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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은 천수만 꼴 나서는 안 된다

[주장] 조력발전 미명하에 갯벌 파괴...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

등록|2014.03.20 10:33 수정|2014.03.20 14:10

도보행진단 도착6일 오전 10시 서산시청 앞을 출발하여 6박7일 동안 도보행진을 벌인 가로림만 어민 대표들이 12일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 도착했다. ⓒ 지요하


몸의 무리를 피해 요즘은 등산 대신 주로 평지 걷기운동을 한다. 그래도 봄꽃들이 만발하는 4월에는 다시 백화산을 자주 오를 생각이다. 4월과 백화산에 대한 설렘이 벌써부터 내 가슴에 가득하다.

그러나 백화산에 올라 천수만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가슴 저리는 일이다. 안타깝고 암울하고 억울하다. 천수만 상실의 아픔이 내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실감한다. 지난해 유월 두 번째 목적시집 <그리운 천수만>을 출간한 이후 내게는 천수만에 대한 그리움이 한결 농밀해졌다.   

천수만 상실의 아픔은 1980년대 이전, 과거 속의 일이 결코 아니다. 또 천수만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세대들만의 것도 아니다. 조물주께서 베푸신 천혜의 환경을 인간의 좁은 잣대로, 근시안적인 이기심과 탐욕으로 절단 내버린 어리석음은 이런저런 형태로 두고두고 그리움과 회한의 그림자를 태안반도 전체에 남기게 될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서' 소각가로림만 조력발전(주)이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환경부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가 엉터리임을 지적한 가로림만 어민 대표들이 서류가 담긴 상자를 어구들로 찍어 파괴한 후 소각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지요하


백화산에 올라 육지로 변한 천수만의 황량한 모습을 보노라면, 더욱이 기업도시를 건설한다고 공사 차량들이 분주히 오가는 B지구 적돌강의 한쪽 풍경을 보노라면, 다시금 극심한 정서교란을 겪게 된다. 내 나이 탓보다도 사실은 그 풍경을 보지 않기 위해 근래 들어 백화산 등산을 기피해왔음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시집 <그리운 천수만>의 시편들 안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만 천수만은 바다의 보고(寶庫)였다. 잡고, 캐고, 따고, 뜯고, 긁고, 줍는 것들이 언제나 차고 넘치던 바다였다. 천수만을 싸고 있는 3개 시/군 44개리(里)의 먹거리 창고이기도 했다.

언젠가 백화산 정상에서 천수만을 바라보며 엉뚱한 상념을 떠올린 적이 있다. 천수만이 바다로 남아 있다면 백화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천수만을 제방이 가로막지 않고, 바다 위를 대교(大橋)가 지나간다면 얼마나 멋진 모습일까? 전국에서 으뜸가는 관광 명품이 되지 않을까?

또 북쪽의 가로림만과 남쪽의 천수만을 바라보며 '굴포운하'를 떠올리곤 했다. 우리 조상들이 수차례 가로림만과 천수만을 잇는 운하 공사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곤 했던 눈물겨운 사연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리도 안 되는 길을 파서 두 바다를 잇는 일은 지금 같으면 큰 공사도 아닐 터이다. 우리의 정치와 개발정책에 조금이라도 낭만성이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여러 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하곤 했던 그 굴포운하 공사를 오늘의 후손들이 이루어 조상들의 눈물겨운 한을 풀어드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굴포운하의 한스런 역사와 함께 의미 있는 관광명품이 되지 않을까(아, 정말 엉뚱한 생각이다).

백화산을 오르면 자연히 보게 되는 가로림만에 대한 생각도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로림만의 풍경은 한 마디로 그림이다. 전국 어디에서 저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가로림만 역시 바다의 보고다. 잡고, 캐고, 따고, 뜯고, 긁고, 줍는 것들이 언제나 차고 넘치는 바다다. 태안군과 서산시 6개 읍/면의 어민들뿐만 아니라 주민 전체의 생업과 식생활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성명서 낭독서울 광화문 앞 집회 장소에서 태안군 이원면 내리(만대) 주민인 이순씨가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어민들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지요하


그런 가로림만의 운명이 현재 천수만과 똑같은 기로에 놓여 있다. 가로림만의 입구를 댐으로 막아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개발귀신'의 폭거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말은 전력 생산이 목적이라지만, 밀물 때 물을 가두었다가 썰물 때 방출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하여 터빈을 돌리는 식으로 얻어지는 전력은 극히 미미하다. 현재 태안화력에서 생산하는 연간 전력의 2.7%에 불과하고, 서산시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수간만의 차이도 심하고 시간도 일정치 않기 때문에 발전기를 돌리는 때보다 세워놓는 때가 더 많다. 여러 가지를 따져보아도 불합리가 크고, 소탐대실의 위험이 너무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가로림만을 집어삼키려는 개발귀신은 집요하게 어민들을 괴롭힌다. 조력발전이라는 미명을 앞세운 개발귀신의 대열 속에는 포스코, 대우, 롯데 등 거대 자본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권에 대한 탐욕 때문이다. 천수만을 막아서 생겨난 3천2백만 평의 땅을 공사시행권자인 정주영씨가 독차지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저들은 가로림만 댐으로 생겨나게 될 갖가지 유형무형의 이권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거대 자본과 산업통상자원부(아래 산통부)를 중심으로 한 관료들의 결탁에 맞서 가로림만을 지키려는 어민들과 서산/태안지역 주민들의 저항 의지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가로림만의 산통을 깨려고 작정한 듯한 산통부가 또다시 환경부에 '가로림만조력발전(주)'의 '환경영향평가서'를 이첩한 것 때문에 반대 주민들의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다.

삭발식서울 광화문 앞 집회 장소에서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어민 대표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 지요하


우선 가로림만의 어촌계장들과 '가로림만조력댐 백지화를 위한 서산태안 시민연대' 집행부 20여 명이 지난 6일부터 6박7일 동안 도보행진을 벌였다. 그들이 서산시청을 출발하여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 도착한 12일 오전에는 1천여 명의 가로림만 어민들이 버스로 이동 집결하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서울 광화문 앞으로 가서 2차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여한 어민들 가운데는 노인들도 많았다. 그들 가운데는 자녀들이 모두 외지로 나가 살기에 자손에게 어장을 물려줄 수 없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확실치도 않은 보상 몇 푼에 어장과 어업을 팽개칠 수는 없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가로림만의 바다와 갯벌은 자신들의 생명이요, 영혼이라고 했다. 확실치도 않은 보상 몇 푼에 바다를 내주는 것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고 영혼을 파는 짓이라는 얘기였다.

나는 첫날의 도보행진에 함께 하고 정부세종청사 앞과 서울 광화문 앞의 집회에 적극 참여하면서 가로림만을 단순한 바다가 아닌, 자신들의 생명이요 영혼으로 인식하고 있는 가로림만의 모든 어민들에게 무한한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천혜의 자연환경인 가로림만은 어민들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들의 마음의 고향이며 생명이요 영혼 같은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강화도 어민들의 연대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거행된 가로림만조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서산 태안 어민들과 주민들의 대규모 집회에는 강화도 어민들도 대거 참여하여 연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 지요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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