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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 낮아 연극과 폐지? 그럼 피카소도 백수냐"

서일대 연극과 폐지 위기... 학생들 반발하며 거리로 나서

등록|2014.03.23 20:58 수정|2014.03.23 21:40

▲ 학과 폐지에 반발, 2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항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서일대학교 연극과 학생들. ⓒ 서일대 연극과 학생회


23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70여명이 우르르 나타났다. 몇몇은 '저희 정말 연극하고 싶어요' '우리의 꿈이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등이 쓰인 푯말을 들고 있었다. 검은 행렬 맨 앞쪽에는 영정이, 가운데에는 관도 있었다. 이 장례식의 주인공은 서일대학교 연극과 학생들이었다.

그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갑작스런 학과 폐지 소식 때문이다. 김용우(27) 연극과 학생회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난주 금요일(21일) 폐지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과와 통합하거나 정원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었지만, 폐과는 언급조차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유는 딱 하나, 취업률이었다. 학교 쪽에선 정부의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정책에 따라야 하는데, 연극과는 취업률이 너무 낮다고 했다.

학교는 취업률 이유로 폐지방침 통보... 학칙 등에 맞지 않아

교육부는 지난 2월 20일 '전문대학 육성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하며 NCS기반의 교육과정을 운영, 전문대학 취업률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학생회가 정리한 학과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졸업생의 동종업계 취업률(공연업계, 관련 전공 진학자)은 45%, 2013년 65%다. 정부 목표에는 다소 못 미치는 수치다.

하지만 연극과 교육과정 자체가 NCS 교육과정과 맞지 않는다. 연극분야의 NCS교육과정 교과목은 무대장치와 소품, 무대조명, 무대미술, 무대연출 등이다. 그런데 서일대 연극과 재학생들은 대부분 배우를 꿈꾼다. 2014년도 수시 1·2차 지원자 823명만 해도 모두 배우 지망생이었고, 정시 1차 지원자 1381명 중에서도 단 두 명만 스태프를 지원했을 정도다.

연극과 내부 자료에도 'NCS 교과목은 연기자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본 학과의 교육목표 및 특성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나온다. 김용우 회장은 "연극과는 (학과 평가지료가) 취업률이 아닌데 학교는 계속 취업률만 걸고 넘어진다"며 "아무런 근거 없이 폐과한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갑작스런 학과 폐지방침이 내부 절차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학과 신설이나 폐지, 통합 등 '학생 정원 조정' 관련 학칙에는 업무 시기가 '6월~10월'이라고 나와 있다. 학생들은 이 내용을 근거로 "연극과를 없애려면 적어도 지난해에 알렸어야 했는데 학과장에게조차 3월 20일 오후에 일방적으로 폐과 소식이 전해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학교는 올해에도 신입생 35명을 뽑았다. 김 회장은 "만약 폐지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신입생을 받지 말아야 하지 않냐"며 "후배들은 입학한 지 3주 만에 과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등록기간이 일주일 남아 있는데, 신입생들 사이에는 '자퇴하고 등록금을 돌려받자'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3년 안에 졸업 또는 전과" - "인원 적어 폐강될 수도... 연극과로 졸업 원해"

▲ 서일대학교 연극과 학생들은 지난 21일 학교로부터 갑작스레 '취업률이 낮아서 연극과를 폐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생들은 이 방침에 반발하며 2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극과 폐지를 주제로 한 장례식 퍼포먼스를 했다. ⓒ 서일대 연극과 학생회


학교는 학생회와 21일 만난 자리에서 '연극과가 없어져도 3년 안에 졸업을 시켜주겠다, 전과도 가능하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3일 학생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길꺼린 2학년 A(21·여)씨는 "학칙에 보면 수강신청 인원이 20명 이하면 수업이 없어진다"며 "남아 있는 1학년이 있어도 학과 폐지로 자퇴자, 군 휴학자 등이 생기면 인원을 채우기 어려울 텐데 그럼 전공 수업을 못 듣게 된다"고 했다. 김용우 회장은 "전과 얘기는 졸업장은 주겠다는 건데, 우리는 그냥 졸업장이 아니라 연극과로 졸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A씨는 "예술학과의 경쟁력을 취업률로만 따지는 현실이 어이없고, 억울하다"는 말도 남겼다.

"그렇게 따지면 피카소도 백수 아닌가요?"

서일대는 당초 22~23일 사이에 이사회를 열어 연극과 폐지 방침을 확정하려 했으나 학생들의 반발로 회의를 24일로 미뤘다. 연극과 학생들은 이날 이사회를 설득하고 과 폐지를 막기 위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한편, 인터넷 등에서 학과 폐지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 서일대학교 연극과 학생들은 갑작스런 학과 폐지 소식에 반발하며 2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학생들은 '서일대 연극과'의 영정과 관을 들고 나타났다. ⓒ 서일대 연극과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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