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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박근혜 정당성 공인 수단 돼선 안 돼"

천주교 평신도들 입장 발표... 가난한 이들 고통 받는 현장 방문 없는 방한 일정도 비판

등록|2014.03.17 15:41 수정|2014.03.17 15:46

▲ 천주교 평신도들이 1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황 방한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천주교 평신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방한 일정이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아래 천정연)과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아래 가톨릭행동)은 17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종 방한에 대한 한국 천주교 평신도들의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교황의 방한을 정권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불순한 시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교회가 "교종 방문을 계기로 교회의 양적 성장에 다시 몰입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종 방한이 또 다른 종교적 상품으로 소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은 국가기관의 불법적 대선 개입을 통해 탄생했으며, 그 불법행위를 은폐하고 있는 정권"이라고 지적하며, "교종의 방한이 박근혜 정부의 과오를 덮고 정당성을 공인해 주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교회 장상들에게 교황 방한과 관련해 평신도의 의견을 수렴할 기회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권오광 천정연 대표는 "평신도로서 25년 만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지만 발표된 일정을 보며 당혹스러움을 갖게 됐다"고 기자회견을 개최한 취지를 설명했다. 권 대표는 "교황의 첫 방문지가 청와대로 예정된 것은 곤혹스럽다.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 입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방문 일정 변경을 요청했다.

광화문에서 열릴 것으로 알려진 시복식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권 대표는 "광화문에서 시복식이 열리면 백만 명 이상이 모여 일대 모든 교통이 마비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다른 종교와 시민사회의 시선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근수 가톨릭행동 공동대표는 "교황의 방한 일정에 가난한 사람이나 고통 받는 현장을 방문하는 기회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대표적 현장인 강정마을, 밀양, 쌍용차 중 한 곳은 방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이러한 현장과 연대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평신도 단체를 만나는 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교황의 방한 일정 중 공식 기자회견 일정이 공지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교황에게 한국 사회와 교회의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기회를 봉쇄하려는 주최 측의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최금자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공동대표는 한국 여성들이 여전히 교회와 가정, 직장, 사회에서 차별받는 현실을 지적하며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이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되고 희망을 키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천정연과 가톨릭행동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 교회 장상들에게 사회 현실과 정권의 부도덕성, 교회 쇄신 방향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청원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사순 시기 동안 희생과 기도운동을 벌이는 한편, 시국기도회를 지속적으로 봉헌할 예정이다.

[전문] 교종 방한에 대한 한국 천주교 평신도들의 입장
프란치스코 교종 방한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1. 스승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부활에 참여하기 위한 기도와 희생의 시기인 사순 첫 주 월요일인 지난 3월 10일 우리 평신도들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교종의 방한은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여를 통해 젊은 신앙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고, 동시에 순교로 자신의 신앙을 증거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을 순교자의 땅에서 거행하기 위한 사목방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지난 1년간 신자뿐 아니라 세계인에게 주신 가르침은 두 가지의 큰 행사를 넘어서 평화와 화해, 그리고 쇄신의 가치를 선포하고, 전 세계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 교종께서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가난의 성자'인 프란치스코 성인을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하시고, 아프리카 난민들의 유럽관문인 람페두사를 방문하고, 자본 중심의 세계에서 무기력감에 빠진 세상과 교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가르침을 주시면서, 인류에게 매 순간 은총의 시간을 선물하셨습니다. 교종의 이런 모습은 가톨릭 교회를 넘어서 세계인들에게 '프란치스코 현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교종 개인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열망이 복음의 본질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우리 평신도들은 프란치스코 교종과 함께 "복음의 기쁨"을 되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 지난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는 한반도에 첫발을 내딛으시면서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란 말씀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평신도들에 의해 복음을 수용하고 피의 순교로 복음을 지킨 한국 교회의 의미를 대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켜낸 "순교자의 땅"일 뿐 아니라, 제국주의 침탈로 인한 식민의 땅이었고, 냉전의 최전선에 선 화약고였으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눈물의 땅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민중들은 수탈과 억압의 역사를 견뎌야 했고, 한국전쟁으로 무고한 양민들의 피가 이 땅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남북의 갈등은 아직도 남과 북 민중 모두에게 거대한 멍에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군사독재의 폭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민중의 헌신은 세계인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반도에 전해진 이후만 보더라도 이 땅의 민중들은 다양한 의미에서 "피의 순교"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한편 이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잔재 속에서 총칼을 겨누는 남과 북이 실재하고 있고, '종북'이라는 낙인찍기가 정권유지를 위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거대한 자본의 힘에 종속된 이 땅의 노동자들, 기층 민중들은 진정한 해방의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평신도들은 교종 프란치스코의 방한이 "누가 이들을 위해 울어줄 것인가?"라고 호소하셨던 람페두사에서 보여주신 희망의 메시지가 다시 울려 퍼지길 기대합니다.

4.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열망과는 다르게 교종의 방한을 자신의 정권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불순한 시도를 곳곳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평신도들은 프란치스코 교종과 한국 천주교회의 장상들에게 다음과 같은 우려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하나, 현 박근혜 정권은 국가기관의 불법적 대선개입을 통해 탄생했으며, 그 불법행위를 은폐하고 있는 정권입니다. 외교적 관례에 따라 교종께서 현 정권과 방한일정 의전에 대해 협의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번 교종의 방한이 박근혜 정부의 과오를 덮고 정당성을 공인해 주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됩니다.

둘, 교회 장상들께는 교종의 방한이 한반도에 "복음의 기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교회 각 지체들의 다양한 열망을 수렴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특히 교회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들이 교종의 방한을 함께 준비하고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5. 이런 우리의 염원과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리 평신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하나, 우리 평신도들은 교황청이 한국사회와 교회현실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 부족을 통감하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한국사회 현실과 박근혜 정권의 부도덕성, 한국교회의 쇄신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프란치스코 교종과 한국 교회 장상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청원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둘, 우리 평신도들은 스승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사순기간 동안 이 땅의 정의, 평화, 민주를 위한 희생과 기도운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 실천 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셋, 우리 평신도들은 기도와 희생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갈망하면서 시국기도회를 지속적으로 봉헌할 것입니다.

6. 우리는 교종 방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교종 방한의 경제적 가치를 논하는 불순한 의도를 경계합니다. 교회는 교종 방한을 계기로 교회의 양적 성장에 다시 몰입할 위험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교종의 인기를 활용해 이익을 보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교종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이들이 차고 넘쳐도 그의 메시지에 진지하게 응답하지 않는다면, 프란치스코 교종 방한은 또 다른 종교적 상품으로 소비될 뿐입니다. 교종 프란치스코의 인류를 향한 간절한 호소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와 교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열망하며, 교회의 방한으로 우리 모두가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선포된 복음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4년 3월 17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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