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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야권연대에 휘둘리지 말아야"

[인터뷰전문②]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본 '안철수와 통합신당'

등록|2014.03.24 08:04 수정|2014.03.24 15:18
다음은 지난 20일 오후 2시부터 출판사 후마니타스 사무실에서 박상훈 대표와 2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 전문 두번째다. [편집자말]

▲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 권우성


"안철수, 민주당의 한 구성요소로 사그라들었다"

- 현실정치 측면에서 그동안 안철수는 애매모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통합을 결정하면서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철수가 이제 현실정치인이 된 게 아닌가?
"기성정치로 보면 현실정치에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치를 개입시킨다면 정당체제가 사회체제 위에 넓게 포진돼야 한다는 새로운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기성화되고 현실정치에 적응했다고 해서 '안철수 현상'으로 발현된 요구를 시행했다고 할 수는 없다. 현실 적응력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치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런 결단이 결국 안철수의 사당화와 연결돼 있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
"안철수가 잘 나갈 때는 대선 때였다. 선거에서는 인물을 중심으로 평가되는 특징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후보를 사퇴하고 정상상황에 돌아왔을 때는 (현실정치의) 복잡성을 감당해야 한다. 조직화의 비용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등등. 정당은 조직체다. 조직은 유기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라는 '열정의 덩어리'를 구성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안철수의 경우 이미지 관리가 세력 형성 과정의 중심으로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안철수는 실수를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실수했다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뭔가를 하다가 실수하면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안철수 쪽에 모인 사람들의 절반은 쭉정이들이다. 그것을 완전히 걸러낼 수 없다면 그냥 그 길을 가버리는 거다. 그렇게 하면서 쭉정이들을 줄여가면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안철수가 창당일정을 잡고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기획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 밀려서 한 거고, 이번에 통합도 밀리고 밀려서 결정한 거라고 본다. 뭔가 실수를 하고 그걸 회복하는 노력을 했다면 앞으로 나아갔을 텐데, 그렇게 못했다. 뭔가 (주도해서) 했다면 많이 실수해도 앞으로 나갔을텐데 이것은 실수를 피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 안철수가 안철수 현상을 실현시키려고 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대안의 조직자가 됐어야 했다. 정치가의 역할과 기능은 대안의 형성이고 조직이다. 대안의 형성자(와 조직자)로서 역할을 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선언한 것이 바로 양쪽의 통합이었다."

- 최근 안철수측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에서 6·15, 10·4 선언을 빼자고 해 논란이 됐다. 
"그것이 그만큼 논란이 될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철수가 민주당에 자기의 색깔을 더 많이 부여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하지만 구조 전체로 보면 안철수는 민주당의 한 요소로 끝났다. 안철수는 민주당으로 들어간 것이다. 과거 시민운동진영이 민주당으로 들어갔던 것과 같다. 마치 그게 아닌 것처럼 포장하려고 자기 색깔을 넣으려다 보니 발생한 일이다. 민주당의 구조를 바꾸는 것에 열정을 가진 게 아니라 독자적인 인상을 강화하려는데 연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잘 하기 어렵고, 어쩔 수 없이 낡은 정치의 패턴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상이다."

-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비판한다. 이것이 온당한 비판이라 생각하나?
"아닌 것 같다. 그것('역사의식')은 민주정치에 좋은 말이 아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민주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운동이다. 민주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은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정당의 역할이 어떤 역사적인 사건에 가치를 부여하거나, 논문이나 선언문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런 역사적 가치를 실제로 구현하는 게 중요하지, (6․15 등을 정강정책에) 넣고 안 넣고를 따지는 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 그런데 안철수가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치부하고, 갈등요인으로 치부해 이것을 회피하려는 특성이 있어 보인다. 
"갈등회피적인 성향은 확실하게 있다. 안철수는 부분을 대표하려 않고 전체를 대표하려고 한다. 부분을 대표하면서 다른 부분과 경쟁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뤄가야 하는데, 모두를 대표하겠다고 한 것은 좋지 않다. 민주주의는 갈등과 통합의 변증법인데 갈등을 빼고 통합만 생각하는 건 단점이다."

