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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북 스캔업체가 잘 나가는 이유

[제이언니의 IT에세이⑤] 책상 위에 펼쳐진 다양한 출판시장

등록|2014.03.29 15:53 수정|2014.03.30 15:48
지금은 전자책 수요가 많아지긴 했지만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전자책 시장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몇 년 전부터 인터파크와 교보가 단말기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장의 규모를 키우려고 애썼지만 국내는 미국처럼 전자책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이미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을 넘어선 지 오래지만 국내의 경우는 갈길이 멀기만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전자책이 가장 불편한 부분은 DRM, 즉 디지털 저작권 문제다. 콘텐츠의 보호를 위해 전자책은 복사와 출력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체로 교보, 인터파크, 예스24와 같은 개별 인터넷 서점에서 독자적인 DRM이 설치, 배포되는데 이로 인해 소비자는 특정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단말기에서만 도서를 읽을 수 밖에 없는 제약이 따른다.

아마존이라는 단일 기업이 전자책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는 여러 인터넷 서점이 난립하는 가운데 특점 서점의 단말기에서 저작권 제약을 받으니 당장 소비자가 사용하기에 전자책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이해관계 난립하는 '디지털 저작권'

▲ 종이책, 전자책, 그리고 북스캔 파일까지 ⓒ 김용주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불편하기만한 문제일지 모르지만, DRM 문제는 꽤나 많은 이해관계가 난립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함의가 있는 IT 기술이다. 이 '디지털 저작권'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권력 관계가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는 음반시장과 애플사와의 음원 협약 사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음반시장은 MP3 포맷의 확장과 더불어 냅스터(Napster)와 같은 사이트를 통해 네티즌끼리 불법으로 복제한 음원 공유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때 아이튠즈를 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려던 스티브 잡스는 거대 음반사로부터 한 곡 단위로 저렴한 가격에 음원을 유통하는 방식을 제안했고 'P2P'공유 사이트의 범람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음반사의 승락을 얻게 된다. 이때부터 권력 구도는 음반사에서 애플의 아이튠즈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내 음반사는 너무 쉽게, 낮은 가격에 음원을 넘긴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일이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도 일어났다. 아마존은 전자책 시장의 저작권 관리를 위해 독립 포멧의 DRM을 적용했고 전자책에 한해서는 저자와 직접 라이센스를 체결하기도 했다. 결국 저자와 편집자 간의 오랜 기획과 편집을 거쳐 나온 출판물들이 정작 출판사가 아닌 인터넷 서점에게 더 큰 권력을 가져다 주었다.

국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와의 갈등은 이런 권력구도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권력구도를 차치하고서도 음반 시장에서의 MP3 포맷의 범람은 시장 전체를 휩쓸었고 현재까지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종이'책의 '전자파일'화 또한 그 자체가 공포스럽기까지 한 그 무엇이었다. 

고로 일인출판을 지향하는 전자책 시장에서 저자와 서점 사이를 매개했던 출판사의 배제의 기미가 자주 읽히고 그 중심에는 전자책의 'MP3'화를 막아주는 DRM이 우뚝 서 있는 셈이다. 나름대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출판사는 책의 질이 떨어질까봐 우려감을 보이기도 하고 기술에 무지한 영세 출판사들은 DRM 자체에 대한 의구심, 즉 자신들의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 공유의 위험성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전자책 시장은 국내에서는 여전히 소비자가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다. 전자책은 300그램 밖에 안 되는 전용 단말기에 무려 2000권이 넘는 책을 담아서 다닐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말이다.

북스캔 저작권 보호,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런 불편함을 직시한 이들이 끼어든 틈새 시장이 있다. 바로 북스캔 업체다. 북스캔은 자동화된 스캔 기기를 통해 고객이 송부한 도서를 대신 스캔해서 PDF 포맷의 파일로 전송해주는 서비스다.

북스캔은 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권당 대략 50~100MB의 용량이면 가능하므로 전자책 포멧(e-Pub)보다는 용량이 큰 편이지만 태블릿이나 SD메모리로 확장 가능한 단말기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북스캔은 내 컴퓨터에 저장, 복사, 출력 모두 가능하며 OCR인식을 할 경우에는 책의 일부 혹은 전체의 검색 혹은 인용도 가능하다.

허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스캔업체가 출판물을 복사하여 배포하므로 출판물의 저작권법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스캔업체가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스캔업체는 이 저작권 문제를 '적절하게' 우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객의 책을 받아서 스캔을 한 후 출력 기능을 없애고 전자파일 앞페이지에 고객의 개인정보를 명시하여 배포하는 것이다. 해당 페이지에서는 개인정보를 명시함과 동시에 이 파일의 무단 배포나 복사의 책임이 고객에게 있음을 재확인한다. 물론 출력 기능을 활성화하거나 개인 정보가 담긴 페이지의 삭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북스캔의 저작권 보호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솔직히 여기에는 좀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데 '클라우드 서비스'로 표현되는 북스캔 업체의 백업 서버에 나는 더 주목하는 편이다. 아이폰의 아이클라우드 서비스나 에버노트의 동기화 서버도 비슷한 이슈거리이기도 한데, 이 경우에는 이용자의 콘텐츠들을 서버에 저장하므로 엄청난 개인정보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서버는 DB화되어 있으므로 특정 정보의 검색 또한 가능하다. 따라서 북스캔 업체들의 서버에는 고객이 송부한 수천권, 나아가 수십만권의 책들이 고스란히 도서명과 함께 저장되어 있다. 이 서버의 자료들이 유출될 경우 개인, 나아가 출판사들의 손실은 치명적일 수 있다(물론 그럴 확률은 지극히 적지만 현실은 원전이 붕괴되고 통신사와 카드사의 서버가 해킹 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던가).

유출을 걱정하지 않더라도 북스캔 업체는 웬만한 도서관이 수용할 수 없는 책들을 서버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규모의 전자도서관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상상의 나래를 펴서 소설을 써본다면, 구글의 방대한 도서 스캔 활동을 통해 구글 플레이북 서비스를 시작한 것처럼 어느 순간 스캔업체가 저작권 협상을 거쳐 전자책 시장의 실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단순히 고객의 책을 스캔하여 파일로 만드는 수고를 대신해주는 이 업체들에 대한 출판시장의 경계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영화 <매트릭스2>보다 더 유명해진 광고문구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될 것이다'는 현대의 IT 기술의 발전 그 자체에도 딱 어울리는 말이지만, 나아가 그 기술을 둘러싼 기존 기업들의 급변하는 현실에 꽤나 잘 어울리는 문구 같기도 하다. 진보적인 대중들도 때때로 개념소비를 지향하는 듯 하다가도 대부분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욱이 불편한 요소가 있는 기술들은 점차 수요가 줄어들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업계들은 무시 못할 속도로 진화해간다. 출판 시장에서는 북스캔 업체가 그런 느낌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종이책의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글을 쓰면서도 책상 위에 놓인 책들과 태블릿에 있는 전자책과 북스캔이 엇갈리듯 내 시야에 들어온다. 이렇듯 내 책상 위에 펼쳐진 모습만큼이나 복잡하고도 다양한 출판 시장을 지켜보는 심경은 꽤나 복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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