입니다.안도현 산문집/느낌이 있는 책 ⓒ 김용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유명한 시죠. 안도현씨가 쓴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누구나 별 생각 없이 발로 툭툭 차는 연탄재를 뜨거운 사랑을 주는 존재로써 재조명하며 인간이 연탄재보다 못할 수도 있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학시절에 이 시를 외웠습니다. 이 시를 떠올릴 때마다 대학시절의 추억과 함께 뜨거운 사람이 되기 위해 다시 마음을 추스렸던 기억이 납니다.

안도현씨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감성을 지닌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에 나온 안도현씨의 산문집 <나는 당신입니다>는 시인이 개인적으로 읽었던 많은 작품 속 글을 시인의 눈으로 다시 재해석해 소개했습니다. 260여 편의 작품이 소개돼 있고 각각을 다섯 가지의 주제로 모아뒀습니다.

진짜 사랑을 한다는 것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류시화 <소금인형> 전문)

지금 이 시간에도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누군가 당신 속으로 뛰어들고 있겠지요? 아침에는 밥 한 숟가락이, 낮에는 물 한 모금이, 저녁에는 서늘한 바람 한 줌이 당신의 피속으로 들어와 녹아버렸지요? 이 세상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까닭은 '나'를 위해 누군가, 무엇인가 자꾸 '소금인형'이 돼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본문 중에서)

그렇습니다. 삶에서 내가 얻는 정신적인, 물질적인 것들은 내가 잘나서 내가 노력해서 정당하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님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한다.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얼굴도 모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내가 생활을 하고 있는지. '내 돈 주고 정당하게 내가 산 것'이라고 그 물건의 가치가 정말 지불한 금액과 일치할까요? 1년 동안 농사 짓는 분들에게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은 실로 정당한 것일까요? 세상은 서로에게 수많은 소금인형이 있기에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당신도 누군가에게 소금인형이겠지요. 진짜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읽고 쓰는 것, 그것은 이 세상하고 연애하는 일이라고 종종 생각을 합니다. 훌륭한 연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니까요.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형식 중 하나이죠. 가슴과 손끝으로 함께 하는 연애, 비록 욕심이라 할지라도 저는 시가 그런 과정 속에서 태어나기를 꿈꿉니다.(본문 중에서)

시를 얕잡아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산문 읽듯이 후루룩 읽고 '한권 다 읽었다'며 책의 권 수에 연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러지 못합니다. 최소한 몇 번은 읽어 봅니다. 눈으로 읽고, 소리내어 읽고, 음미하며 읽고, 새벽에 읽어 봅니다. 그때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이해하려고 읽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시를 썼던 당시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상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참 깊은 호수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물 색깔만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물속의 생명들이 보이니 말입니다.

수많은 말들이 소음을 만들어내는 시대, 침묵이야말로 진정한 '언어'임을 역설하는 저자의 진술에 우리는 귀를 기울려 볼만합니다. 당신은 말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침묵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 세계를 지배합니다. 사랑의 말만이 침묵을 증가시킨다는 통찰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사랑하려거든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겠습니다.(본문 중에서)

막스 피카르트의 산문 <침묵의 세계>를 평한 대목입니다. 사실 너무 시끄럽지 않습니까? 절대 고독, 절대 침묵을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도 아주 많을 것입니다.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는 절대 고독, 절대 침묵의 상태, 처음에는 무서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침묵은 자신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더 이상 들리는 외부 세계가 아닌 안들렸던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침묵이 지배하는 세상, 그리 나쁠 것 같진 않습니다.

솔직한 우리네 삶

식탁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면 침대에서도 어떻게 행동할 지 설명할 수 있다.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사람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사람보다 조루증일 확률이 높다. 음식을 합리적으로 섭취하려는 사람은 상대방의 몸에 접근할 때도 그렇게 할 것이다.(월리 파시니의 산문 <에로스와 가스테레아> 중에서)

음식 먹는 습관과 섹스하는 버릇이 서로 통한다니, 이 글을 보면서 뜨끔한 사람 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밥상 앞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에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하기야 어디 밥상 예절뿐이겠습니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본문 중에서)

남녀의 관계를 야하지만 야하지 않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글도 소개가 되고 있는데 저속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래, 이것이야'라며 깨닫게 만드는 시인의 통찰력과 감수성이 더 감동적입니다. 훨씬 야한 내용들이 더 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 저도 생각나는 말이 있네요. '상상하는 것이 훨씬 야하다.' 궁금하신가요? 책을 보셔야겠습니다.