"안철수는 약한 정당체제에서 등장한 포퓰리즘"

- 안철수가 갑자기 정치전면에 등장하는 과정이 한국의 정당체제에는 부정적인 것 같은데. 
"안철수에 기대를 거는 요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것이 표현되는 방법이 그런 요구를 단단하게 조직하는 정치세력의 형태가 아니라 그야말로 정치가 안철수 개인이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나 일본의 이시하라처럼 기존의 정당체제가 약해지면서 등장한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가 말하는 새정치의 내용은 들어본 적이 없다. 기존 정당의 불만만 말한다. 개인을 둘러싼 이미지만 강조하는 거다.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정치적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미디어가 받기 좋은 상품으로 정치가 흘러가고 있다. 안철수가 이런 평가를 안 받으려면 정당을 조직하고 세력을 형성해 이념성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 실력을 보였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미디어적 주가가 제일 좋을 때 민주당과 통합했다."

- 강원택 서울대 교수도 최근 한 강연에서 "매스미디어와 여론조사가 결합한 이미지 정치가 등장했는데, 안철수 의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현상이 기존의 편협한 정당구조를 깰 수 있도록 충격을 주는 길하고, 강원택 교수가 얘기한 두 가지 길에서 안철수는 후자의 길로 가면서 그 실험은 이제 끝났다. 전자의 길로 갔으면 안철수는 한국정치에 기여했을 것이다. 정당체제는 사회를 닮아가고 사회 위에서 넓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 실험은 끝나고 본인이 언론시장에서 좋은 소재가 될 만한 것만 보여주었다. 넓게 보면 민주당의 한 구성요소로 사그라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원택 교수처럼 볼 수밖에 없다."

-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안철수 개인이 아니라 안철수 현상이다.
"남은 과제가 그거다. 안철수가 실패하고 남긴 요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가 불만스럽고 거기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정치로 통합되지 않은 채 한 편에 있다.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민주정치의 혜택을 받아야 할 시민들이 계속 소외되고 약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강자들의 놀이터에 불과하게 된다. 이 넓은 사회에서 누군가에 의해 대표되지 않는 게 있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유능한 조직자로서 역할을 못하면 상당수의 시민들은 무권리 상태로 있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안철수가 떠난 자리에 남은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여전히 한국의 정당체제는 민주화되지 않았다. 민주화 이전의 정당구조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그것의 결과로 귀착된 것이 바로 안철수가 민주당으로 들어간 것이다."

- 통합신당이 지금의 민주당보다 오른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 않나? 
"민주당에 오른쪽, 왼쪽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이념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새누리당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다. 민주당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은 '야당'이다. 한국사회에 어떤 이념적인 무언가를 부가하려는 대안집단이라는 느낌을 못 준다. 어느 날은 진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진보적이었다가, 중도 실험을 하겠다고 보수노선으로 간다. 이렇게 이념 가치가 바뀌는 정당이 있을 수 있나? 그러니 오른쪽으로 간다, 왼쪽으로 간다고 말하는 의미가 없다."

- 그런데 사람들은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 길('중도')이 있다고 믿는다.
"중도노선은 잘못된 거다. 정치학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중도정당이라는 길이 없다. 중도는 정치현상을 설명해야 하니까 만든 개념이다. 이것이 현실을 대신하게 되면 중간이 실제로 뭔가 있는 듯 느껴진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노동자, 여성, 대학생, 농민 등 다차원적인 구성원이 뭉쳐지는 게 정당이다. 여론조사를 위해서 만들어진 좌우중도라는 것은 개념이 만들어낸 허구다.

개념이 지나치게 현실에 부과되면 거꾸로 그 개념이 현실을 장악한다. 그 개념이 현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니까 중도의 길은 좌절되고, 분열되거나 어디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통합한 다음 안철수가 뒤늦게 중도를 이미지화시키고 싶은 거다. 안철수가 새정치의 실제내용을 조직했다면 새정치라는 '말'에서 끝나지 않았다. 노동시장정책 등 경제문제나 사회문제의 구체적 해결방안이 나왔을 거다. 지금은 중도라는 애매한 틀에 갇혀버렸다. 이제는 민주당을 중도로 만들고 싶으니까 정강정책 등에다 그 개념을 색칠하려고 하고 있다."

