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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1달러 냈는데, 또 1달러 내라고?"

[베트남-캄보디아 여행기4] 가는 곳마다 "원 달러!"하며 손 내미는 아이들

등록|2014.03.27 15:02 수정|2014.03.27 15:02

▲ 밀림속에 불가사의한 문명을 이뤄낸 캄보디아인들의 솜씨에 감탄했다. 로마 유적만 훌륭한게 아니었다 ⓒ 오문수


"1달러 내라!"
"뭐라고? 금방 비자발급 받을 때 1달러 냈는데 무슨 말이냐! 그리고 지금 나한테 돈이 하나도 없다. 아내가 가지고 있다."
"그래도 1달러 내야 하는데… 좋다. 즐거운 여행 돼라!"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 입국장에서 나와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공무원과의 입씨름 내용이다. 비자 신청할 때 1달러 내고, 입국심사 할 때 1달러를 더 낸 한국인들은 화가 나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정말 화나네"라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돈 더 내라고 하는 것 같아 째려보고 있었더니 그냥 가라는 시늉을 해서 나왔어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돌을 밀가루 주무르듯 한 놀라운 솜씨로 거의 모든 건물에 조각되어 있었던 모습들. 이렇게 훌륭한 솜씨를 가진 캄보디아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원인은 자명하다. ⓒ 오문수


베트남 관광을 마치고 앙코르와트를 구경하기 위해 캄보디아 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가이드로부터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당해보니 황당했다. 캄보디아를 여행하려면 비자신청을 해야 한다. 원래 캄보디아 대사관에 가서 해야 하지만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공항에서 입국비자를 발급해 준다. 그렇다고 급행료를 받고 발급해 주면서 입국심사대 통과시 1달러까지 더 내야 하는가?

캄보디아는 한국이 6·25동란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유엔회원국으로 참전해 우리를 도와줬고, 모든 경제가 망가져 한국인들이 굶어죽기 전 우리에게 쌀을 원조해준 고마운 나라이다. 때문에 은혜를 갚는다는 심정으로 눈감아줄 수 있지만 부정한 방법을 통한 도움은 서로에게 모욕감만 심어준다.

캄보디아 경제가 어려워 공무원 월급을 제때 못주는 경우도 있고 월급이 30~50달러 정도밖에 안 돼 월급으로는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인내심까지 용인해줄 수 있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훨씬 더 못 사는 아프리카의 국경을 통과해 봐도 이런 경우는 못봤기 때문이다.

▲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순간에 조각상 그늘에 들어가 혼자 손장난을 하는 천진한 아이의 모습. 5분전까지 관광객들에게 '원 달러!'를 요구했던 아이다 ⓒ 오문수


예전에 미국에 가려면 미국대사관에 가서 비자발급을 받아야만 했다. 대사관 주위를 빙 둘러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다 비자발급을 받을 때 모욕감을 느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하면서 미국에 가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가 아쉬워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학이나 통상 및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캄보디아 입국을 원하는 한국인의 입국 목적은 대부분 관광이다.

입국비자를 발급받을 때 까다로운 질문과 심사를 거치면 늦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관광하러 입국하는 사람들이 자기 돈 들여 입국비자를 받고 자기 돈 써가며 구경하는데 까다롭게 굴 이유가 있는가?

심한 모욕감이 들어 화가 났던 내가 캄보디아 비자를 쳐다본 순간 내 초등학생 시절이 오버랩 됐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주민등록등본을 가져오라고 해 면사무소에 가려고 하자 어머니가 "담배 한 갑이나 계란 한 줄을 가지고 가야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해줄 것인데…"라며 걱정을 하셨다.

▲ 관광버스가 오자 동생을 안고 관광객들에게 "원 달러!"를 요구했던 아이도 카메라를 들이대자 재미있는 포즈를 취한다 ⓒ 오문수


당시 면사무소에 빈손으로 가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늑장을 피우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민원인을 애먹이는 게 상례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여자들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어 1억 달러를 수출했을 때 뉴스에서 크게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돈이 없던 나는 담당 공무원에게 "돈이 없다"며 주소지를 정확하게 말하자 "어린애가 똑똑하다"며 바로 발급을 해줬다. 당시 시골에 살던 어른들 대부분이 무학이어서 주소지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외국을 많이 여행했던 한 교수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공무원 수준을 보면 그 나라가 선진국인가 후진국인가 알아요. 엄격하지만 정직하고 친절한 공무원이 있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반면에 부패한 공무원이 많은 나라는 나라가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후진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 이렇게 훌륭한 앙코르와트 문명을 건설한 캄보디아가 어려움에 빠진 첫 번째 이유는 정치인들의 욕심과 부패다.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준다. ⓒ 오문수


뉴욕, 모스크바, 런던, 파리, 상하이, 동경, 시드니,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 공항을 이용해봤던 나는 인천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자부심을 갖는다.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은 "깨끗하고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며 공무원들이 밝은 모습을 짓고 신속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대한민국의 첫 모습에 감탄했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입출국하는 국제공항이나 항구는 그 나라의 얼굴이다. 한 번 구겨진 첫인상은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내내 지속됐다. 가는 곳마다 "원 달러!"하며 손을 내미는 아이들. 다음은 같이 여행을 했던 아주머니가 전해준 내용이다.

▲ 몹쓸병에 걸린 듯한 엄마가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 오문수


"불쌍한 얼굴을 하며 아이를 안고 식당 앞에서 '원 달러!'를 말하던 아주머니 있잖아요. 엄마 품에 불쌍하게 안겨있던 아이였잖아요. 걷지도 못한 장애아인줄 알았는데 내가 화장실 갔다 오면서 보니까 관광객들이 줬던 과자를 빨아 먹으며 신나게 뛰어 놀다가 내가 보니까 땅 바닥에 얼른 집어던져 버려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외국인이 탄 관광버스가 오니까 그 엄마가 다시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불쌍한 표정으로 '원 달러! 원 달러!'하며 손 내밀고 다니더라고요"

북유럽에 사는 게르만족에 비해 키가 별로 크지 않고 나라의 크기도 우리나라만큼 작은 나라였던 로마가 유럽을 제패하고 천년 이상 번영을 했던 이유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으로 외적과 싸워 강력한 국가기반을 이뤘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프랑스어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 톤레삽 호수로 가는 길에 보았던 호숫가 주민들의 삶 모습 ⓒ 오문수


공산화되었던 캄보디아가 사회주의 국가로 돌아서면서 국가에서 소유하던 커다란 빌딩 대부분이 장성이나 고위 관리들의 소유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입국장에서 겪었던 씁쓸한 경험이 나로 하여금 소문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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