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밀양'이 끝났다니요, '싸움'은 이제부터 입니다

밀양 송전탑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께 드리는 편지

등록|2014.03.28 20:01 수정|2014.03.28 20:01
이계삼 선배님께

일면식도 없는데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밀양 송전탑 대책위원회 사무국장님이나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님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습니다. 전직 교사셨으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무난할 테지만, 그것도 영 내키지 않습니다. 그냥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될는지요. 선배님의 삶과 철학을 닮고 싶어서이지만, 알고 보니 공교롭게도 제가 대학 후배더군요.

선배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조심스러운 고백입니다만, 솔직히 전 지금껏 선배들 중 존경하기는커녕 따르고 싶은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배울 점이 없다고 토로하는 사회는 이미 망한 사회라고 단언하더군요. 후배와 선배를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합니다. 대학 시절을 잘못 보낸 탓인지는 모르지만, 출신 대학에 대한 제 '편견'은 그렇게 생겼습니다.

이곳저곳에 실린 선배님의 글은 제 삶의 죽비이자 나침반입니다. 방향을 잃고 시나브로 관행에 젖어가는 제 일상에 등대의 불빛이 돼 주었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 온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을 성찰하게 한 소금이 돼 주었습니다. 제게 교사로서의 소명을 일깨워준 것 역시, 교사 양성기관이라는 사범대학이 아니라, 선배님의 치열한 삶이었고 주옥같은 글이었습니다.

▲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는 22일 저녁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에서 139번째 '송전탑 반대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윤성효


그런 선배님이 미안하다니요. 부끄럽다니요. 그 고백에 후배는 웁니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퍼 눈물이 쏟아집니다. 말씀하신 대로, 지난 10년 동안의 밀양 송전탑 싸움이 허망하게도 저들의 '승리'로 굳어져가고 있습니다. '개별 보상금'이라는 치졸한 공작에 함께 어깨 겯고 맞섰던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인심 좋았던 시골 공동체는 이내 갈기갈기 찢겨 버렸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정부와 한전이 이겼고, 돈이 이겼습니다. 오로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에서 그냥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소박한 바람마저 욕심이었고, 사치였습니다. 어르신들과 풍찬노숙하며, 교직마저 그만두고 그들을 위해 손과 발이 되고, 기꺼이 입노릇을 자처한 선배님의 눈물겨운 노력도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밀양은 그렇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비통할지언정 선배님의 '항복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패배한' 밀양이 국민들에게 일깨워준 교훈이 실로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밀양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배울 수 없었을 것들입니다. 정부의 겁박과 돈의 위세 앞에 고개 숙인 밀양 어르신들과, 어쩌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고집스레 맞서 싸운 선배님이 외려 찬사 받아 마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밀양이 제 어머님의 생각을 변화시켰습니다

우선, 밀양은 제 어머님의 생각을 극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당신은 지금도 대통령이란 박정희밖에 모르고, 박근혜 대통령을 여전히 '영애'라고 부르며 우러르는 보수적인 분입니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군대에 다녀와야 하고, 국가의 명령이라면 누구든 목숨까지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열혈 애국자이십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당신은 여전히 국민교육헌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고 계시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김일성이라고 대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즘처럼 노인들이 풍족하게 살만 한 때가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노인들에게 주는 복지비에 나라 곳간이 거덜 날 거라고 걱정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밀양 송전탑 갈등이 뉴스에 한참 오르락내리락 할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국가가 하는 일에 왜 반대하고 난리야. 노인들이 모범을 보여야 젊은이들이 애국심을 가질 텐데, 걱정이야 걱정. 국가가 하겠다는 걸 대놓고 막아서는 걸 보면, 어떻게든 보상금을 많이 받아내려고 저러는 거겠지."

그랬던 분이 확 달라졌습니다. '돈이 아니라 나고 자란 땅'을 위한 싸움이라는 밀양 어르신들의 진정성을 알고 나서입니다. 그걸 글로서 당신께 각인시켜준 분이 바로 선배님이십니다. 요즘엔 말끝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양 노인들도 대단하지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기 일처럼 애쓰는 사무국장인가 하는 그 젊은이는 더 대단한 것 같아."

결국에는 돈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들어맞았지만, 국가를 상대로 한 당신과 동년배 어르신들의 그 지난한 싸움에 공감하신 겁니다. 그러면서 대체 왜 국가가 불쌍한 시골 노인들과 싸우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국가와 맞서는 사람들은 밑도 끝도 없이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던 분인데 말입니다.

돋보기로 신문 읽는 걸 시나브로 즐기시더니, 여태껏 당신이 들어보지도 못했을 원자력발전과 송전선 지중화, 킬로와트 등의 낯선 용어들을 이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만큼 줄줄 꿰고 계십니다. 선배님의 글은 가랑비가 되어 당신의 옷을 적셨습니다. 급기야 '국가가 하는 일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아가고 계십니다.

이젠 국가의 정책과 주민의 이해가 충돌할 때 무조건 국가가 우선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정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익'이 정작 많은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속임수'일 수 있다고 지적하시곤 합니다. 가만 보면, 그토록 저주하시던 '빨갱이'의 모습입니다. 자식으로서 느끼기에 실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선배님의 글은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도 변화시켰습니다. 웬만한 시사 잡지는 다 본다는 한 머리 굵은 아이는 선배님의 글을 평하기를, '뜨거운 휴머니즘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정치인들이고 방송인이고 학자고 간에 늘 입바른 소리만 해댄다고 비아냥거리는, 조금은 염세적인 아이입니다. 선배님은 그 아이의 멘토가 된 셈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지금 '밀양'을 모르는 아이는 없습니다. 별도의 계기수업은 하지 않았지만, 점심시간 등에 신문을 뒤적이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면서 그 갈등의 뿌리에 대해서 알아보고 서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정부와 주민들 편에서 각각의 주장과 입장 차를 확인하는 모습이 자못 진지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김없이 선배님의 글이 인용되더군요.

토론은 아이들로 하여금 '본질'에 다가가게 만들었습니다. 밀양 어르신들에 공감하는 아이들은 물론, 애써 정부를 이해하려는 아이들조차도 '서울 사람들의 편익을 위해 시골 사람들이 희생하라'는 논리임을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정부와 '공범'일 수 있다며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걸 그렇게 공부해가고 있었습니다.

교사로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려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의 우려가 아니었다면, 부모의 걱정과 두려움만 없었다면, 얼마 전 밀양행 희망버스에 자발적으로 올랐을 아이들이 적지 않았을 거라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귀찮은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고 손가락질 받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밀양 어르신들이 안 계셨다면, 또 선배님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정작 미안하고, 부끄러운 건 밀양 어르신과 선배님이 아니라 저희들입니다. 선배님은 '싸움이 끝나간다'며 에둘러 말씀하셨지만, 저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여길 뿐, 결코 졌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선배님의 멘티인 저와 수많은 아이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배님의 분하다는 말씀도 마음에 담아 두질 않겠습니다. 되레 저는 심리적 충격과 크나큰 상실감에 몸서리치고 계실 밀양의 어르신들에게, '뒤늦게 깨우치신' 제 어머님 같은 분도 많고 철들어가고 있는 손주 녀석들 같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직접 보여드리지 못해 그것이 분할 뿐입니다.

어느덧 다시 새봄입니다. 황사가 아무리 짙어도 움트는 봄의 새싹을 덮지는 못할 겁니다. 밀양 어르신들과 선배님의 영육 간의 건강을 기도합니다.

2014년 3월 28일
선배님의 삶과 글을 늘 곁에 두고 교사로서 살아가는 못난 후배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