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아버지와 두 아들이 만든 지하 단칸방 세계

[리뷰] <굴레방 다리의 소극>, 가슴 먹먹해지는 진실과 대면

등록|2014.03.18 11:15 수정|2014.03.18 11:15

▲ 공연 소개 및 캐스팅. ⓒ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연극 <굴레방 다리의 소극>에서 '굴레방 다리'는 서울 아현동 고가차도 부근을 말한다. 그 아현동 지하 단칸방에 아버지와 두 아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그 방 안에서 연극을 한다. 그 연극의 내용이란 사실 아버지가 연변에서 서울로 오기 전 상황들이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여러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며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이 연극이란 현실을 부정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방어막이자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연 초반 관객은 이 정신없고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이 연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극도의 긴장감과 에너지가 폭발하는 이 연극의 목적은 아버지가 수여하는 '련기상'-극중 이들의 출신이 연변이기에 이렇게 표기한다- 수상이다. 물론 그 연기상은 언제나 아버지의 차지지만.

▲ 아버지 '대식' 역의 권재원. 그는 이 역을 위해 난생 처음 삭발을 했다고 한다. ⓒ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연극의 내용은 언제나 정해져 있으며 아들들은 대본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적'이지 못한 것을 싫어하는 아버지의 규칙 때문에 소소한 실수 하나에도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아들들은 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조차 없이 살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이 감옥 같은 지하 단칸방에서의 탈출 가능성을 조금 높여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 사실적인 무대 ⓒ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늘 똑같이 먹던 닭고기 대신에 소시지를 가져온 둘째 아들 덕분에 연극의 사실성을 훼손한 아들들은 아버지의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대신 그들의 일상에 마트 점원인 김리가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왕국에 의심이라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셈이다.

▲ 첫째 아들 '한철' 역의 장성원. 다양한 역을 소화하느라 이 연극에서 가장 고군분투하는 배우다. ⓒ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이 작품은 뮤지컬 <원스>의 작가 엔다 월쉬의 원작 <TheWalworthn Farce>를 극단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임도완 연출가가 각색 연출한 작품이다. 원작이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 작품은 연변과 서울 아현동을 주 무대로 했다.

이 세 부자가 벌이는 기묘하고 엉뚱한 연극은 아버지에게는 목적이 분명한 행동이지만 관객은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세 명의 배우가 펼치는 완벽한 메소드 연기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이 연극이 가지는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 둘째 '두철' 역의 이중현. 다양한 색을 지닌 배우다. 속알머리 없는 독특한 머리에 눈길이 간다. 이 배역을 위해 실제 그런 머리를 했다고 한다. ⓒ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아버지의 늘 강조하는 사실적인 연극과 마찬가지로 실제 이 작품 <굴레방다리의 소극>의 무대는 굉장히 사실적이다. 그에 반해 부조리하고 상징적인 이 연극은 말 그대로 소극에 가깝다.

두 시간 가까운 상연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틈이 없을 정도로 빠른 전개와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 덕에 연극이 끝나고 나면 멍한 상태에서 이 작품이 숨가쁘게 달려온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 극중 베트남 처녀 '김리' 역의 김다희. 실제로는 굉장히 예쁘고 매력적인 배우다. ⓒ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해 삭발을 한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열정과 원작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들은 <휴먼 코메디>, <보이체크>의 임도완 연출의 꽉 짜인 대본과 연출력에 박수를 보낸다.

▲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중인 감독과 배우들 ⓒ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공연은 3월 30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는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덧붙이는 글 본인 블로그에도 중복게재합니다. blog.naver.com/mmpictures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