"장기적 보수우위체제 가능성이 제일 두렵다"

- 이번 통합으로 민주당이 이익을 봤다고 생각하나?
"단기적으로는 얻은 게 있다. 통합이 없었다면 호남선거에서 민주당은 뼈아픈 일을 겪게 됐을지도 모른다. 호남정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게 좋은 의미인지를 떠나 민주당에는 이득이다. 또 집권당과 견줘볼 수 있는 구도를 만든 것도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장기전으로 생각했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의 격차가 크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호남을 빼고 다 질 수도 있다. 현상 유지를 하는 정도가 최상의 시나리오다. 만약 선거에 진다면 그 결과를 감수할 조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이번 연합이 새로운 분열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면 야권정치의 붕괴가 오고, 장기적으로 일본(자민당 장기 집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이전에는 새누리당 장기집권 가능성에 두려움이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나쁜 생각이 든다. 야권이 폐업과 신장개업을 반복하면서 야당지지자를 지치게 만들고 비판적 무관심층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우위체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정치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빈곤 계층 등은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는 비슷해야 한다. 양쪽이 실력을 겨뤄 공익에 기여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 절반 정도의 요구가 공공정책이 될 수 있는 통로가 생기는 거다. 그런 통로가 돼야 하는데 그 역할이 흔들릴까 두렵다."

- 안철수의 실패가 보수우위의 정당체제를 가속화 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하나?
"그게 가장 두렵다. 하지만 보수가 사회의 헤게모니를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보수우위체제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에게는 정당성의 한계가 있다. 정치가 어느 쪽으로 쏠리면 사회가 반대로 움직인다. 과거 김영삼의 3당 통합 때 지지율은 70%가 넘었다 하지만 전체 의석의 40%밖에 가져가지 못했다. 과반도 안 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우위체제가 안정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보수는 윤리적으로도 하자가 있다.

선거에서 사회가 그냥 대변되는 게 아니다. 좋은 정당체제가 있어야 하고, 선택의 대안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좋은 정당구조의 실패 때문에 정치에서 보수 우위성이 가속화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사회는 전체적으로 진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본다. 그만큼 사회가 불평등해지고 있어서 평등 등 진보가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보수가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처럼 진보의 영역까지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기민당은 보수정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파시즘 전통이 있고, 독일 노동시장을 만드는 등  굉장히 좋은 정당이다. 권위주의적 부분도 없다. 자유주의를 강조하지만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장한다. 새누리당이 독일의 기민당처럼 될 수는 없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당의 연속성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나? 민주적 가치의 정당이 되거나 민주주의 가치에 헌신하느 정당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선 때 경제민주화 정책을 얘기해놓고 바로 버리는 것을 보면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정당도 아니다. 보수도 (독일처럼) 공공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새누리당도 변해야 할 게 엄청 많다."

- 야권통합이 진보정당 쪽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나?
"사회는 점점 진보적 가치가 결핍되면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이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진보에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진보정당, 노동운동 등 진보세력이 보여준 것에 시민들의 실망이 커졌다. 정치적 기반을 조직화하는 것이 잘 안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사람들이 진보정당을 통해 기대를 표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야권연대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갔으면 한다. 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이다. 야권연대에 휩쓸리는 건 진보정당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진보에는 독자성이 가장 중요하다. 독자성의 가치가 지나치게 쉽게 흔들리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실력이 쌓이고 지지받을 준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도 전체 20% 정도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나아가서는 영국처럼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을 대체해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진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데 진보정당이 그것을 조직할 만한 실력이 안돼 있다."

- 현재 4개의 진보정당이 있다. 그런 '진보정당 다당체제'가 진보정당 활동에 제약요인이 되고 있지 않나?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어느 국가든지 진보정당이 하나인 곳은 없다. 왼쪽이 있고 더 왼쪽인 정당이 함께 있다. 영국이나 독일, 북유럽과 같은 곳은 사민주의 정당이 진보정당 안에서 안정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수준의 진보정당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정당은 그만한 실력을 키우기도 전에 군소분열 됐다. 이는 자해적 분열이다.

시민들이 그것을 가장 예리하게 본다. 지나가다 들으면 '쟤들은 안 된다'고 말한다. 진보정당의 문제는 이념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다. 정당조직을 이끌고 내부갈등을 통합하는 실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꾸준히 길을 가면된다. 실력만 있으면 집권할 수도 있다. 진보정당에는 여전히 유능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다. 그러한 실력과 유능함이 조직적 실력으로는 안 나온다. 조직적 실력만 살릴 수 있다면 그들은 통치엘리트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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