눈물 나는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의 방식으로 당신을 떠났다는 것은
삶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의무와 권리를
당신에게 위임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수행함으로써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경의를 표할 수 있게 됩니다.
(얼 그롤먼의 산문 <당신은 가고 나는 남았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가정합시다. 아마 이 세상의 전깃불이 모두 소등된 상태, 즉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산자는 그 비통함을 안고 살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사랑은 묻어야 하지만, 슬픔은 풀어야 하니까요. 죽은 자를 위해서 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그래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요.(본문 중에서)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를 더 추가해 살고 있습니다. 끝까지 사는 데, 더하기 가치있게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내게 이런 시련이 온 이유는 내가 더 의미있게 살으라는,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듭니다. 하루하루가 지나며 따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간신히 참아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 때, 어떻게 살아야 겠는지를 함께 생각하며 살아냈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하지만 죽은 자를 위해서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그래도 끝까지 사는 것입니다. 더욱 가치있게 사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문태준의 시 <꽃 진 자리에> 전문)

천천히 읽고, 입에 넣어 오물거리면서 읽고, 또 한 번쯤은 입 바깥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그리움이 당신의 마음속에도 스며들 것입니다. 이 시를 읽고 당신도 꽃잎과 별반 차이 없는 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드는지요? 지금 우리가 꽃잎처럼 생의 의자에 앉아 있다면 언젠가는 그 자리를 또 비워야 함을 당신도 생각하고 있는지요? 그러면 아마 그 빈자리 때문에 또 누군가 당신을 그리워겠지요?(본문 중에서)

저는 이 대목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 시를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 새벽에 읽었습니다. 느낌이 와 닿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추억하며 읽었습니다. 느낌이 달랐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이 시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참 애를 씁니다. 몇 번을 읽어보라며, 읽는 방법까지 소개하며 소개합니다. 시인의 노력이 불쌍하면서도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책 읽듯이 슥 읽고 그냥 지나쳤을 테니까요. 그러면 인간 삶의 평범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때로는 정의로운 삶

그 친구는 내려놓음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했고, 우리는 거머쥠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울타리를 쌓아올림으로써 바라는 바를 실현하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자신의 울타리를 철저하게 해체시킴으로써 바라는 것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실상을 알고 실상의 질서를 따르는 것만이 참된 길이라고 믿었고, 우리는 자신 밖의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좌지우지 하는 데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모두 똑같이 밥 먹고 잠자는 만큼 똑같은 꿈을 꾸어왔으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걸어온 길은 전혀 다른 길이었다.(도법 스님의 산문 <내가 본 부처> 중에서)

시인의 소개도 있었지만 저는 이 글만 읽고도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꿈을 꾸어왔으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걸어온 길은 전혀 다른 길이었다.' 당신은 어떤 길을 가고 있나요? 우리는 어떤 길로 가고 있을까요? 아직 늦진 않았습니다. 내가 아닌 당신까지 모두 함께 가는 길, 바로 곁에 있을 지도 모릅니다.

작은 깨달음 큰 행복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
갈라지면서도
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
전단향나무처럼 
(인도 잠언시집 <수바시따> 중에서)

'수바시따'는 수천 년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고대 인도 민중들의 시가입니다. 단 몇 줄의 언어 조합으로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이끌어내는 게 특징이죠. 향나무는 갈라지면서 도끼날을 향기롭게 만든다니! 대단한 통찰력입니다.(본문 중에서)

마무리가 됐네요. 모든 주제를 동일한 양으로 소개하진 못했지만 이 책은 앞에서 설명드린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습니다. 작품소개와 시인의 해석이 공존하지요. 편안한 책입니다. 원작을 꼭 읽고 싶게 만듭니다. 그리고 '책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부끄러움도 느끼게 됩니다. 한 줄 한 줄, 한 단어 한 단어를 곱씹어 읽으며 조용히 눈웃음을 짓는 안도현 작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책을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됐습니다. 안도현 시인이 편안하게, 다시 시를 쓰는 일상으로 돌아오시길 기다립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당신입니다'를 알려준 책,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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