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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장은 왜 '가짜 러시아 차관'을 초청했나

삼척시가 한 민간업체 과장을 러시아 차관으로 위장한 이유

등록|2014.03.18 10:41 수정|2014.03.18 10:54
강원도 삼척시가 지난해 10월 14일 '2013 삼척 세계 GAS 에너지 및 PNG 심포지엄'을 개최할 당시, 행사의 격을 높이기 위해 '가짜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을 초청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안전행정부가 감찰을 실시한 결과, '가짜 차관'으로 지목된 인물은 한 러시아 에너지회사의 '과장급' 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행정부는 최근 강원도에 '연말연시 공직기강 감찰 결과 처분요구서'를 보내, 삼척시가 "민간회사 직원을 러시아 차관 행사로 추진(하는) 등 예산(을) 낭비"한 사실을 지적하고, 담당 공무원을 '경징계'하라고 지시했다. 이 공문을 보면, 삼척시는 지난해 PNG 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러시아 민간업체 'Director(과장급)'를 러시아 연방 에너지부 차관으로 소개하는 등 허위보도(를) 유도"했다.

▲ 삼척시가 제작한 PNG 심포지엄 홍보 동영상.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으로 초청한 '가짜 차관' 시몬 다닐로프(오른쪽 회색양복)와 김대수 삼척시장이 나란히 앉아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동영상 촬영). ⓒ 성낙선


삼척시의회 이광우 의원,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은 가공인물"

심포지엄에 참석한 러시아 차관이 가짜라는 사실은 지난해 11월 22일 삼척시의회가 '행정사무감사'를 벌이는 자리에서 제기됐다.

이날 삼척시의회 이광우 시의원은 "삼척시가 '2013 삼척 세계 GAS 에너지 및 PNG 심포지엄'에 초청한 '시몬 다닐로프' 러시아 차관을 비롯한 해외 초청 인사들이 '가공인물'이거나 직책과 직위가 다르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시의원은 "삼척시가 초청한 러시아 에너지 차관이라는 인물을 외교부에 확인한 결과 그런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삼척시에 해명을 요구했다.

▲ 가짜 러시아 차관. 심포지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시몬 다닐로프. 삼척시는 그를 심포지엄에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으로 초청했으나, 결국 민간회사 과장급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 삼척시

이 시의원이 사실 확인을 요구하자, 삼척시는 이날 '시몬 다닐로프'라는 인물이 '러시아 차관'이라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시몬 다닐로프가 러시아 행정상 '차관'보다는 낮고 '차관보'보다는 높은 인물"이라며, 그를 심포지엄에 러시아 차관 자격으로 초청한 것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심포지엄이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삼척시는 이날 "(심포지엄이) PNG 터미널 유치의 당위성을 국내외에 선언하고, 심포지엄을 통해 전 국민이 (터미널 유치와 관련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불신에서 오는 갈등을 제거"하는 등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자평했다.

하지만 이 심포지엄은 결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안전행정부가 강원도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삼척시의 해명은 모두 거짓에 불과했다. 삼척시는 애초 심포지엄 참석자를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 등 "중앙부처 장관과 회사 CEO를 행사 VIP로 결정"하고 행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행사 개최를 코앞에 둔 시점에, 애초 초청 대상자로 결정했던 러시아 에너지 장관 등 주요 인물이 모두 '불참'하게 되자, 다른 인물을 섭외했다. 이때 외국 인사 섭외를 담당한 사람으로부터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보급'인 시몬 다닐로프가 삼척시를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이 사람을 대신 초청했다. 삼척시는 이때 시몬 다닐로프라는 인물의 신분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다.

게다가 김대수 삼척시장은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물론이고 차관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부하 직원에게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보급'으로 연락받은 시몬 다닐로프를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으로 고쳐 소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 강원권 KBS 등에 '시몬 다닐로프 러시아 연방 에너지부 차관'이 참석하였다는 허위 내용이 보도되도록 유도"했다.

삼척시는 심포지엄이 열리는 기간 내내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이 참석한 사실을 신문과 방송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심포지엄을 개최한 뒤에는 보고서에 "세계 최대의 에너지 보유국인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 일본, 미국, 스웨덴, 우즈베키스탄 등 세계 7개국의 PNG 및 복합에너지 산업의 전문가들과 학자들이 참석"했다고 정리했다.

▲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찍은 기념 사진. 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으로 초청된 시몬 다닐로프. 그 옆에 김대수 삼척시장이 함께 앉아 있다. ⓒ 삼척시


'러시아 장관' 초청 예산을 '민간회사 과장'을 위해 집행

삼척시는 또 장관급을 초청하기 위해 준비한 예산을 민간회사 과장급인 시몬 다닐로프 일행을 초청하는 데 사용했다. 삼척시는 애초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 등을 초청하기 위해 항공료로 1600여만 원을, 그리고 그들이 동해안 에너지 단지 등 개발 지구를 돌아보는 데 필요한 현지시찰용 헬리콥터를 빌리는 비용으로 4300여만 원을 책정했다.

그런데 삼척시는 초청 대상이 한 나라의 장관급에서 민간기업의 과장급으로 대거 교체됐는데도, 그런 사정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장관급 예산을 모두 시몬 다닐로프 일행을 실어 나르는 데 사용했다. 안전행정부는 이런 사실과 관련해 삼척시가 "예산이 낭비되도록 한 사실이 있음"을 지적했다. 삼척시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총 4억5000만 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가짜 러시아 차관'이 결국 한 민간업체의 과장급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과 관련해, 삼척시의회 이광우 시의원은 17일 "참으로 놀랍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삼척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대수 삼척시장은 삼척시의회를 속이고 시민들을 속인 것에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안전행정부가 강원도에 감찰 결과를 통보하면서, "꼬리"에 불과한 담당 공무원만 '경징계'하라고 지시한 것은 시장이 시민을 속인 사안에 비해 "경미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2013 삼척 세계 GAS 에너지 및 PNG 심포지엄'은 지난해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열렸다. 삼척시가 이 심포지엄을 개최한 목적은 삼척이 PNG 터미널 조성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널리 홍보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PNG 터미널 유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데 있다.

PNG는 'Pipe-line Natural Gas(파이프라인 천연가스)'의 약자다. 정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동해안을 거쳐 우리나라로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북한과의 관계가 풀리지 않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런 가운데 삼척시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동시에, 이 사업까지 유치함으로써 삼척시를 '세계 에너지 중심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삼척시가 가짜 러시아 차관까지 동원하면서 이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홍보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삼척시가 PNG 터미널 유치에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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